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에게 '질문'하지 못하는 기획자는, AI에게 '지시'받게 될 것이다.
요즘 게임 기획자를 꿈꾸는 지망생들을 만나면, 가장 많이 듣는 질문이 있다.
“AI 때문에, 이제 기획자는 끝난 거 아닌가요?”
불안할 것이다. 당연하다. 내가 밤새워 만든 기획서보다 더 그럴듯한 세계관을 AI가 단 5분 만에 써 내려가는 것을 보면, 인간의 창의성이란 대체 무엇인가 회의감이 들기도 한다. 내가 며칠 동안 끙끙대며 계산한 밸런스 수치를, AI는 수만 번의 시뮬레이션을 통해 순식간에 최적의 값으로 제안한다.
이런 압도적인 성능 앞에서, 많은 지망생들은 AI를 자신의 자리를 빼앗을 '강력한 경쟁자'로 인식하고, 막연한 공포를 느낀다.
하지만 만약 당신이 계속 서류에서 미끄러지고 있다면, 그 이유는 AI가 너무 뛰어나서가 아니다. 당신이 아직도 AI를 '경쟁자'로 바라보며, AI가 할 수 있는 일(심지어 더 잘하는 일)을 당신의 포트폴리오에 담고 있기 때문이다.
AI 시대의 본질은 '대체'가 아니라 '역할의 재정의'다. 이제 기업은 당신에게 AI보다 더 글을 잘 쓰거나, AI보다 더 계산을 빨리하기를 기대하지 않는다. 기업이 당신에게 기대하는 역할은 단 하나, AI를 당신의 '조수'로 부리며, AI가 할 수 없는 '결정'을 내리는 '상사'가 되는 것이다.
당신의 포트폴리오를 다시 한번 냉정하게 돌아보자.
혹시 Midjourney가 그려준 멋진 컨셉 아트를 덩그러니 올려놓고, "제가 구상한 캐릭터입니다"라고 말하고 있지는 않은가? 그렇다면 당신은 AI가 시키는 대로 결과물을 받아 적은 '비서'에 불과하다.
혹시 ChatGPT가 써준 그럴듯한 시나리오를 그대로 복사해서, "제가 만든 세계관입니다"라고 말하고 있지는 않은가? 그렇다면 당신은 AI가 던져준 아이디어를 정리만 한 '인턴'일 뿐이다.
면접관은 AI가 만든 결과물에 관심이 없다. 그들은 그 결과물이 나오기까지, 당신이 AI에게 어떤 '질문'을 던졌고, AI의 답변에 대해 어떤 '판단'을 내렸으며, 최종적으로 어떤 '의도'를 담아 결과물을 완성했는지를 보고 싶어 한다.
AI에게 '지시'받는 기획자가 아니라, AI를 '지휘'하는 기획자임을 증명해야 한다.
그렇다면 AI를 '지휘'하는 능력은 어떻게 기를 수 있을까? 단순히 AI 툴을 몇 번 써보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체계적인 훈련을 통해 AI를 내 손발처럼 부리는 '상사'의 마인드셋을 갖춰야 한다.
AI에게 좋은 결과물을 얻어내는 가장 기본적이면서도 강력한 방법은, AI에게 구체적인 '페르소나(역할)'를 부여하는 것이다.
나쁜 프롬프트 (요구)
"포스트 아포칼립스 게임 퀘스트 3개 만들어줘."
결과: 어디서 본 듯한 진부한 '물건 찾아오기', '몬스터 몇 마리 잡기' 퀘스트가 나온다.
좋은 프롬프트 (역할 부여)
"당신은 15년차 베테랑 내러티브 디자이너입니다. '사이버펑크와 동양 판타지가 결합된 세계관'을 배경으로, 플레이어가 처음으로 '선과 악'의 경계에서 도덕적 딜레마를 겪게 될 메인 퀘스트의 분기점을 3가지 시나리오로 제안해주세요. 각 시나리오는 플레이어의 선택이 이후 스토리와 NPC의 반응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구체적으로 포함해야 합니다."
결과: 단순한 퀘스트가 아닌, '선택과 결과'라는 시스템과 연계된 깊이 있는 시나리오의 '원석'을 얻게 된다.
이처럼 AI를 단순한 '검색 엔진'이 아닌, '전문가 조수'로 대하는 태도의 전환이 모든 것의 시작이다.
복잡한 문제를 한 번에 해결하려 하지 마라. AI에게 한 번에 완벽한 답을 기대하는 것은, 신입사원에게 "알아서 다 해와"라고 말하는 무능한 상사와 같다. 유능한 상사는 일을 잘게 쪼개고, 단계별로 명확하게 지시한다.
나쁜 프롬프트 (결과 요구)
"전사, 마법사, 궁수 밸런스 맞춰줘."
결과: 각 직업의 스탯을 임의로 조정한, 근거 없는 숫자들의 나열이 나온다.
좋은 프롬프트 (과정 지시)
"먼저, 전사, 마법사, 궁수 세 직업의 핵심 스탯(체력, 공격력, 방어력, 공격 속도)을 정의하는 파이썬 클래스 코드를 짜줘."
"그 다음, 이 세 직업이 1:1로 10,000번 싸우는 전투 시뮬레이션 코드를 만들어줘. 전투는 턴 기반으로 진행되고, 각 턴마다 기본 공격만 한다고 가정해."
"이제, 위 시뮬레이션을 실행해서 각 직업의 승률을 계산해줘."
"마지막으로, 마법사의 승률이 60% 이상이라면, 마법사의 공격력을 5% 낮추고 다시 시뮬레이션을 실행하는 코드를 추가해줘. 모든 직업의 승률이 45~55% 범위에 들어올 때까지 이 과정을 반복해줘."
이처럼 복잡한 밸런싱 문제를 [클래스 정의 → 시뮬레이션 설계 → 결과 계산 → 조건부 반복] 이라는 논리적인 단계로 분해하여 AI에게 지시할 수 있을 때, 당신은 비로소 AI를 '지휘'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이 모든 훈련 과정을 당신의 포트폴리오에 어떻게 담아낼 것인가? 핵심은 '완성된 결과물'이 아니라, **'AI와 함께 문제를 해결한 과정 전체'**를 보여주는 것이다.
당신의 포트폴리오는 '게임 기획서'가 아니라, **'AI 협업 실험 보고서'**가 되어야 한다.
프로젝트 제목: AI 어시스턴트를 활용한 신규 팩션 세계관 및 캐릭터 컨셉 개발
1. 초기 가설 및 기획 의도:
"나는 ~한 컨셉의 팩션을 만들고 싶었다. 이를 위해 AI에게 ~한 역할을 부여하고 아이디어 생성을 요청했다."
2. 실험 과정 (프롬프트와 결과):
실험 1 (1차 프롬프트): 내가 입력한 초기 프롬프트와, 그 결과로 AI가 생성한 '날것 그대로의' 결과물을 스크린샷으로 첨부한다.
결과 분석 및 문제점: "AI의 1차 제안은 너무 진부하고, 내가 의도한 'A'라는 핵심 컨셉이 누락되어 있었다."
실험 2 (2차 프롬프트): 문제점을 보완하기 위해 어떻게 프롬프트를 수정했는지 보여준다.
최종 결과물 도출: 여러 번의 실험과 수정을 거쳐 최종 결과물을 도출해내는 과정을 명확히 보여준다.
3. 결론 및 고찰:
"이 프로젝트를 통해, AI는 ~한계가 있지만, ~방식으로 활용했을 때 기획의 효율성과 창의성을 극대화할 수 있음을 확인했다. 기획자는 AI가 제안한 수많은 가능성 속에서, 프로젝트의 핵심 비전에 부합하는 최적의 길을 선택하고 다듬는 '큐레이터'이자 '디렉터'의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이런 포트폴리오를 본 면접관은 당신을 단순히 'AI 좀 쓸 줄 아는 지원자'로 보지 않을 것이다. **'AI라는 새로운 팀원을 어떻게 활용하고 지휘해야 하는지 이미 알고 있는, 준비된 리더'**로 보게 될 것이다.
AI 시대에 기획자의 역할은 사라지지 않는다. 오히려 더 중요해졌다. 단순한 '아이디어 뱅크'나 '문서 작성자'의 시대가 끝나고, AI와 데이터를 지휘하여 '재미'라는 최종 목표를 달성해야 하는 '프로젝트의 사령관' 시대가 열렸기 때문이다.
당신은 AI에게 지시받는 수동적인 '조수'로 남을 것인가, 아니면 AI를 지휘하여 새로운 세계를 창조하는 능동적인 '상사'가 될 것인가?
그 답은 당신의 다음 프롬프트에 달려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