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최현숙 Sep 02. 2024

내 인생 최고의 선물

중학생 유권이


유권이가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바로 직전 유권이 가족은 큰 몸살을 앓았다. 어느 날 갑자기 아빠가 집에서 사라졌고, 엄마는 왜 아빠를 볼 수 없는지 정확하게 말해주지 않았다. 그 이후로 유권이에게는 집이 두 개다. 엄마 집, 아빠 집, 두 집을 왔다 갔다 하며 그의 초등학년이 지나갔다.


유권이는 아빠가 집을 나간 이유를 엄마에게서 찾는 듯했다. 엄마 때문에 한동안 아빠와 헤어져야 했고 엄마에게 미운 마음이 들었다. 늘 아빠를 걱정하면서 유권이의 불안 정도가 높아지는  듯했다. 같은 말을 반복한다던가, 자신을 지나치게 자책한다던가, 틱 증상을 보이는 것도 같았다. 유권이의 머릿속은 부모님의 이혼으로 가득해서, 한동안 친구들에게는 도통 관심이 없어 보였다. 상담을 시작했으나 유권이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는지는 미지수였다.


그렇게 힘들게 시작한 유권이의 초등학교 생활이 지난 6월에 마감했다. 그 사이 엄마와 아빠의 관계는 많이 회복되었고 유권이도 차차 안정을 찾아가는 듯했다. 친구들에 대한 관심이 증폭했고, 무엇이든 스스로 하고 싶어 했다. 버릇없는 아이로 자라고 싶지 않다며, 중학교에 가면 점심 준비는 자신이 하겠다고 했다. 얼마 전에는 엄마의 친구관계에 대해서 피드백을 주었는데, 너무 정확하게 아픈 곳을 찔러 인정하고 싶지 않았지만 그만큼 생각의 힘이 커졌구나 생각했다.


졸업식에서 유권이는 학년 대표로 상을 받았다. 5학년 학생들이 투표하고 교직원들이 결정하는 방식이었는데, 그 상은 유권이와 루시라는 친구에게 돌아갔다. 루시는 활동적이고 리더십이 월등한 아이였고, 유권이는 힘들 때 언제든 함께 해줄 것 같다는 친구들의 평판이 그 이유라고 했다. 쉽지 않았던 시간들을 유권이가 잘 견뎌주었구나 생각했다. 졸업식장에서 교직원, 학생, 부모님들 앞에서 상을 받는 유권이를 보며 뜨거운 눈물이 흘러내렸다.


졸업식이 끝나고, 친구들과 사진 찍자고 호들갑 떠는 엄마가 부끄러운 듯했지만 그래도 순순히 응하며 사진을 찍었다. 학교에서 나와 함께 Larskpur라는 동네 레스토랑에서 점심을 먹었다. 아직도 같은 차를 타는 게 어색한 지라, 유권이는 엄마 차를 타고, 아빠는 따로 식당에 왔다. 유권이는 그저 다 같이 한 공간에 있는 것만으로도 행복해하는 것 같았다. 이혼수속과 양육권 조정이 끝난 이후에도 엄마 아빠에게 한동안 냉랭한 기운이 느껴졌지만, 이제는 같이 점심을 먹을 수 있는 정도로 관계가 많이 회복되었다. 올봄, 유권이의 연극 공연이 끝나고 함께 한 저녁이 이혼 후 6년 만에 처음으로 함께한 식사였고, 이날 같이 한 점심이 두 번째였다. 식당에서 그저 소소한 이야기들을 나누며 나름 훈훈하게 점심을 먹었다. 점심 후 동네 산책을 제안했으나, 유권이와 아빠는 그냥 집에 가겠다고 했다. 같이 유권이의 졸업을 축하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큰 성공이었다.


이제 유권이에게 부모님의 이혼은 그저 힘들었던 사건 정도로 느껴지는 것 같았다. 다행히 엄마와 아빠의 관계가 회복되면서, 유권이는 자신의 생활과 친구들에 대해 더 큰 관심을 보였다. 혼자서 축구 개인기 연습을 하고, 테니스를 즐겨하고, 무엇보다 친구들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고 싶어 했다. 걸을 때 늘 내 손을 꼭 잡던 유권이는 이제 내게 자기를 애기 취급하지 말라고 하며 작은 일도 자기한테 상의 없이 결정하지 말라고 한다. 키가 158cm 정도로 훌쩍 커버렸고 그의 마음과 정신도 눈부시게 성장하고 있다.


중학생 2주일 차. 8월 말에 동네 공립 중학교에 입학을 했다. 걱정보다는 설렘이 크다. 유권이의 엄마가 될 수 있었던 것은 내 인생의 행운이다.





작가의 이전글 50대 초반의 직장생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