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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이홍 Oct 22. 2019

선입견을 깨준 중문색달 해수욕장

탐라유람기 아들 둘과 제주 한달살이 이야기

  준, 큐 형제도 아장아장 걷던 때가 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아득한 옛날처럼 느껴지지만 그런 시절이 있었다. 잔소리? 아이들을 혼내는 것은 적어도 우리 집 이야기는 아니었다. 누가 천사한테 잔소리를 하겠는가? (듣자 하니 악마 루시퍼도 천사 출신이라고 하지만 말이다.) 사랑 충만한 황금시기였다. 


  그때는 제주로 휴가를 오면 중문 관광단지 내로 숙소를 정했다. 성수기 숙박비는 적지 않은 부담이었지만 준, 큐 형제를 돌보면서 휴가를 즐기려면 다른 대안이 없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호텔 조식이 세상에서 제일 맛있다는 준, 큐 형제의 입맛도 크게 작용을 했다. 무엇보다 중문 관광단지는 편했다. 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식물원, 박물관이 걸어서 갈 정도로 가까운 거리였고, 식당도 다양했다. 병원, 약국도 가까웠다. 어린아이와 여행할 때 병원 위치 파악은 특히 중요하다. 하지만  아이들과 함께 해수욕을 할 때는 주로 협재나 곽지 해수욕장으로 갔다. 가까운 곳에 중문색달 해수욕장이 있었지만 한 번도 가볼 생각은 하지 않았다. 관광객이 많은 중문 관광단지 내 해수욕장은 사람도 많고 그만큼 물도 지저분할 것이라는 선입견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제주 생활을 일주일 정도 남겨 두고 계속 날씨가 좋지 않았다. 어떤 날은 하루 종일 비가 왔다. 이제는 제주 생활에 노하우가 생겨 비가 내려도 다양한 백업 플랜이 있었다. 하지만 바닷가에서 더 놀고 싶었다. 이렇게 허무하게 끝내고 싶지 않았다. 그러다 인터넷으로 날씨 상황을 체크하던 아내가 일단 나가자고 했다. 오랜만에 가까운 중문으로 가보자는 것이다. 계속 비가 오면 여미지 식물원에 가도 될 터이니 일단 중문으로 향했다. 그런데 중문에 도착해 보니 거짓말처럼 비가 싹 그쳤다. 언제 그랬냐는 듯 해가 쨍쨍 떴다. 아내는 정녕 신계에 속한 존재란 말인가? 날씨를 꿰뚫어 보고 있다니! 우리는 서둘러 중문색달 해수욕장으로 향했다. 그리고 선입견 때문에 이렇게 아름다운 곳에 와보지 못한 내 어리석음을 깨닫는데 10초도 걸리지 않았다. 

  알고 보니 중문색달 해수욕장은 우리나라 해수욕장 가운데서도 최고의 청정 해수욕장으로 꼽힐 만큼 깨끗한 수질을 자랑하는 곳이었다. 진모살이라고 불리는 특유의 모래가 이국적인 아름다움을 더해주고, 사계절 내내 힘차게 밀려오는 파도 덕분에 ‘서퍼들의 천국’으로 불리기도 한다. 여름의 끝자락인데도 많은 서퍼들이 파도를 즐기고 있었다. 사실 강한 파도는 준, 큐 형제가 바다를 즐기는 방법과는 조금 맞지 않았다. 파도 없는 잔잔한 바다를 더 좋아하기 때문이다. 어디에 있어도 혼자 잘 노는 큐는 어느새 모래를 깊게 파 수중 터널을 만들고 있었다. 아내와 휴대폰 사용시간제한 문제로 사소한 마찰이 있던 준은 혼자 해변을 이리저리 걷고 있었다. (해가 날 테니) 수영복을 챙겨 가자는 아내의 제안을 내가 싹둑 잘랐는데 (계속 비가 올 것 같아) 다행히 그 화살이 내게 향하지는 않았다. 아마도 다들 오랜만에 보는 햇살 덕분에 마음에 여유를 찾은 것 같다. 양털 같은 구름이 태양 주위에 펼쳐져 있고 지칠 줄 모르는 서퍼들은 쉬지 않고 파도를 즐기고 있었다. 모든 사람이 다 행복해 보였다. 아이들도, 어른들도, 연인들도, 어느 노부부도 이 순간만큼은 웃고 있었다. 정말 평화로운 오후였다.        

  모처럼 중문에 왔으니 문화의 혜택도 좀 누리기로 했다. 오랜만에 별다방 커피를 마시기로 한 것이다. 회사 다닐 때는 하루에 몇 잔씩 마시고, 휴일에도 하루에 한 잔 이상은 마셨는데 제주에서는 프랜차이즈 커피를 마실 일이 없었다. 준의 휴대폰 사용 시간은 당분간은 하루 30분으로 하되 학생회 일이나 수업 준비 등으로 필요할 때는 시간을 풀어주는 것으로 합의를 보았다. 게임도 하고 싶고 친구들과 깨톡도 하고 싶은 심정은 충분히 이해하지만 마냥 풀어줄 수도 없었다. 우리가 제시한 협상안을 그대로 받아준 준이는 사실 속이 깊은 아이다. 아내와 나도 항상 느끼고 있지만 잔소리가 시작되면 잘 멈추지를 못한다. 아이는 부모의 사랑을 먹고 성장하고, 부모는 그런 아이를 보며 더욱 성장해야 하는데 그것이 쉽지만은 않다. 완벽한 부모보다는 친구 같은 부모가 되고 싶다고 늘 생각해 왔는데 아직 그 깃털보다 가벼운 권위를 버리지 못한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비 온 후 맑게 갠 중문 하늘 아래서 오늘도 나는 참된 아빠의 길을 생각해 본다. 정말 그런 길이 있다면 누가 좀 속시원히 알려주면 안 될까?




<아빠가 알아두면 좋을 중문 관광단지 이야기> 

    

  중문 관광단지는 제주의 독특한 자연경관과 지리적 조건을 활용하여 국제적인 휴양지로 개발하고자 제주도 종합개발계획에 의하여 한국관광공사가 1978년부터 서귀포시 중문, 대포, 색달동 일원에 조성했다. 2018년 현재 중문 관광단지는 하얏트호텔, 신라호텔, 롯데호텔, 스위트호텔, 하나호텔, 씨에스호텔, 켄싱턴호텔, 부영호텔, 부영 콘도, 한국콘도 등 숙박시설 10개소와 중문골프장(18홀), 제주국제컨벤션센터·제주국제평화센터가 운영되고 있다. 또한 천제연폭포, 주상절리대, 여미지식물원, 테디베어 뮤지엄, 믿거나 말거나 박물관, 퍼시픽랜드, 박물관은 살아있다, 초콜릿랜드, 플레이 케이팝 등 관광시설이 있다. 


  1991년 4월 한·소 정상회담을 시작으로 한·미·중·일 등 세계 열강의 정상회의를 비롯한 각종 대형 국제회의가 개최되고 있어 세계인들이 제주도를 평화의 섬으로 주목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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