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변검사

그때를 아시나요

by 김글

이제는 아득한 그 시절, 내 세대에는 초등학교 저학년 때 주기적으로 채변검사를 했었다. 첫 채변검사는 초등학교 1학년에 갓 입학한 어느 날이었다.


담임 선생님은 매우 인자하고 기품이 넘치는 분이었다. 그날도 우아한 자태로 교탁 앞에 서서 말씀하셨다.


"여러분, 채변 검사를 해야 하니 내일까지 똥 가져오세요."


그 말을 듣자마자 충격에 휩싸였다. 이렇게 멋진 선생님이 똥을 탐내다니. 어린 나이에 채변검사라는 의미를 몰랐기에 담임 선생님의 취미가 똥 수집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낯가림이 심한 성격이라 별로 친해지지 않은 담임 선생님께 내 똥을 가져다 드린다는 것이 아직은 이른 것 같기도 하고, 조금 더 솔직히 말하면 어릴 때부터 변비가 있었기에 기한 내에 똥을 제출할 수 없었다. 그렇게 나만 몇 날 며칠을 똥을 내지 못했다.


그날 이후 매일 아침마다 안부인사 대신 ‘오늘은 똥 가져왔니?’ 소리를 들어야 했고, 그때마다 시무룩한 표정으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 수밖에 없었다.


며칠이 지나고 담임 선생님께서 최후통첩을 날리셨다.


"안 되겠다. 너만 똥을 안 냈어. 빨리 지금 집에 가서 똥 눠서 가져와."


선생님께서 건네주시는 채변봉투를 팔랑거리며 5분 거리에 있는 집까지 엉엉 울며 걸어갔다. 하교시간이 아닌데도 눈물 콧물 흘리며 집에 돌아온 딸내미를 본 엄마는 깜짝 놀라셨고 자초지종을 들으시더니 화장실 변기 옆에 신문지 한 장을 깔아주셨다.


하지만 아무리 힘을 줘도 소식이 없었다. 얼마간의 시간이 흐르고 나는 똥을 가져갈 수 없다는 좌절감과 두려움에 닭똥 같은 눈물을 흘렸다.


"엉엉 엄마 똥이 안 나와. 흐어어엉 나만 똥 안 냈대."


순간 엄마의 눈빛이 매섭게 빛났다. 그리고 나를 화장실에서 끌어내고는 문을 딸깍 걸어 잠갔다. 잠시 후 엄마의 애쓰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 소리에 덩달아 주먹을 불끈 쥐며 함께 끙끙거렸다. 나의 응원이 엄마에게 닿았는지 엄마는 몇 분 후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힌 채로 문을 벌컥 열며 두둑해진 채변 봉투를 흔들어 보였다.


그 순간이 아직도 또렷하다. 환호성을 질렀었다. 그 순간 엄마는 나의 슈퍼맨이자 각시탈이자 임영웅 뺨치는 존재였다. 너무나 자랑스러웠다. 그 길로 채변봉투를 흔들며 학교까지 마하의 속도로 뛰어갔다.


교실 앞에 도착하자마자 숨도 고르지 못한 채 문을 열어젖혔다. 그리고 자랑스럽게 소리쳤다.


“선샌님! 똥 가져왔어요! 히히히히히”


담임 선생님의 동공이 잠시 흔들렸지만 이내 미소를 지으며 수고했다고 말씀해주셨다. 그리고 나는 그 말끝에 주저 없이 선생님 손 위에 채변봉투를 올려놓았다.


“엄마야!”


찰나였다. 그 순간 선생님은 자신의 어머니를 부르며 몸서리쳤다. 잠시 후 집게손가락으로 채변봉투 끝을 겨우 들어 올리며 양호선생님께 가져다주라고 말씀하셨다.


다시 채변봉투를 받아 들고 양호실로 전력 질주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로 문을 열어젖히며 똥 가져왔다고 쩌렁쩌렁 떠벌렸다.


“양호 선샌님!! 똥 가져왔...! 왓?”


문이 열림과 동시에 양호실을 가득 메운 채변봉투가 눈에 들어왔다. 그때 본 그 광경은 지금까지도 경험한 적 없었을 만큼 대단했다. 빽빽이 줄지어있는 울퉁불퉁한 채변봉투, 양호실을 가득 메우던 똥냄새, 엄지와 검지로 코를 막고 코 맹맹한 소리로 나를 반겨주던 양호선생님의 목소리까지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뎌기다가 두고 가. 고댕했더.”


그리고 며칠 후, 채변검사 결과가 나왔다. 다행히 별문제 없이 엄마의 건강한 장 덕분에 회충약을 먹지 않아도 됐다.


그 후로도 몇 번의 채변검사를 더했었는데, 그때마다 내 것을 낸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오빠도 같은 초등학교였으므로 오빠 것을 나눠서 가져가기도 했다. 그때마다 서로 더 많이 가져가겠다고 싸우는 바람에 채변봉투가 찢어지기도 했다.


어떤 해에는 아빠 것을 가져간 적도 있었다. 아빠는 출근 전 자식의 부족함을 채워주기 위해 있는 힘, 없는 힘 쥐어짜 내어 결과물을 만들어냈다. 여기까진 감동적인 스토리다. 이후 나의 부족함 때문에 시트콤에서 유머로 장르가 바뀌었다.


응가를 채변봉투에 채울 때는 보통 나무젓가락을 사용했는데, 어린 시절부터 소유권에 대한 개념이 철저했던 나는 아빠 똥은 아빠 젓가락으로 퍼야 할 것 같은 사명감에 아빠의 쇠 젓가락으로 응가를 푸려고 했던 것이다.


아빠는 순간 괴성을 질렀다. 내가 그 소리에 놀란 바람에 아빠의 젓가락이 아빠의 결과물에 닿는 참사는 벌어지지 않았다. 다행이다. 만약 그때 그 상황이 현실로 이어졌더라면 젓가락을 끊던가, 똥을 끊던가, 매우 기괴한 상황이 펼쳐졌을 것이다.


오랜만에 순수했던 어린 시절을 돌이켜보니 밥맛이 떨어지는 건 기분 탓이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