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으로 나의 커리어, 어떤 자세로 살아야 하나?
우연히 오프라 윈프리의 유튜브 짤을 보게 되었다. 지난한 역경을 딛고 이만큼 성장을 이룰 수 있었던 이유가 무엇이었냐는 질문에 오프라는 여유 있고 당당한 표정으로 말했다. "난 내가 성공할 것이라는 데에 의심의 여지가 없었어요. 내 인생에 대한 비전은 늘 정확했죠. 많은 사람들이 그 비전이 없어서 헤매고 힘들어합니다." 중간에 힘들어도 그 비전이 있어야 끌고 갈 힘이 생긴다는 내용이었다.
50대 초반의 직장생활에 대해 고민하면서, 그동안 직장 선배들에게 종종 듣던 말이 생각났다. 차라리 회사에서 정리해고가 되었으면 한다는 것이었다. 40대 초반에 혈기 왕성했던 나에게 그 말은 꽤 무책임한 말로 들렸다. 열심히 해서 회사에 기여하고, 내 성장에도 도움이 되는 사람이 돼야지 왜 저렇게 무기력한 말들을 하실까? 그랬던 내가 이제는 그 마음을 알 것 같다. 나이는 들어가고, 승진과 배움의 기회는 적어지면서 잘 나가는 몇몇을 빼고는 회사에서 운신의 폭이 줄어드는 게 사실이다. 또 한 가지 중요한 점은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이러다 결국 나도 죽게 되는구나. 이 나이에 이렇게 사는 게 맞나? 좀 더 의미 있는 일을 찾아봐야 하나?
물론, 정리해고에 대해 이 같은 여유 있는 태도를 갖는 것은 미국 재취업시장의 유동성 때문이다. 미국은 나이에 상관없이 경력과 성과가 있다면 재취업이 그다지 어렵지 않다. 나이가 50, 60이 되어서도 다시 취직을 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직장환경과 월급에 대한 기대를 낮추고 체력만 된다면 60이 훨씬 넘어서도 일자리를 찾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게다가 정리해고가 되면 퇴직금으로 적어도 2-6개월 정도는 월급이 나오고, 그 이후에도 비고용자에게 주는 정부 보조금을 18개월 정도는 받을 수 있다. 그 사이에 쉬면서 다시 남은 인생을 계획하자는 발상이다. 스스로 내 발로 회사를 걷어치우고 나가면 결국 다 손해라는 계산이 나오는 것이다.
7월 말에 한국 여행을 하고 미국에 돌아왔을 때는 내 마음에는 단단한 힘과 여유가 생긴 듯했다. 이곳에서 내 일상이 신선하게 느껴졌고, 여행에서 오는 여유 덕에 일에서 오는 스트레스는 대충 넘겨버릴 수 있었다. 1주, 2주가 지나면서 내 마음의 완충작용에 오류가 생기는 걸 느꼈다. 번아웃 증상이 느껴졌다. 머릿속은 생각으로 가득하고, 생각의 결이 정리되지 않았다. 내 커리어는 여기 까지인가 이제 내려놓아야 하나? 더 배우고 성장하려고 하는 마음, 접어야 하나? 지금 내가 힘든 이유, 내 능력 밖의 일을 하고 있나? 어떻게 해서든 내 마음을 편안하게 해 주려고 이런저런 궁리를 했다. 지금껏 열심히 달렸으니, 이제는 좀 쉬어도 되지 않을까? 그러면서 예전 선배님들한테 듣던 소리가 내 생각으로 되돌아왔다. 차라리 정리해고나 됐으면 좋겠다...
그러면서 오프라 윈프리 생각이 났다. 내가 이런 생각과 자세로 직장생활을 하면 난 영락없이 해고가 되겠구나. 그게 정리해고의 형태던 업무평가에서 밀려 나가던 이런 비전으로 살아가면 당연히 내 생각대로 몸이 움직일 테고 동료들은 물론 윗분들도 슬슬 알아차리겠지. 결국 내가 어떤 자세로 살아가느냐가 가장 중요한데, 이렇게 가다간 나에게 마치 주술이라도 거는 듯 거품처럼 사라지겠구나. 그럼 어떻게 마음을 먹어야 하나? 커리어 코치를 만나보기로 했다. 회사에서 Bravely라는 회사와 계약을 맺어 직원들은 언제든 시간약속을 잡고 자신의 고민에 대해 코칭을 받을 수 있다.
지난 2주 동안 두 번의 코칭을 받았다. 결국 그녀가 내가 던졌던 질문은 간단했다. 지금 당신이 온전히 통제할 수 있는 게 무엇입니까? 아무것도 없는 것처럼 느껴졌다. 내 마음의 힘이 빠진 상태, 내 상황과 내 능력에 대해 부정적인 생각들로 가득했다. 내가 통제할 수 있는 건 없는 것 같아요... 했더니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 당신의 생각과 자세는 어때요? 그건 누가 강요할 수 없잖아요? 하면서 부정적인 생각이 들 때, 어떤 말로 스스로를 위로해 주면 좋을 것 같냐고 물었다.
순간 나도 모르게 든 생각, "저는 전문가가 되고 싶어요". 곰곰이 생각해 보니, 나는 어떤 분야의 전문가들을 부러워하곤 했다. "근데 저랑은 거리가 먼 것 같아요". 그랬더니 그녀가 전문가가 되고 싶다는 건 꿈의 상태이고 현실의 상태는 아니라고 했다. 그럼, "전문가가 되고 있는 중이에요"...라는 말은 어떠냐고 내게 물었다. 그 표현이 마음에 들었다. 능동적이고 긍정적으로 다가왔다. 정리회고로 향하는 기차는 수동적이고 체념이 가득해서 별로였다. 전문가가 되고 싶다는 명확함이 좋았다. 그러면서 그녀는 내게 전문가의 단계를 정의해 보고, 내가 어느 수준에 있는지 다음 단계로 넘어가기 위해서는 어떤 지식과 경험이 필요한지 생각해 보라고 했다.
언니는 내게 MBA를 해보라고 권하곤 했다. MBA를 받은 후에 프로덕트 매니저로 커리어를 전환하는 경우도 많고, 그 인맥을 통해 새로운 기회들이 열릴 수도 있으니 꽤 의미 있는 조언이다. MBA를 하면 자신감이 붙을까? 이 지난한 통로에 전기가 될 수 있을까? 결국 내가 원하는 것은 새로운 자극, 새로운 전기를 통해 다시 한번 더 도약하고 싶은 욕망. 돌파구를 찾고 싶은 거였구나. 나이가 들었음을 핑계로 주저앉고 싶지는 않은 거였구나. 이렇게 해도 상황이 날 도와주지 않으면 어쩔 수 없는 거고, 대신 난 할 만큼 다해서 후회는 없는 거고. 내가 실제 MBA에 진학을 할지는 아직 모르겠다. 비용도 엄청나고, 더 바빠질 텐데 할 수 있을까?
그러나 가장 중요한 건 내 마음을 알게 된 것이다. 더 도약하고 싶은 거구나. 승진이 아니고 내 분야에서 전문가로서 내가 몸담고 있는 회사와 고객들에게 기여하고 싶은 마음인 거구나. 이번 주말에는 글 쓰는 의사, 윤홍균 박사님의 생각을 유튜브로 만나게 되었다. 얼마나 큰 위로가 되던지. 많은 이들에게 깨달음과 위안을 주는 사람들, 그들을 전문가라고 하던가? 나와는 거리가 멀다고 생각했던 말, 전문가. 과연 내가 할 수 있을까? 그 과정 중에 있으니 다행이지 않은가? 그렇게 마음을 틀어보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