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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ppy Friday!

동년배 업계 친구들과 나누는 기쁨

by 최현숙

Happy Friday! 금요일이면 늘 나오는 인사말. 그 뒤에는 TGIF - Thank God it's Friday! - 드디어 한주가 끝나고 주말이 다가온다는 안도감, 지난주 쌓였던 스트레스를 뒤로 할 수 있다는 직장인의 안쓰러움, 내 맘대로 놀 수 있다는 설렘 같은 감정들이 담긴 표현이다. 긍정적인 프레임을 선호하는 미국, 특히 캘리포니아에서 TGIF보다는 Happy Friday를 더 많이 듣는 이유가 아닐까 생각했다.


금요일은 보통 Focus Friday라고 해서 웬만하면 오후에는 일 관련된 미팅을 잡지 않는 게 회사의 방침이다. 아주 급한 일이 있지 않으면, 각자 필요한 업무를 처리하거나 미뤄두었던 자료들을 읽는 시간이지만, 보통 금요일 오후가 되면 주말 분위기가 되어 일을 일찍 끝내는 사람들도 많은 것 같다.


지난주 금요일, 이런 방침에도 불고하고 나는 공교롭게도 세명의 동료들과 1:1 미팅을 하게 되었다. 오전 10:30, 팀의 아키텍트에게 내가 요청한 미팅이었다. 40대 초반의 중국계 미국인인데, 서버 관련된 기술적인 일을 하면서도 비즈니스와 사용자 입장을 늘 고려하는 생각의 다양성이 돋보이는 친구이다. 그와 이야기를 나누면 머릿속에 가득했던 물음표들이 뿅뿅 사라지는 경험을 한다. 아무리 기술적인 이야기를 해도 상대방이 알아듣도록 쉽게 설명하는 재주, 기술자들에게 흔치 않은 스킬이다.


요즘 우리가 같이 하는 프로젝트에서 해결해야 하는 문제에 대해 토론했다. 서버 쪽 퍼포먼스 관련해서 새로운 서비스를 개발 중인데, 그 서비스가 사용자 경험에 오히려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도 있으니 클라이언트 팀과 연결해서 User Interface를 조정해야 한다는 의견을 피력했다. 어찌나 똘똘하고 논리 정연하게 설명을 하던지 또 감탄.


그는 관리하는 팀이 없이 혼자 일하는 엔지니어로서 직급이 상당히 높은 편이다. 자기는 한 번도 승진을 시켜달라고 요구한 적이 없으나, 그의 상사들은 계속 그의 직급을 높였고 그게 오히려 자기 발등을 찍는다고 했다. 배부른 소리처럼 느껴질 수도 있으나, 그는 코딩을 할 때 가장 만족감을 느끼며, 시스템을 설계하고 문서를 작성하고, 관련 팀들과 기술적인 방향을 잡는 일에 별로 만족감이 없다고 했다.


그는 오히려 직급을 낮추고 싶다고 했다. 요즘 하는 일들이 예전처럼 재미도 없고 불안해서 스트레스가 심해진다고 하며, 실제로 그런 이야기를 그의 상사와 몇 차례 나누었다고 했다. 커리어 차원에서 자살행위가 아니겠느냐 물었더니 자기는 딱히 돈이나 승진에 대한 욕심도 없고, 즐겁고 의미 있는 일을 하는 게 훨씬 중요하다고 했다. 무조건 비즈니스 결과에만 집착하는 요즘 살벌한 업계와 회사 분위기가 그의 열정을 낮추는 듯 했다.


금요일 12시, 얼마 전에 회사를 그만둔 전 동료가 줌으로 통화를 하자고 했다. 나도 그의 근황이 궁금하던 차, 연락해 준 그가 고마왔다. 그는 프로덕트 매니저, 엔지니어, 아키텍트 등 업계에서 경력이 화려한 친구였다. 인텔, 어도비 같은 회사에서 경력을 쌓았고 몇 년 전에 Graphics 쪽 프로덕트 매니저로 일을 시작하다 지난해 말, 회사를 떠났다. 일 스트레스가 심해지면서 그의 건강이 악화되었다. 그가 머리 뒤쪽에 주먹 크기만 한 민머리를 보여줬을 때 충격이 적잖았다. 그의 스트레스 원인은 팀 내 정치적인 문제로 느껴졌다. 그 팀을 관리하는 엔지니어링 디렉터와 관계가 나아지지 않았고, 우리 회사를 30년 이상 다닌 사람의 인맥과 입심을 뛰어넘을 수는 없어 보였다.


그랬던 친구가 그날은 화면상에서 건강하고 행복해 보였다. 요즘 AI 때문에 업계에서 말도 안 되는 이력을 요구하는데, Graphics와 AI를 엮어 자신의 기술 역량을 보여줄 수 있는 작은 서비스를 개발 중이라고 했다. 경력이 이렇게 엄청난 친구인데도 요즘 취업 시장을 뚫기가 어려운 것 같았다. 일단은 포트폴리오 개발에 집중하면서 꾸준히 네트워킹을 하며, 일자리 기회를 본다고 했다. 그의 말과 표정에 묻어 있는 긍정적인 에너지를 보니, 좋은 일이 곧 오겠구나 생각했다.


그와의 줌미팅을 끝내고 1시 정도에 또 한 동료에게 연락이 왔다. 처음에 Web Graphics 쪽에 일을 맡았을 때, 이 친구는 내게 가장 큰 도움을 준 멘토였다. 업계의 상황과 제품에 대한 역사와 문제점들을 자세히 설명해 주며 자신의 시간과 정성을 아낌없이 쏟아부었다. 그는 새로운 팀원이 들어오면 그렇게 멘토 역할을 자청하며 사람들을 도왔다. 나도 그 덕분에 그나마 회사에서 근근히 살아간다는 생각을 한다. 너무 고마운 친구이다.


그의 장점은 전략적인 사고를 잘하고 글로 정리를 잘하는 것이다. 전략적인 사고에서 핵심은 마켓의 흐름과 사용자의 요구를 잘 파악하는 것이다. 그것을 벤다이어그램 가장 중앙에 놓고, 우리 회사와 제품의 강점을 최대한 살릴 수 있는 방향을 잡아 회사와 고객들에게 가치를 제공하는 것이 전략의 기본. 그는 시니어 User Experience Designer로 일을 하는데, 보통 전략 관련된 자료를 시각적으로 정리하고 문서로 작성한다.


그는 얼마 전에 1주일 이상 밤새워 가며 일했던 프로젝트가 결국 별 반응이 없이 묻힐 것 같다고 했다. 그가 Figma에 정리한 자료를 보여주는데 나는 그저 입이 떡 벌어졌다. 천재가 아니고서는 어떻게 이런 자료를 1주일 만에 작성할 수 있을까? 새로 시작하는 프로젝트에 대한 문제와 방향에 대해 심도 있게 풀어낸 자료였다. 비주얼이 가득한 비즈니스 책 한 권을 읽는 것 같았다.


문제는 이런 그의 노력이 긍정적인 평가나 프로덕트의 방향으로 바로 연결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그의 글과 자료는 방대했고, 사람들은 그 자료를 읽을 시간도 관심도 보이지 않았다. 그는 또한 서사적인 커뮤니케이션을 하는 편으로 보통 간략한 요점 정리를 선호하는 리더들에게 그의 글과 말은 버겁게 느껴지는 것 같았다.


이런 상황을 푸념처럼 풀어놓는데, 그의 내적 갈등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그에게 공감과 위로를 전하고 그의 전략적인 사고와 장기적인 관점이 결국 제품과 팀원들에게 도움이 된다는 얘기를 해주었더니, "thanks for the therapy"라고 말하며 자조적인 웃음을 지었다.


테크 업계에서 몸담고 있는 중년들, 어쩌면 다들 비슷한 고민들을 하고 있구나 생각했다. 상황과 처지가 비슷한 사람들과 깊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것, 힘든 시기를 넘길 수 있는 원동력이 아닐까? 그러면서 떠오르는 옛 노래 구절, 함께 떼창 하던 그 노래... "함께 가자 우리 이 길을..." 맥락은 달라도 시대를 불문한 진리, 같이 나누며 살아야 한다. 조만간 이 동료들과 Happy Hour를 주선해야겠다 생각했다.


그들에게 큰 위로를 받은 느낌. 그들도 내게서 위로를 받았으면 하는 바람. 그래서 특별히 삼삼했던 Happy Fri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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