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첫 번째 교통사고
생애 첫 번째(공식적인) 교통사고를 당했습니다. 가벼운 접촉 사고라 자동차도 사람도 크게 다치지는 않았습니다만, 수리 비용이 2백만 원 이상 나온 데다 저도 허리가 삐끗해 병원에서 치료를 받아야 하니 작은 사고라도 교통사고는 참 무섭습니다.
사실 비공식적인 첫 번째 교통사고는 20여 년 전 눈 내리는 어느 겨울날이었습니다. 갑자기 내린 눈에 도로가 미끄러워진 탓에 신호 대기 중인 제 차를 뒤차가 그대로 박아버린 사고였습니다. 마침 그 당시 저는 스키를 타다 넘어져 갈비뼈에 금이 간 상태였습니다. 소리 내 웃거나 기침만 해도 고통스러웠지요. 그런 상황에서 뒤차와의 충돌로 갈비뼈가 그대로 핸들에 부딪혔으니 얼마나 아팠을지 상상이 가시나요? 차 문을 박차고 나와 뒷목 잡는 장면이 왜 교통사고의 클리셰인지 이해되는 순간이었습니다. 가슴을 움켜 잡고 나와 분노에 찬 발걸음으로 뒤차로 향했습니다. 난폭하게(?) 운전한 인간에게 정의가 살아있음을 보여주리라 다짐했더랬습니다. 당황했는지 뒤차 운전자는 밖으로 나올 생각을 하지 않았습니다. '오, 이것 봐라. 무례하기까지 하군!' 괘씸죄가 추가되는 건 순간이었습니다. '오늘 임자 제대로 만났어!' 전투의지가 활활 타올랐습니다.
결과적으로 사고 낸 차를 그냥 보내주었습니다. '측은지심'이 발동했다고나 할까요. 경차, 40대 중반 가장, 아내와 아이 둘, 노모까지 모시고 모처럼 외식하러 나온 가장에게 가혹하게 굴 수 없었습니다. 노모와 아이들이 없었다면 심한 말 몇 번은 날렸을 테지만 차마 그럴 수 없었습니다. 게다가 엄청난 충격(?)에 비해 제 차가 왠지 멀쩡했습니다. 그저 스크래치가 조금 났을 뿐이었습니다. 새 차도 아니고 어차피 낡은 중고차를 구입했던 터라 그 정돈 아무것도 아니었습니다. '중2병'보다 무서운 '쿨병'이 돋았습니다. "그냥 가세요, 앞으로 안전 운전하시고요." 용서할 수 없는 상황에서 기꺼이 관용을 베푼 저 자신이 조금 멋져 보였습니다.
어쩌면 이번 사고는 그때보다 더 경미했다고 할 수 있지만, 그냥 넘어갈 수 없었습니다. 우선 사고 난 차가 회사차였습니다. 가드와 범퍼가 눈에 띌 정도로 우그러졌습니다. 부딪친 순간 허리에 통증도 느껴졌습니다. 하지만 무엇보다 그냥 넘어갈 수 없다고 마음을 굳힌 건 제 차와 접촉 사고를 일으킨 뒤차 운전자가 옆차와 입씨름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접촉 사고가 났는 데도 여전히 두 차 간에 고성이 오갔습니다. 아, 정말 이 사람들 뭔가 싶었습니다.
접촉 사고 낸 운전자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문제 제공은 상대편이 먼저 했다고 합니다. 난폭 운전해 몇 마디 하니 고성이 오가고 그 과정에서 결국 신호 대기 중인 제 차를 보지 못하고 충돌하고 만 것이지요. 하지만 정작 난폭 운전자는 사고를 일으키지 않았으니 바로 그 자리를 떴고 제 차를 그대로 박아버린 운전자는 졸지에 교통사고 가해자가 되었습니다. 졸지에 저만 고래 싸움에 새우등 터진 꼴이 되었습니다.
솔직히 운전할 때면 가끔 거친 말이 나오는 순간이 있습니다. 차창 서너 번 내리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을까요. 그렇게 고성이 오가고 쌍욕이 터져 나와도 기분이 개운하지는 않습니다. 그걸 알면서도 운전대만 잡으면 왜 우리는 '싸움닭'이 되는지.....
'예스맨'이라고 불리는 친구가 운전할 때 쌍욕하면 네 기분만 더러워지는데 뭐 하러 그러느냐며 꽤 괜찮은 방법을 알려주었습니다. 거친 말이 나오려고 할 때면 그 친구의 솔루션을 떠올려 긴급처방하기도 합니다. 감정을 실어 "동그라미!" 또는 "네모!"라고 말하는 겁니다. 때론 "정육각형"도 좋습니다. 분노한 감정의 농도는 묽어지는데 기분이 나빠지지는 않더군요. 차창을 내리더라도 상대 운전자에게 도형 이름이 나쁘게 들리지도 않을 테니 싸울 명분도 없습니다. 꽤 괜찮은 방법이지만, 계속 사용하면 '한계효용체감의 법칙'이 적용됩니다. 그때는 다른 이름을 불러보는 것도 한 방법일 듯합니다.
운전하다 어디선가 도형 이름이 크게 들리면 그 차는 웬만하면 피해 가는 것도 안전운전의 지름길이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