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완벽한 생일

by 조이홍

11시 59분 56초, 57초, 58초, 59초. 00시 00분.

자정이 되자 마치 사전모의라도 한 것처럼 휴대폰이 정신없이 울리기 시작합니다.

쏟아지는 생일 축하 메시지로 스마트폰이 금방 후끈 달아오릅니다.

직장 선, 후배와 가족, 친지들 심지어 전 직장 동료들로부터 귀여운 이모티콘들이 도착합니다.

이 많은 걸 언제 다 답장하나 고민하는 찰나 삑삑 삑삑 삑 도어록 열리는 소리가 들립니다.


독서실에서 늦은 시간까지 공부하고 돌아온 첫째 아이입니다.

무거운 가방을 내려놓지도 않고 다른 손에 들고 있던 알록달록 예쁜 상자를 식탁 위에 올려놓습니다.

모르는 척하려 해도 결코 그럴 수 없는 생일 케이크가 눈에 들어옵니다.

"생일 축하합니다, 아버님. 내가 제일 먼저 축하한 거지?"

자신 있게 말하는 아이에게 슬쩍 휴대폰을 밀어 보입니다.

"아까비! 암튼 축하해, 아빠."

"얼른 씻고 일찍 쉬어. 공부하느라 피곤했을 텐데."

생일 축하는 아침 일찍 하기로 잠을 청하러 갑니다.

왠지 금방 잠들 것 같은 밤입니다.


바쁜 평일 아침이지만, 모처럼 식탁에 온 가족이 둘러앉습니다.

장모님이 끓여준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미역국과 갈비가 아침 식탁을 풍요롭게 만들어줍니다.

식탁 한가운데 딸기 생크림 케이크에는 다섯 개의 초가 활활 타오릅니다.

"생일 축하합니다, 생일 축하합니다, 사랑하는 아빠의 생일 축하합니다."

"소원 빌어, 아빠"

"어서 들 먹고 등교해. 지각할라."

마음에도 없는 소리를 합니다.

늘 챙겨주는 사람이었는데 이렇게 챙김 받는 것도 나쁘지는 않다고 생각합니다.

쭈뼛쭈뼛 둘째 아이가 수줍게 생일 카드를 전합니다.

"난 형아처럼 용돈이 많지 않으니까, 편지 썼어, 아빠. 생일 축하해!"

여전히 삐뚤빼뚤한 필체이지만 오늘만큼은 악필마저 귀여워 보입니다.

"평소에 잘해."

또 마음에도 없는 소리를 합니다.


외근 나갔다가 늦은 점심을 먹으로 식당을 찾습니다.

든든하게 아침을 챙겨 먹은 덕분인지 그다지 배가 고프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생일인데 끼니는 거르지 말아야겠다 싶습니다.

뭘 먹을까 한참 고민하다 허름한 중국집이 눈에 들어옵니다.

그래, 생일에는 역시 짜장면이지.

옛날 짜장 한 그릇 주문하고, 어머님께 전화를 드립니다.

수화기 너머로 노쇠한 어머니의 음성이 들려옵니다.

"엄마, 아들. 고생했어요, 아들 낳느라. 감사합니다."

"미역국은 먹었어?"

아들이 생일 미역국 먹었는지 먼저 챙기는 어머니입니다.

"그럼요, 장모님이 고기 많이 넣고 맛있게 끓여 주셨어요."

장모님께 감사 인사를 전하고 장인어른 안부를 묻는 어머니.

사실 가장 걱정스러운 건 어머니의 건강입니다.

요즘 부쩍 살이 빠져 걱정이라고 했더니 밥 잘 먹으니 걱정 말라고 합니다.

왠지 자꾸 목이 멥니다.


"오늘 생일이세요? 본의 아니게 통화를 듣게 돼서. 저희 집은 생일자는 짜장면이 공짜라."

목이 메는 것도 잠시, 짜장면 공짜라는 중국집 사장님 이야기에 눈이 번쩍 뜨입니다.

주민등록증을 보여주고, 공짜 짜장면 한 그릇을 싹 비우고 식당을 나섭니다.

정말 완벽한 생일이다 싶습니다.


모처럼 정시에 퇴근하니 집안이 조용합니다.

닷새 후면 첫째 아이 생일이라 약속했던 파스타를 만들어 주기로 합니다.

닷새 전에는 둘째 아이 생일이었는데 백짬뽕과 탕수육을 원해 줄 서서 먹는 식당에 갔더랬습니다.

아직 중국 요리는 도달할 수 없는 경지입니다.

아빠가 만든 파스타가 얼마나 맛있을까 싶지만, 첫째 아이는 참 맛있게 먹습니다.

요리하면서 들으려고 틀어 놓은 라디오에서 윤하의 '사건의 지평선'이 들려옵니다.

와, 오늘 도대체 뭔 일이야. 왜 이렇게 좋은 일만 생기는 거지.

이러니까 꼭 꿈꾸고 있는 것 같잖아, 싶습니다.

정말 완벽한 하루, 완벽한 생일입니다.




이 글은 픽션입니다.

제 생일에 실제로 일어난 일은 딱 한 가지밖에 없습니다.

과연 어떤 사건이 실제로 일어났을까요?

:)

keyword
작가의 이전글너나 잘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