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지만, 생활을 바꾸는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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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ver Photo by Bianca Jordan on Unsplash
요약: in-unit: 내 집에 세탁기 / on-site: 아파트 빨래방
미국에 살 집을 구할 때, Apartment.com 같은 부동산 플랫폼을 이용해 시장 조사를 한다. 보통 대학원생들은 학교 근처나 인접 도시의 아파트를 렌트한다. 웹사이트에서 아파트 조건을 살펴보다 보면 in-unit laundry machine & dryer라는 옵션을 보게 되는데, 이는 집에 세탁기와 건조기가 있다는 의미다. 이 항목이 조건 중 하나로 포함된다는 것은 곧 집에 세탁기와 건조기가 없는 경우도 있다는 뜻이다.
대학교 기숙사도 아니고, 고시원도 아닌데… 아파트를 구하는데도 세탁기와 건조기가 집에 없을 수 있다니.
내가 미국에 온 당시, 미국은 코로나 대응에 집중하던 시기로 학교의 모든 수업이 virtual로 진행되던 때였다. 당분간 차를 살 계획이 없었기 때문에, 아파트의 평이 좋고 근처에 마트가 있는 점 등을 고려해 방을 구했다. 세세하게 따져서 고른 집은 아니었지만, 오래되긴 했어도 다행히 세탁기와 건조기가 갖춰져 있었고, 별다른 불편함 없이 지냈다.
나에게 빨래는 집안일 중 특별히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어린아이를 키우거나 가구원이 많은 가족이라면 한 사람이 책임지기에 부담이 될 수 있지만, 1인 가구였던 나에게는 단순한 일이었다. 한국의 작은 원룸에 살 때는 건조기 없이 작은 드럼 세탁기를 사용했고, 이후 더 큰 집으로 이사하면서 건조기와 용량이 늘어난 세탁기를 갖추게 되니 더욱 편해졌다. 모든 직장인이 그렇듯 나도 주로 퇴근 후나 주말에 집에 있는 시간에 빨래를 했다. 원하는 대로 빨래를 분류하고, 주 2회든 3회든 시간 허락하는 대로 세탁할 수 있었다.
첫 1년간의 미국 생활은 한국에서와 크게 다를 바 없었다. 그런데 미국에서는 옷이 더 빨리 상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기분 탓일까...?
1년 후, 현재의 남편 집으로 이사하며 처음으로 on-site laundry인 아파트에 살게 되었다. 쉽게 말해, 건물 내에 공용 빨래방이 있다는 뜻이다. 마치 대학교 기숙사처럼. 한 번 빨래를 돌리는 데 $1.75, 건조기 사용 $1.5. 비싼 편은 아니다. 결제 방식은 휴대폰 앱을 사용하거나 충전 카드를 발급받아 사용하는 구조였다.
우리 아파트는 빌딩 두 동마다 빨래방이 하나 있다. 미국 아파트는 일부를 제외하면 대부분 3층 정도 높이다. 우리 아파트는 한 층에 4 가구가 사는 것이 일반적인데, 두 동마다 하나씩 빨래방이 있다는 것은 24 가구가 하나의 빨래방을 공유한다고 이해할 수 있다. 다만, 세탁기와 건조기가 각각 4대뿐이라는 게 함정이다.
이때부터 빨래가 내 삶에 영향을 미치기 시작했다.
1) 분리빨래를 포기했다.
빨래 20-25분, 건조기 1시간. 1번 빨래를 돌리는데 일단 기본 3번을 나갔다와 야한다. 옆 빌딩에 빨래방이 있어서 춥거나 비가 내리는 날은 너무 나가기 싫어진다. 가끔 내가 원하는 대로 분리 빨래를 하려면 모든 기계가 이용가능할 때나 3번 만의 여행으로 목적 달성이 가능하나, 그렇지 않은 경우 많게는 7-8번 왕복해야 하는 일이 발생한다. 보통 남자친구가 빨래를 담당했는데, 처음에 나만 따로 분리 빨래를 시도하다가, 그냥 남자친구에게 모두 양도했다.
2) 빨래를 위해 주중에 집에서 일하는 날을 만들었다.
주말은 빨래방이 만원이다. 내가 학생이라 시간사용이 조금 자유로운 건 맞았지만, 주말에 빨래를 하고 싶은 건 인간의 자연스러운 동기 아닌가?. 그러나 모두에게 자연스러운 동기이기에, 대부분의 경우 주말 빨래는 실패로 돌아갔다. 통계상 월요일에 하는 게 성공적이었다.
3) 기계 잔고장으로 젖은 빨래를 가지고 집으로 돌아가야 하는 날들도 종종 있다
가끔은 탈수가 안되고 가끔은 건조기가 맛이 간다. 기계를 한번 더 돌릴 수 있지만 돌리는 것도 돈이고, 다른 기계가 다 occupied 상태일 때도 빈번하다.
4) 양말 분실이 잦다.
키가 작아서 2층 건조기 쓰면 보이지 않는 사각지대들이 생긴다. 내 양말들은 그래서 짝짝이가 많다.
왜 이사를 안 갔나? 렌트비가 일단 너무 쌌다. 이사하려고 몇 번 시도해 봤지만, 경제적인 이익이 불편함을 감수하게 했다. 취직하고 나서 내 집에서 세탁기랑 건조기 맘껏 돌리며 살 거다.
P.S.: 미국의 구식 아파트 (미국엔 오래된 집이 정말 정말 많다) 집에 딸린 세탁기와 건조기는 높은 확률로 아래와 같이 생겼다. 물론 신식 아파트들에서는 우리에게 더 익숙한 드럼세탁기와 건조기를 갖춘 곳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사이즈는 천차만별인데, 어떤 곳들은 사이즈가 너무 작다. 그러나 세탁기 디테일까지는 직접 가서 보지 않고서는 알기 힘들고, 유학 나오기 전에 세탁기까지 따지며 집을 구하는 건 좀 과하긴 하다. 근데 집에 세탁기 있고 없고는 삶의 질에 영향을 미치는 것 같다.... 부디 참고하시어 모두 좋은 결정 하시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