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at. 똥냄새)
스스로를 사랑해마지 않는 나이지만 가끔은 나 자신을 믿지 못할 때가 있다.
집을 나섰을 때 가스불은 제대로 끄고 나왔는지, 고데기 코드는 뺐는지 하는 사소한 문제부터, 지금 하는 일이 잘하고 있는 건지 지난날 내가 내린 결정이 최선이었는지와 같은 심오한 문제까지 종종 스스로를 의심하곤 한다.
그중에서도 지금 생각해도 부끄럽고 어이없는 의심의 순간이 있었다.
예전 회사를 다닐 때 일이다.
내 자리 바로 뒤에는 항상 꽃다발이 꽂힌 화병이 놓여있었다. 영상제작을 하는 회사여서 꽃다발을 촬영 용도로 사용하기에 시들지 않게 물에 담가놓곤 했다.
한창 일을 하고 있는데, 회사 막내분이 내 뒷자리로 와서 꼼지락거리며 꽃다발과 화병을 가져갔다.
그냥 그런가 보다 하고 일에 다시 집중하는 찰나, 갑자기 어디선가 똥 냄새가 나기 시작했다.
정말 말도 안 되는 냄새였다.
예전에도 집에 있을 때, 똥 냄새가 진동을 해서 내다보니 정화조 청소차가 온 적이 있었다. 그때 기억에 재빨리 창밖을 내다봤지만 자동차들만 쌩쌩 달리고 있을 뿐 창밖 세상은 고요하고 평화로웠다.
게다가 내가 있는 곳은 5층. 설사 정화조 청소차가 지나갔다고 한들, 이렇게까지 냄새가 심할리 없었다.
나는 잠시 고뇌에 빠졌다. 그리고 이내 아무 일도 없다는 듯 자리에서 일어나 다른 자리들을 한 바퀴 쓱 돌아본다.
이럴 수가......! 다른 자리에서는 냄새가 전혀 나지 않았다. 갑자기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설마.
불안한 마음으로 다시 내 자리로 돌아온 순간. 다시 미친 듯이 나는 똥 냄새...
이 냄새의 근원지가 내 자리라니. 혹시 아까 점심 먹으러 갔다가 똥을 밟고 왔나 해서 신발 밑창 냄새를 맡아봐도 똥은커녕 방귀 냄새도 나지 않았다.
설마, 좀 전에 막내분이 와서 똥을 뿌리고 갔나 하는 말도 안 되는 일말의 가능성을 열어두고 주위를 둘러봐도 잔뜩 쌓여있는 책과 먼지뿐. 똥 비슷한 색깔의 어떤 형체도 보이지 않았다.
그렇다면 남은 것은 단 하나다.
나도 모르는 사이 내가 팬티에 똥을 쌌구나! 요 근래 미친 듯이 일만 했더니 드디어 미쳤나 보다. 너무 힘들어서 괄약근이 가출한 것은 아닐까. 오만가지 생각을 하며 슬며시 화장실로 들어갔다.
그리고, 정말 처참하고 처절하지만 조용히 팬티를 내리고 냄새의 근원지가 내가 맞는지 확인하기로 했다.
정말 수치스러운 순간이었다. 내가 내 괄약근을 믿지 못해 팬티를 내리다니. 눈물이 앞을 가렸다. 만약 내린 순간, 갈색의 형체가 있다면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나. 아니, 그보다 집에는 어떻게 가야 하나. 아니, 당장 사무실에 다시 어떻게 들어가나.
나는 눈을 질끈 감고 팬티를 내렸다. 그리고 서프라이즈 파티가 일어나지 않길 간절히 바라며 살며시 눈을 떴다.
오, 하나님! 핸썸한 부처님! 감사합니다.
나는 순백의 팬티를 확인하자마자 하늘과 땅과 온 우주만물에 감사인사를 올렸다. 어쩌면 당연히 없었어야 할 덩어리가 없는 것인데. 이리도 기쁘다니. 치욕스러우면서도 감격적인 순간이었다.
나는 발걸음도 위풍당당하게 다시 당당하게 자리로 돌아왔다. 하지만 냄새는 여전했다. 이걸 어째야 하나 난감해하고 있는데, 멀리서 막내분이 다가온다.
오, 오, 오지 마. 제발!
속으로 아무리 되뇌어봐도 막내분은 여고괴담의 여고생 귀신처럼 성큼성큼 내 자리로 다가왔다.
그리고 내게 건넨 말.
"여기 아직도 냄새나죠?"
"아... 네? 네. 그. 그렇네요…?"
아무렇지 않은 듯 보였겠지만 내 입술은 파르르 떨리고 있었다. 그리고 이윽고 돌아오는 대답에 나는 안도의 숨을 내쉬며 다시 평온해졌다.
"꽃을 너무 오래 꽂아놔서 물이 썩었나 봐요. 치운다고 치웠는데, 아직도 냄새나네요. 죄송해요”
그랬다. 확실히 내 똥이 아니었던 것이다. 일어나서 만세 삼창이라도 부르고 싶은 심정이었다.
"이 냄새는 내 똥내가 아니다!!!"
속으로 똥내삼창을 외치고서야 다시 일에 집중할 수 있었다.
나는 이번 일을 계기로 사람이 사람을 믿지 못하는 게 얼마나 무서운 일인지 깨달았다. 또한 나 자신에 믿음이 부족한 나의 대뇌와 마음을 꾸짖으며, 다음번에 다시 똥냄새가 난다고 해도 절대 팬티를 내리지 않을 것임을 굳게 다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