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마스 앤 위스키

세상에 나쁜 술은 없다

by 조이홍

위스키 업계에서 오랜 기간 활동하며 '위스키 전문가'인 척했는데 그간 '크리스마스 그림책'은 몇 번이나 추천하면서 정작 제대로 위스키를 추천해 본 적은 없었습니다. 사실 브런치는 위스키보단 그림책과 더 잘 어울리는 플랫폼이지만, 편견인가요, 어느 때보다 썰렁한 연말이라 흥겨운 분위기라도 좀 내볼까 해서 '크리스마스에 어울리는 위스키'라는 글을 써보자 마음먹었습니다. 지극히 개인적인 경험이라 어, 나는 생각이 다른데 하실 수도 있지만, 그건 너무나도 당연합니다. 술맛이란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나도 다른 풍미를 느낄 수 있는 법이거든요. 그러니 꽉 닫힌 지갑과 마음의 문을 활짝 열고 편안하게 읽어 주심 좋겠습니다. 요즘 위스키 업계가 춥다 못해 꽁꽁 얼었거든요. 오늘 밤에는 위스키 한 잔 해볼까 하면 더할 나위 없겠고요. 그럼 출발합니다. 고고!


크리스마스 하면 으레 떠오르는 건 새빨간 산타복을 입은 산타할아버지와 크리스마스트리일 테지요. 그래서일까요. 왠지 크리스마스 위스키하면 셰리 피니시 위스키, 그중에서도 일명 '셰리밤'이라 불리는 위스키가 가장 먼저 생각납니다. 참고로 셰리(Sherry)는 스페인 안달루시아에서 만들어지는 강화 와인으로 견과, 초콜릿, 건과일, 캐러멜 같은 깊은 풍미를 갖는 술을 말합니다. 이 노트들이 왠지 익숙하지 않나요. 그렇습니다. 크리스마스 케이크나 디저트에 많이 사용하는 재료들이기도 합니다. 위스키를 만들(숙성할) 때 셰리를 담았던 오크통에 6개월에서 2년까지 추가 숙성하는 과정을 피니시(Finish)라고 하는데 이 과정에서 셰리가 가진 풍미가 폭발적으로 밀려오며 존재감이 전면에 드러난 위스키를 보통 셰리밤이라고 부릅니다. 대표적인 제품으로는 맥캘란, 글렌드로낙, 글렌파클라스, 글렌알라키 등이 있습니다. 저도 이 제품들을 한두 가지는 마셔봤는데 가장 마음에 들었던 건 '맥캘란 18'이었습니다. 풍미는 역시 셰리셰리하더군요. 왜 맥켈란, 맥켈란 하는지 확 이해되었습니다. 건포도와 오렌지, 초콜릿, 약간의 스파이스까지 셰리 캐스크의 특징적인 요소들이 어느 것 하나 튀지 않고 환상적인 균형을 보여줍니다. 음, 정말 맛있네,라는 감탄사가 절로 나올만한 위스키죠. 온라인 가격이 50만 원 내외라 다소 부담스럽지만, 나를 위한 크리스마스 선물로 큰마음먹고 질러볼 만한 제품입니다. 크리스마스트리 옆에서 조명을 낮추고 눈 내리는 창밖을 내다보며 맥캘란 18 한 잔, 캬~~~~ 저도 언젠가 해보리라 결심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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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한 친구나 가족과 함께 하는 크리스마스 저녁 식사 자리라면 부담 없이 마실 수 있는 '제임슨'을 추천합니다. 제임슨은 맛도 가격도 정말 가벼운 아이리시 위스키의 대명사입니다. 트리플 디스틸링, 즉 세 번 증류 과정을 거쳐 깔끔하고 가벼운 위스키를 만들어 내는 것이 아이리시 위스키의 특징인데 제임슨은 이를 가장 잘 구현해 낸 제품입니다. 한때는 한 달에 열 상자도 나가지 않는 아픈 손가락이었는데 코로나 이후 '가성비 갑' 위스키로 소문나면서 지금은 회사를 먹여 살리는 효자 브랜드가 되었습니다. 온라인 가격은 3만 원 초반대이고 한 모금 마시면 꽃과 바닐라, 견과류가 입안에 밀려오고 이후 벌꿀, 달콤한 스파이시로 마무리됩니다. 아이리시 위스키는 영 심심해서 별로라고 하는 분들도 많지만, 니트로 마셔도 좋고, 진저에일과 섞어 마셔도 좋습니다. 부드러움과 균형감 있는 맛으로 위스키 입문자들을 위해서도 좋은 선택지 중 하나입니다. 라임으로 가니시 한 제임슨 하이볼 한 잔, 평소 위스키를 즐기지 않는 고모, 숙모에게도 이만한 술은 없습니다. 입이 즐거워지는 위스키라고나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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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관적으로, 시각적으로 크리스마스가 연상되는 건 버번 삼대장 중 하나인 '메이커스 마크'입니다. 맞습니다, 붉은 왁스로 밀봉한 캡으로 유명한 버번위스키입니다. 지금도 한 병 한 병 사람이 직접 밀봉을 한다고 합니다. 제품명답게 장인정신이 느껴집니다. 보통 호밀을 쓰는 버번들과 달리, 밀을 베이스로 해 부드럽고 단 맛이 느껴지는 위스키입니다. 매시빌(곡물 배합 비율)은 옥수수 70%, 밀 16%, 맥아 보리 14%입니다. 버번위스키는 역시 '타격감'이야 라고 말하는 버번 애호가들에겐 바닐라와 캐러멜, 과일과 향신료의 균형감 잡힌 메이커스 마크는 조금 특별한 존재입니다. 온라인 가격은 5만 원대로 버번 콕으로 즐겨도 좋고, 탄산수를 섞어 하이볼로 마셔도 좋지만, 역시 제대로 풍미를 느껴보고 싶다면 물 한 방울 떨어뜨려 니트로 마셔보기를 추천합니다. 한 방울의 물이 에탄올을 활성화시켜 풍미를 120%까지 느끼게 해 줍니다. 역시, 맛있네 하는 감탄사가 자연스레 나오는 위스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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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득이하게(?) 크리스마스 파티를 주최해야 하는 입장이라면, 가성비 갑 위스키로도 부담된다면 '갓성비' 스카치위스키 '글렌 맨션'을 추천합니다. 최근에 국내에 소개된 제품으로 아직 아는 사람보다 모르는 사람이 더 많지만, 700ml 기준 1만 5천 원이라는 놀라운 가격으로 입소문 타기 시작한 무서운 신예입니다. 통상 저가 위스키들이 갖는 풍미의 한계는 명확한데, 글렌 맨션은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해, 이 가격에 이런 맛이 난다고 할 정도의 풍미와 균형감을 갖췄습니다. 특수 관계인이라서가 아니라 요즘 뜨는 위스키 중 하나입니다. 저가 위스키는 알코올 부즈도 심하고, 어차피 타 먹는 술(하이볼이나 칵테일 베이스라는 의미로)이라 싼 맛에 산다고들 하지만, 이 위스키는 니트나 온더락으로 즐기기에도 무난합니다. 그냥 마셔도 맛있으니, 하이볼로 마시거나 콜라(특히 체리콕)와 타 먹는다면 더욱 가볍게 즐길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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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도한 건 아니지만 스카치위스키, 아이리시위스키, 버번위스키에서 각각 하나씩 추천하게 되었습니다. 마지막에 소개한 글렌 맨션은 스코틀랜드에서 숙성, 블렌딩하고 병입은 네덜란드에서 했지만, 스카치위스키 법에 의해 스카치위스키 위상을 갖습니다. 일본 위스키나 대만 위스키, 인도 위스키 중에서도 소개하고 싶은 브랜드들이 있지만 아직 경험의 폭이 그곳들까지는 닿지 않아 다음 기회로 미루겠습니다. "Whisky is liquid sunshine(위스키는 햇살이 담긴 액체이다)."라는 말을 좋아합니다. 위스키의 호박 같은 영롱한 빛깔을 빗댄 표현일 테지요. 사실 증류를 마친 위스키는 물처럼 투명합니다. 오크통이라 불리는 나무통에 오랜 시간 머물면서 우리가 알고 있는 황금빛 자태가 흘러나오게 됩니다. 사실 위스키의 가장 큰 적은 햇빛입니다. 알코올 도수가 높아 변하지 않지만 직사광선에는 취약하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위스키를 햇살이 담긴 액체라고 표현하다니 너무 멋지지 않은가요. 위스키 업계에는 이런 말도 있습니다. "우리는 마시라고 만들었는데, 왜 당신은 선반 위에 올려만 두는가!"


크리스마스입니다. 오늘 밤에는 당신의 눈동자를 위해, 건배!


<이미지 출처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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