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더위에 시원한 하이볼 한 잔 하실래요?
모처럼 책방지기 모임 '책사공'에서 위스키 클래스를 진행했습니다. 아무리 위스키를 좋아해도 이 무더위에 니트(neat, 아무것도 타지 않고 그대로 마시는 방법)로 마시는 건 아니지 싶었습니다. 그렇다면 뭐가 좋을까요? 사실 하나밖에 떠오르지 않습니다. 여름에 딱 맞는 음용 방법, 바로 위스키 하이볼(Highball)이지요.
위스키 하이볼은 칵테일의 한 종류입니다. 위스키를 베이스로 탄산수(정확히는 논알코올음료)와 섞어 마시는 방법을 말합니다. 18세기 후반 영국에서 인공 탄산수가 개발되면서 브랜디를 섞어마신 것에서 유래되었다고 합니다. '하이볼'이란 말의 어원에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중 가장 유명한 두 가지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첫 번째는 철도 신호설입니다. 19세기 후반 미국에서는 증기 기관차 신호로 공(ball)을 매달아서 썼는데, 공이 높게(high) 매달려 있으면 멈추지 말고 계속 달리라는 의미였다고 합니다. 기차가 하이볼 신호를 받으면 빠르게 달릴 수 있기 때문에 이 말은 '자유롭고 신나는 느낌'을 주었답니다. 한 잔만 마셔도 시원하고 활기찬 느낌을 주는 위스키 하이볼! 철도 신호설이 왠지 그럴듯하지요? 두 번째는 영국설입니다. 영국에서는 위스키 한 잔을 'ball'이라고 불렀답니다. 그런데 탄산수와 섞어 마시는 하이볼은 키가 높은(high) 잔을 사용해(탄산감 지속을 위해) 마시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하이볼이라고 불렀다는 것입니다. 이것도 그럴듯하지요? 하지만 진실은 모르겠습니다. 그저 '썰'일 뿐이니까요.
위스키 하이볼 하면 '가성비'라는 말부터 떠오릅니다. 가격 대비 성능(만족도)이 좋은 비교적 저렴한 위스키를 베이스로 하이볼 만드는 걸 의미합니다. 아이리시 위스키 제임슨, 제패니스 위스키 가쿠빈, 버번위스키 짐 빔 화이트, 캐네디언 위스키 캐네디언 클럽 6년 등 3만 원 대 위스키가 가성비 '갑'으로 거론되곤 합니다. '내 맛대로, 위스키 하이볼' 클래스에서는 가성비 좋은 위스키 이외에도 몇 가지를 더했습니다. 사실 '취향'을 발견하는 데 가격이 전부는 아니니까요.
5만 원 대 '블랙보틀 10년'은 블렌디드 스카치위스키입니다. 스코틀랜드에서도 '아일레이' 지역 위스키 원액을 주로 사용해 스모키하고 피트 향이 강한 것이 특징입니다. 물론 과일 향도 풍부합니다. 6만 원 대 '몽키 숄더'는 블렌디드 몰트위스키입니다. 글렌피딕을 생산하는 윌리엄 그랜트 앤 선즈에서 만든 제품입니다. NAS(연산 미표기) 제품으로 세 증류소(글렌피딕, 발베니, 킨인비)의 원액을 블렌딩해 부드럽고 크리미 한 텍스처가 특징입니다. 병에 있는 원숭이 세 마리는 증류소 세 곳을 의미합니다. 몽키 숄더라는 이름은 몰트맨의 움츠린 어깨에서 유래되었습니다. 바닐라와 오렌지, 허니와 스파이스 등 달콤하고 상쾌한 풍미가 일품입니다. 7만 원 대 '로크로몬드 12년'은 싱글몰트위스키입니다. 1814년 설립된 로크로몬드 증류소에서 만드는 위스키로 버번 오크통을 사용해 복합적이고 풍부한 맛이 특징입니다. 시트러스, 사과, 배, 바닐라, 허니 향이 조화를 이루다 오크 향과 스파이시함으로 마무리됩니다. 2000년대 초반 켄터키에 설립된 크래프트 증류소 가운데 하나인 타운 브랜치 증류소의 '스몰 배치 스트레이트 라이'와 '트루 캐스크 스트레이트 버번'은 요즘 핫한 아메리칸 위스키입니다. 둘 다 10만 원 대입니다. 미국은 법에 의해 위스키를 만드는 데 사용한 주재료(51% 이상)로 카테고리 명칭을 사용합니다. 라이는 호밀을 51% 이상, 버번은 옥수수를 51% 이상 사용한 위스키를 의미합니다. 둘 다 NAS제품으로 6~8년 정도 숙성했습니다. 호밀은 위스키에서 '알싸함'을 담당하는데 보통 '후추 향'처럼 느끼는 것입니다. 라이 위스키는 후추 향 너머 봄바람을 타고 전해지는 꽃 향과 과일 향이 매력적인 제품입니다. 트루 캐스크는 피트 뉘앙스로 첫맛은 굉장히 강렬하지만 역시 바닐라와 오크 향이 부드럽게 밀려드는 독특한 버번위스키입니다. 이렇게 모두 아홉 가지 제품으로 위스키 하이볼을 향한 여정이 시작되었습니다.
참, 중요한 걸 깜빡했네요. 탄산수는 두 가지를 준비했습니다. 탄산감이 강해 많은 바텐더들이 사용하는 '싱하 탄산수'와 청량한 단맛으로 위스키와 잘 어울리는 '캐나다 드라이 진저에일'이 바로 그 주인공입니다. 사실 이외에도 제로 콜라, 스프라이트, 닥터 페퍼, 레드불, 몬스터 등 다양한 음료에 시도해 맛보았는데 위 두 제품보다 만족스러운 조합은 찾지 못했습니다. 물론 개인 취향입니다. 얼음도 중요하지만 전문 바텐더는 아니기에 편의점에서 구입해 사용했습니다.
아홉 종류 위스키를 펼쳐놓고 참가자분들께 우선 아주 조금씩 니트로 시음해 보기를 권했습니다. 부드럽고 균형 잡힌 맛이 특징인 제임슨, 라이 느낌이 나는 부드러운 버번위스키 같은 캐네디언 클럽, 투박하지만 캐러멜과 바닐라 향이 특징인 짐 빔 화이트, 꽃과 과일 향이 오크 향과 잘 어울리는 가쿠빈 등등 '가격'아 아니라 내 입맛에 맞는 위스키를 찾는 것이 중요하니까요. 한 가지 팁을 드리면 니트로 마실 때 풍미를 잘 느끼지 못하면 물 한두 방울을 추가해 주면 좋습니다. 봄비가 사부작사부작 내릴 때 풀밭을 걸으면 기분 좋은 풀냄새가 올라오는 것처럼 적은 양의 물을 첨가하는 것만으로도 그 위스키가 가진 매력을 200% 느낄 수 있게 됩니다. 이런 과정을 통해 참가자들은 가쿠빈이나 몽키 숄더, 로크로 몬드와 트루 캐스크를 자신의 취향에 맞는 위스키로 골랐습니다. 자, 그럼 이제 어떻게 하면 맛있는 하이볼을 만들 수 있을까요?
먼저 하이볼 글라스에 얼음을 채워줍니다. 편의점 돌얼음 크기로는 5~6개 정도 들어갑니다. 집에서 만들 때는 글라스를 냉동실에 보관했다가 사용하면 더 좋습니다. 준비한 지거(계량컵)에 위스키를 30ml 따릅니다. 집에는 지거가 없을 테니 소주잔을 사용해도 됩니다. 30ml 위스키를 얼음이 담긴 글라스에 부은 후 바스푼으로 잘 저어줍니다. 유명한 술 관련 유튜브 채널에서는 시계 방향으로 13.5회 저어주라고 하던데 참가자분들께는 마음 내키는 대로 젓도록 했습니다. 딸랑딸랑 얼음 젓는 소리가 경쾌하니 듣기 좋았습니다. 다음으로 지거(소주잔)를 활용해 탄산수나 진저에일을 120ml(30ml 4번) 더 넣어줍니다. 단맛을 좋아하면 진저에일을, 위스키 풍미를 더 느끼고 싶다면 플레인 탄산수를 넣습니다. 마지막으로 마트나 편의점에서 쉽게 구입할 수 있는 레몬 원액을 반 스푼 정도 넣어주고 1~2회 정도 저어주면 완성됩니다. 시간이 경과될수록 얼음이 녹고 탄산감도 떨어지기에 하이볼은 되도록 빨리 마시는 게 좋습니다. 물론 '책임 있는 음주'가 중요하니까 자신의 주량에 맞게 마셔야 하지요.
마지막으로 조금 재미있는 도전도 해보았습니다. 요즘 인스타그램에서 핫한 레시피인데 얼음 대신 '고드름'이라는 과일맛 아이스크림을 사용해 하이볼을 만드는 것이지요. 만드는 방법은 동일하고 탄산수는 플레인으로 사용해야 합니다. 단맛을 싫어하는 분들이라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 테지만, 가끔 달달한 하이볼을 마시는 저로서는 훌륭한 대안이었습니다. 다만 많이 마시기는 좀 어려울 것 같았습니다. 나이 탓인지 단 하이볼은 한 잔이면 충분하더라고요.
집에 위스키가 아무리 많아도 한 잔 마시는 법이 없었습니다. 가족, 친지분들께 선물하는 게 전부였습니다. 집에서는 맥주 한 캔이면 충분했습니다. 여전히 맥주 한 캔으로 길고 긴 밤을 버티지만, 가끔 맥주맛이 버거울 때가 있습니다. 무더운 여름에는 더욱 그렇습니다. 그럴 때면 위스키 하이볼 한 잔을 만듭니다. 나를 위한 한 잔이니 가성비보다는 취향을 따릅니다. 물론 레이먼드 챈들러가 말한 것처럼 세상에 나쁜 위스키는 없습니다. 그저 덜 좋은 위스키가 있을 뿐. 당신의 눈동자에 건배, 치얼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