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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나 잘하세요

윗몸일으키기의 충격

by 조이홍

걸음마보다 수영을 먼저 시작한 덕분에 우리 집 아이들은 몸이 참 예뻤습니다. 어깨도 쭉 벌어지고 군살 하나 없이 건강했습니다. 게다가 한때 마스터즈 수영대회에 참가하기 위해 강도 높은 훈련을 받더니 배에 선명하게 '王'자도 새겨졌습니다. 제가 평생 노력해도 가질 수 없었던 걸 아이들은 이미 초등학생 때 갖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모든 걸 굳이 과거형으로 말하는 까닭은, 이미 눈치채셨겠지만, 더 이상은 그런 예쁜 몸매를 유지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언젠가는 코로나로 수영장이 문을 닫아서, 코로나가 끝나니 학업에 정진해야 하는 나이가 되어서 그렇게 수영은 자연스럽게 아이들과 멀어졌습니다. 코로나 때 수영장이 문을 닫으면서 아내는 달리기(마라톤)와 등산으로 방향을 틀어 건강미 넘치는 몸매를 유지할 수 있었지만, 각각 고등학생과 중학생이 된 아이들은 그렇지 못했습니다.


특히 둘째 아이는 코로나 시기에 맹장수술을 한 이후 수영과 완전히 결별했습니다. 첫째 아이는 바쁜 고교 생활에도 틈틈이 수영장을 찾았지만, 둘째는 그러지 않았습니다. 다른 운동에, 예를 들어 주짓수, 도전해 보기도 했지만, 공교롭게도 등록한 지 한 달도 채 지나지 않아 다리에 깁스를 하는 사고가 발생했습니다. 아, 물론 운동하다가 그런 건 아니고 학교에서 놀다가(?) 그랬답니다. 10년 이상 매일 일정하게 운동하던 아이가 운동하지 않으니 살이 오르는 건 시간문제였습니다. 살이 좀 올라도 건강하기만 하면 사실 아무 문제도 없습니다. 그런데 병원에서 경고(?)까지 듣는 처지가 되었으니 가만히 두고 볼 수만은 없었습니다.


마침 이사 때문에 대청소를 하게 된 K 형네 집에 손을 보태러 가게 되었습니다. 아이들 교육 문제로 주말 부부로 살다가 이번에 하나로 합치게 되었습니다. 솔직히 청소는 핑계고 K 형의 마지막 자유(?)를 함께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한바탕 자유를 만끽하고, 그래도 왔는데 뭐라도 해야지 싶어 집 치우는 걸 도왔습니다. 그때 거실 한편에 질서 정연하게 자리 잡고 있는 운동기구들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그다지 자리를 차지하지 않으면서도 효과적으로 운동할 수 있는 기구들이었습니다. 둘째 얼굴이 아른거렸습니다. 아파트 헬스장에 다녀온다고 서너 시간 자리를 비우면서 땀 한 방울 흘리지 않는 기적을 보여주는 바로 그 아이 말입니다. 두 집이 하나로 합치는 터라 웬만한 건 처분한다고 했으니 운동기구들은 자연스레 제 것이 되었습니다. '홈트'의 세계가 눈앞에 다가왔습니다.


둘째 아이에게 전수해 주기 위해 K 형에게 사용법을 배웠습니다. 사실 사용법이라고 할 것도 없는 아주 간단한 운동기구였지만, 아이 앞에서 실수하지 않기 위해 찬찬히 실습해 가며 사용법을 익혔습니다. 그날 저녁, 친구와 배드민턴을 쳤다면서 어김없이 교복 상, 하의가 뽀송뽀송하다 못해 바짝 마른 상태로 귀가 한 아이를 거실 한가운데로 불러 앉혔습니다. "이제 아파트 헬스장 안 가도 돼. 이 기구들로 집에서도 간편하게 운동할 수 있으니까. 자, 아빠가 설명해 줄 테니 잘 들어 봐." 아이에게 '윗몸일으키기'를 할 수 있는 발걸이 거치대부터 설명했습니다. 바닥에 흡착해 두 발을 걸면 쉽게 윗몸일으키기를 할 수 있는 정말 간단한 기구였습니다. 기왕 설명한 김에 윗몸일으키기 하는 것도 시범을 보여주어야겠다 싶어 대여섯 번 동작을 반복했습니다. 실수였습니다. 오랜만에 윗몸일으키기를 했던 탓인지 볼록 나온 배가 장이 꼬이는 것처럼 아팠습니다. 앉을 수도 누워 있을 수도 없어 데굴데굴 굴렀습니다. 둘째 아이가 동그란 눈을 껌뻑거리며 "아빠, 왜 그래?" 물었습니다. 오랜만에 윗몸일으키기를 했더니 배가 아파서...,라는 변명 따위는 할 수 없었습니다. "지난번 교통사고 났었잖아. 허리가 아파서."라고 얼버무렸지만, 역시 아이는 믿지 않는 눈치였습니다. 5분 정도 누워 있자 꼬인 근육이 서서히 풀리기 시작했습니다. 옆에서 팔 굽혀 펴기용 운동기구를 사용하던 아이가 그제야 "아빠도 운동 좀 해." 합니다.


주말 오전, 아이는 헬스장으로 운동 다녀오겠다며 집을 나섭니다. 그 모습을 말없이 지켜보던 저는 여전히 거실 중앙에 자리 잡은 운동기구를 물끄러미 바라봅니다. 괜히 아이 운동시키려다 소중한 제 배만 혹사시켰습니다. 친절한 금자 씨가 이 모습을 보았다면 이렇게 속삭였겠지요. "너나 잘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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