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우주론에 의하면 관측 가능한 우주는 지금으로부터 약 140억 년 전에 초고온-초고밀도의 작은 덩어리 안에 응축되어 있다가 거대한 폭발을 겪으면서 빠르게 팽창하기 시작했다. 그 후 뜨거웠던 공간이 서서히 식으면서 입자 속도가 느려졌고, 이들이 하나로 뭉쳐 별과 행성 등 다양한 천체가 형성되었으며, 태양계의 지구라는 행성에는 생명체가 등장하여 근 40억 년 만에 인간으로 진화했다. (Until The End of Time 중에서)"
브라이언 그린은 단 두 문장으로 우주의 역사와 인류의 탄생을 요약했습니다. 참 근사한 문장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문득 이 문장을 읽다가 '인연'이라는 단어가 떠올랐습니다. 저와 아내, 아이들, 가족들, 그리고 제가 만난 모든 사람들과의 인연이 얼마나 대단한지 새삼 깨달았습니다. 확률로는 존재하지만 너무 낮아 실제 벌어지리라고 예상하기 어려운, 거의 제로에 가까운 확률을 뚫고 우리는 오늘, 2023년을 살아갑니다. 백악기도 쥐라기도 아닌 신생대 제4기 홀로세에 만나 너무 덥지도 너무 춥지도 않은 온화한 날씨를 누리며 인연을 이어갑니다. 직접 대면하지 않아도 가상의 공간(브런치)에서 서로 공감하며 다른 사람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입니다. 정말 멋집니다. 그뿐인가요. 암모나이트나 스트로마톨라이트 같은 원시 생명체의 모습도 아니고, 기가노토사우르스나 티라노사우루스처럼 누군가를 먹지 않으면 잡아 먹히는 육식 공룡의 모습도 아니니 얼마나 다행인가요. 개체는 이기적인 유전자의 생존 수단일 뿐이라는 진화적 한계를 극복하고 기꺼이 보이지 않는 것들(사랑, 평화, 이타심)을 위해 희생할 수 있는 호모 사피엔스로 만났으니 이 얼마나 멋진 인연인가요. 매일 만나니 대단할 것도 새로울 것도 없지요. 당연하다 못해 지겨운 관계도 있지요? 그럴 때면 브라이언 그린의 저 문장을 떠올려 보세요. 우리는 정말 어마어마한 인연으로 동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시간은 열역학 제2법칙 때문에 다시 돌아오지 않습니다(물리적으로 가능하지만 정말 희박한 확률이라네요). 내일은 모르는 누군가에게 호의를 베풀어 보세요. 그 호의가 눈덩이처럼 구르고 굴러 거대한 별을 만드는 마중물이 될지도 모르니까요. 그럼 우리가 사는 이 세계의 온도가 0.1℃는 올라가지 않을까요? 앗, 그러기에 세상은 이미 너무 더운가요.
브라이언 그린의 <엔드 오브 타임>을 읽으며 맥주 한 잔 마셨는데 술이 약해졌는지 술주정을 부리나 봅니다. 괜히 센티해집니다. 그래도 내일, 딱 하루만 모르는 누군가에게 호의를 베풀어 주세요. 1년에 딱 한 번 만나는 견우와 직녀의 다리가 되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