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 없이도 잘 살아지더라

탈. 팡. 선. 언.

by 조이홍

즉석밥 2박스와 탄산수 1박스를 주차장부터 현관까지 낑낑 대며 들고 왔습니다. 영하의 날씨에도 굵은 땀방울이 뚝뚝 떨어집니다. 아, 이렇게 몸을 안 썼나 스스로를 책망합니다. 사람이란, 사람의 몸이란 참으로 간사합니다. 편리함에 금방 익숙해집니다. 예전에는 몇 개나 되는 박스를 이고 지고 옮겼더랬습니다. "아빠, 시식하러 가자!" 주말이면 마트로 소풍 가던 시절이었습니다. 먹는 것 반, 버리는 것 반이라 점점 마트로 향하는 발길이 뜸해졌습니다. 그때부터였던 것 같습니다. 쿠팡을 애용하게 된 것이.


쿠팡이 얼마나 편한지 말하면 입만 아픕니다. 오늘 손가락 몇 번 움직이면 내일 새벽 문 앞에 주문한 물건이 턱 하니 놓여 있습니다. 무거운 물건을 애써 들고 올 필요도 없습니다. 집에 싸놓을 것도 없이 필요할 때, 필요한 물건만 주문하면 됩니다. 아, 이토록 아름다운 세상이라니! "고마워요, 잡스 형!"


총알배송, 로켓배송의 편리함 이면에 쿠팡 노동자들이 목숨을 잃는 안타까운 사고가 빈번하게 발생했습니다. 그때부터였습니다. 와우 회원 탈퇴와 함께 쿠팡을 조금씩 멀리하게 되었습니다. 일주일에 두세 번에서 한 달에 한두 번, 분기에 한두 번으로 사용 빈도가 줄어들었습니다. 사실 요즘엔 1년에 한두 번밖에 사용하지 않으니 쿠팡 입장에서 더 이상 좋은 고객은 아닐 터입니다.


쿠팡 고객 정보 유출과 이에 대한 안하무인 대응을 보고 탈팡을 마음먹었습니다. 이전부터 조금씩 정을 뗀 건 어쩌면 이런 날을 예상해서였는지 모릅니다. 아쉬울 것도 불편할 것도 없을 터니까요. "어차피 우리 말고는 대안도 없잖아!" 식의 대응에 시청하던 뉴스를 꺼버렸습니다. 대안이 왜 없어! 우리 동네에 마트도 있고 정육점도 있고, 야채가게도 있고..., 참, 차 타고 20분은 가야 하지만 전통시장도 있는데! 입으로는 상생, 상생하면서도 소상공인을 압박해 부당한 이윤을 취하고 노동자에게 퇴직금을 안 주려고 꼼수를 부리며, 고객의 정보를 하찮게 여기는 플랫폼을 계속 써야 할 이유를 하나도 찾지 못했습니다.


부글부글 끓다가도 시간이 지나면 이 또한 잊히겠지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맞습니다. 또 그럴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탈퇴하기로 작정했습니다. 탈팡 앞에 쿠팡이 배우는 게 있으면 좋겠습니다. 김범석 의장의 초창기 인터뷰가 새삼 화제입니다. '사람'이 먼저라는. 쿠팡이 플랫폼 괴물이 아니라 사람을 위한 플랫폼으로 거듭나게 될까요. 현재로선 그럴 가능성이 제로에 가까워 보이지만, 그래도 일말의 기대는 해봅니다. 성선설을 믿어서는 아닙니다. 너 없어도 잘 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조금은 불편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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