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Mr. Wonka를 마치며

Wonka의 공연을 보는 나의 마음

by 최현숙

올 가을 6학년 생 아들, 유권이가 Mr. Wonka Jr라는 뮤지컬에서 주인공 Mr. Wonka를 맡았을 때 나는 날아갈 듯이 기뻤다. 지난봄 Peter Pan Jr 공연에서 유권이는 Doodles라는 비중이 낮은 캐릭터를 맡았는데, 그때 무대 경험이 좋았는지 또 연극반에 참여하며 지난 3개월 동안 일주일에 두 번씩 연극반에서 연습을 했다. 지난주와 이번주에 걸쳐 6번의 공연이 펼쳐졌다. 참여한 학생 수가 많아 학생들은 두 팀으로 나뉘었고 그 때문에 모든 아이들이 두 역할을 소화해 냈다. 유권이의 경우 3번의 공연은 Wonka로, 나머지 3번은 앙상블 역할이었다.


유권이의 첫 공연을 보러 갔을 때 내 마음은 설렘보다는 걱정과 부끄러움이 크다는 걸 알았다. 유권이가 주인공이니 얼마나 자랑스럽냐고 연극반 엄마들이 축하해 줬을 때, 난 오히려 유권이가 이런 관객들을 실망시키면 어쩌나 괜한 걱정이 들었다.


아니나 다를까? 유권이의 공연을 보면서 나는 마치 연극반 선생님처럼 유권이에게 줄 피드백을 하나하나 챙기고 있었다. 그러다 이러지 말아야지, 이 많은 관객들 앞에서 독창을 하고 그 수많은 대사를 소화해 내는 유권이의 용기와 패기에 격려는 못할 망정... 내가 왜 이러나 싶었다.


지난 금요일 공연에는 동네 커뮤니티 센터의 홀이 꽉 찰 정도로 사람들이 많이 모였다. 어른들 표 한 장에 10불, 아이들 5불. 공짜도 아니고 매번 공연을 볼 때마다 돈을 내야 했고, 많은 부모들이 6번의 공연을 매번 참석하기도 했다. 매 공연 어림짐작으로 보아도 족히 200명 정도는 되어 보였다. 홀 끝쪽 중앙에서는 Wonka theme을 따서 스낵코너를 만들어 자원봉사하는 엄마들이 사탕, 초콜릿, 쿠키, 음료수 등을 팔았다. 나도 스낵코너에서 봉사를 했는데, 반짝거리는 눈을 하며 먹을 과자를 고르는 아이들을 보니 내 마음도 덩달아 신이 났다.


유권이는 상대적으로 내성적인 아이이다. 어렸을 적에는 집 밖에 나가지 않겠다고 실랑이를 벌이는 일이 잦았고, 지금도 사람들이 많은 곳에 있는 것보다는 집에서 혼자 노는 것을 좋아한다. 자신의 욕구와 엄마의 욕구가 충돌할 때면, 그 사이에서 자기표현을 정확하게 하기보다는 그 상태 자체를 괴로워한다. 상대방의 욕구에 대한 눈치가 빠르고 감정을 쉽게 읽는 편이지만, 그래서 마음이 복잡해지는 것 같았다.


"그냥 네가 원하는 것을 말하라고. 필요하면 남이 원하는 게 뭔지 직접 물어봐, 짐작하지 말고. 네 짐작이 오해일 수도 있단 말이야. 중요한 건, 남이 원하는 걸 네가 들어줄 필요는 없다는 거야." 유권이에게 얼마나 도움이 되는지는 모르겠으나, 나는 이런 말들을 유권이에 종종 하곤 한다. 그런 유권이가 연극에 관심을 보였을 때 나는 유권이가 이 경험을 통해 자기표현 능력을 기르고 자신감을 키울 수 있을 거라 은근히 기대를 했던 것 같다.


유권이는 전반적으로 역할을 잘 소화해 냈다. 대사 전달력이 좋았고, 중간에 노래 가사를 까먹기도 하고 박자를 놓치기도 했지만 큰 탈없이 잘 지나갔다. 아쉬웠던 건 표정과 몸짓 연기, 그리고 시선처리였다. 자꾸 연극반 선생님을 쳐다보느라 관객을 보지 않았고, 양손이 뻣뻣히 바지 양쪽 주머니 주변에 붙어 있어 자연스럽게 움직이지 않았다. 그러면서 "이런 지적질하는 엄마 별로인데.. " 하는 생각이 들었다. Wonka로서 무대에 오른 유권이 얼마나 자랑스럽냐고 얘기해 주는 몇몇 엄마들이 머릿속에 떠오르며, 지적질하는 이런 나의 태도가 한심하다 생각했다.


두 번째 공연이 끝났을 때, 유권이는 상기된 얼굴로 네게 어땠냐고 물었고 나는 아주 잘했는데 피드백이 두 개가 있다고 말해버렸다. 아... 진짜... 나 왜 이러니. 이미 뱉은 말을 주워 담을 수도 없고 표정과 몸짓 연기에 대한 피드백을 짧게 주었는데, 그 순간 실망 섞인 표정이 역력했다. 아.. 내가 또 실수를 했구나. 유권이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성공적인 무대경험인데, 내가 괜히 쓸데없이 욕심을 부려 잘하고 있는 애 마음을 복잡하게 만들었구나.


어제는 마지막 두 개의 공연이 있었다. 앙상블 역할의 첫 공연이 막 끝나고 유권이가 옷을 갈아입고 나왔다. 그 공연은 5학년 학생 아이가 Wonka역할을 했는데, 난 별생각 없이 그 아이가 정말 잘했다고 말했다. 유권이는 그 말에 마음이 상했는지 자기는 너무 피곤하다며 쉬고 싶다고 했다. 자기는 엄마랑 달라서 공연장에 있는 것 자체가 힘들다면서 짜증을 냈다. 공연이 잘 끝났다는 흥분과 안도감이 가득한 공연장에서 이런 힘 빠지는 얘기를 하는 자체가 내 기운을 빠지게 했다. 그런 내게 유권이가 던진 말, "엄마는 가끔 엄마가 원하는 사람으로 나를 만들려고 하는 것 같아. 나는 내성적인 사람이라고!"


마지막 공연이 시작되었고 Wonka로 무대에 선 유권이를 이번에는 다른 눈으로 보기로 했다. 지적질보다는 격려와 지지를, 결과보다는 과정을, 단기 결과보다는 장기적인 경험을 중요하게 보자며 마음을 고쳐 먹으려고 했다. 그래서인지 유권이는 Wonka역할을 유권이 답게 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다소 부끄럽고 행동이 어색한 듯 하지만, 속임수도 마다하지 않는 영리함으로 가득한 Wonka를 유권이는 근사하게 소화해 냈다.


마지막 공연이 끝나고 상기된 얼굴로 무대에서 내려왔을 때 나는 유권이를 크게 안아주며 너무 잘했고 자랑스럽다고 말했다. 유권이도 흐뭇해 보였다. 표현이 크지 않고 거칠지 않은 유권이, 얼굴에 가득한 미소가 보였다. 그에게 성공적인 경험이 또 쌓이는구나.


요즘 부쩍 부모가 너무 잘나면 아이들을 망치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부모의 역할은 격려와 지지, 인성을 가르치는 일이고, 절대 선생님의 역할과 착각을 해서는 안된다는 교훈을 되새긴다. 내년에는 Shrek으로 연극을 올린다는데, 유권이가 참여할지 모르겠다. 유권이를 키우면서 부모로서 내가 또 커간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외로운 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