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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제

브런치에서도 누군가는 말해야 하기에

by 조이홍

대통령 광복절 경축사로 또 시끌시끌합니다. 광복절 경축사가 아니라 '6·25 전쟁 기념사' 같다는 일부 평가도 있습니다. 저도 '자유' 참 좋아합니다만, 이 단어가 가지는 사회적 합의가 이렇게 다를 수 있구나 새삼 놀랍습니다. 집안 살림도 문제지만 저는 여전히 집 밖 상황에 더 관심이 쏠립니다. 도대체 우리나라가 누구에게서 광복했는지 어리둥절합니다. 누군가 말합니다. 과거에 발목 잡히면 안 된다고. 동의합니다. 하지만 잘못된 역사를 반성하지 않는 자들과 미래를 논하는 것이 가능할까요?


"정부는 출범 이후부터 자유, 인권, 법치의 보편적 가치를 공유하는 국가들과 안보 협력과 첨단 기술 협력을 적극 추진해 왔습니다. 한미동맹은 보편적 가치로 맺어진 평화의 동맹이자 번영의 동맹입니다. 일본은 이제 우리와 보편적 가치를 공유하고 공동의 이익을 추구하는 파트너입니다. 한일 양국은 안보와 경제의 협력 파트너로서 미래지향적으로 협력하고 교류해 나가면서 세계의 평화와 번영에 함께 기여할 수 있는 것입니다." (78주년 대통령 광복절 경축사 중에서)


일본이 정말 우리와 보편적 가치를 공유하고 공동 이익을 추구하는 파트너인가요? 안보와 경제 협력 파트너로 미래지향적으로 협력하고 교류해 나갈 수 있을까요? 극우 단체가 아니라 일본 정부(국립 전시관)가 독도 관련해 이런 영상을 제작하는 데도요? 영상에 나오는 "너희들 시대에는 꼭 가게 될 거야."라는 말이 무섭게 들리는 건 저만의 착각인가요?

https://www.youtube.com/watch?v=_zeWqkn8pmI

어디 이뿐인가요? 우리가 주권을 회복하고 영토를 되찾아 기뻐하는 바로 그날, 일본은 경제안보상을 포함해 70여 명의 국회의원이 도조 히데키 등 태평양전쟁 A급 전범 14명이 합사된 도쿄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했습니다. 기시다 총리는 직접 참배하는 대신 대리인을 통해 공물 대금을 봉납했습니다. 이에 외교부는 '과거 침략 전쟁을 미화하고 전쟁 범죄자를 합사한 야스쿠니 신사에 일본 지도자들이 또다시 공물료를 봉납하거나 참배를 되풀이한 데 대해 깊은 실망과 유감을 표한다'라고 입장을 밝혔습니다. 한쪽에서는 일본을 보편적 가치를 공유하는 파트너라고 하고, 한쪽에서는 일본 정부에 깊은 실망과 유감을 표현했습니다. 휴, 다행입니다. 한쪽이라도 국민 대다수 정서와 같으니 말입니다.


야스쿠니 신사에 관해 이미 몇 번이나 이곳(브런치)에 글을 올렸습니다. 그래도 또 쓸 수밖에 없습니다.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하고 일본은 침략국이 아니라며 욱일기를 치켜든 일본인들이 제법 많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야스쿠니가 정확히 어떤 곳인지 우리도 반드시 알아야 합니다.


야스쿠니 신사에 처음으로 봉안된 인물은 바로 '요시다 쇼인'입니다. 조선을 정벌해야 한다는 정한론을 발전시켜 일본 제국주의의 사상적 밑거름이 된 인물입니다. 일본 우익의 정신적 스승이기도 합니다. 그의 사상을 충실히 계승한 다카스기 신사쿠는 에도막부에 대항해 쿠데타를 일으키고 시노모세키전쟁을 치른 인물입니다. 아베 전 총리가 존경한다고 밝힌 인물이죠. 명성황후 시해 사건을 설계했던 이노우에 가오루 역시 그의 제자였습니다. 메이지유신 이후 정권을 잡고 일본 근대화를 이끈 우리에게 너무 익숙한 이토 히로부미, 러일전쟁의 영웅 노기 마레스케, 일본 수상을 지낸 가쓰라 다로, 초대 조선 총독을 지낸 데라우치 마사타케, 2대 조선 총독을 지낸 하세가와 요시미치, 일본 군대의 기초를 닦아 야스쿠니 신사에 동상이 세워진 오무라 마스지로, 일본 육군의 아버지라 불리는 야마가타 아리토모 등 조슈번 출신들은 모두 요시다 쇼인이 세운 '쇼카손주쿠' 출신입니다. 쇼카손주쿠 역시 아베 내각 아래서 2015년 7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었습니다. 한 가지는 확실해 보입니다. 여전히 일본 정부는 과거를 반성할 생각이 없다는 걸 말입니다.


일본이 침략 전쟁을 인정하고 진정으로 사과한다면 누구에게 가장 이득이 될까요? 아마도 일본이 아닐까요? 일본의 국제적 위상이 올라가고 우리나라와도 진정한 협력 관계가 될 수 있지 않을까요? 설마 희생자 할머니들이 다 돌아가실 때까지 기다리고 있는 걸까요? 일본이 또 어리석은 선택을 하지 않으면 좋겠습니다. 우리 정부도 국민 대다수의 정서를 이해하려는 노력을 좀 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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