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o 해!", " oo 하지 마!"
위의 짧으나 신경을 거슬리게 하는 말들은 불행하게도 가장 사랑하는 부모님이나 배우자로부터 종종 듣는 말들입니다. 그들이 이런 말을 할 때 항상 들이대는 이유는 '사랑'입니다. "사랑하기 때문에", "다 너를 위해서", "너 잘 되라고"하는 말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듣는 사람 입장에서는 도무지 이러한 말들로부터 사랑의 감정보다는 억압당하는 기분이 듭니다. 인간은 억압 앞에서 반발하려는 성향이 있기 때문에 결국 싸우거나 말다툼이 발생하게 됩니다. 이때 말하는 사람은 본인의 마음도 알아주지 않는 상대에게 서운하기만 합니다. 반대로 듣는 사람은 본인이 괜히 미안한 감정이 들기도 하고 심지어는 짜증이 나기도 하지요. 아마도 이러한 다툼이 아무 쓸데없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겠죠. 결국 나중에 다는 생각은 상대에 대한 측은한 마음뿐입니다. 나를 사랑해서 그렇다는 것은 알지만... 공감할 수 없는...
그렇다면 가족들은 왜 그런 말을 하는 것일까요? 진심으로 사랑하기 때문일까요? 그건 착각입니다. 사랑은 일종의 공감의 한 형태입니다. 내가 사랑하면 상대도 그것을 느껴야 합니다. 사랑의 표현이 일방적이라면 그것은 스토커처럼 폭력이 되는 것입니다. 듣는 사람이 사랑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데 어떻게 그것이 사랑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상대방의 감정은 고려하지 않는 사랑이라는 명분의 걱정은 결국 본인의 불안감을 해소하기 위한 소모적인 감정 표출일 뿐입니다.
그렇다면 내가 사랑하는 사람에게 하는 말이 사랑의 표현이 될지 단순히 본인의 불안감을 해소하기 위한 소모적 행동이 될지 판단하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상대를 본인의 삶의 주인으로 인정해 주는 것입니다. 내 자식의 삶은 내가 주인이 아니라 내 자식의 삶임을 인정하고, 내 배우자 혹은 애인의 삶의 주인은 본인이 아니라는 것을 인정하고 시작해야 합니다. 그리고 내가 사랑이라는 명분을 가지고 하는 말들이 실제로 상대의 삶에 어떠한 변화를 줄지 냉정하게 생각해보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공부하라고 하는 경우 정말 자신의 말을 듣고 아이가 공부를 할지 생각해 보세요. 진짜 사랑한다면 공부하라는 압박보다 아이가 왜 공부를 소홀히 하는지 원인을 생각해보고 그 원인에 대한 해결을 생각해 보는 것이 아이에게 부모님의 사랑을 주는 현명한 방법이 될 것입니다. 환경을 만들어 준다든지, 같이 책을 본다든지, 아니면 다른 방법을 생각해보든지. 본인의 능력이 안 된다고 생각하면 주변 지인의 의견을 구하는 방법도 좋습니다. 차라리 이러한 부모님의 노력이 아이들에게 사랑을 표현하는 현명한 방법이 될 것입니다. 이러한 부모님의 노력에 아이들은 당연히 사랑을 느끼겠죠. 이처럼 서로가 공감할 수 있는 상황이 사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