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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람풀 May 16. 2020

햇살에 빨래가 마르면

 햇살 짱짱하게 좋은 날이면 기분 좋게 빨래를 넌다. 빨래만으로는 성에 안 차 걸레며 행주까지 삶아 널고, 수저, 칼, 도마, 그릇까지 줄줄이 마당에 늘어놓는다. 은혜로운 해의 기운이 아까우니까.



 말끔해진 빨래를 만지면 마음이 편안해진다. 아직 열기가 남아있는 옷들을 얼굴에 묻고 킁킁 냄새를 맡아본다. 아기살과 젖 냄새, 식구들 체취와 살림살이가 짙게 밴, 한없이 안심되는 그런 냄새다. 비 오는 날, 방안 곳곳에 널어둔 발 고린내 나는 옷들을 보면 마음도 눅눅해진다. 그런 날엔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다. 마룻바닥에 누워 종일 책이나 읽으며 뒹굴거리고만 싶어진다. 육아에 지쳐 몹시 힘든 날이면 엄마가 해주는 밥이 간절했다. 한없이 안심되는 그 냄새는 바로 엄마 냄새가 아니었을까?



 어릴 때 살던 양옥집 옥상에 엄마는 두꺼운 이불을 널어두곤 했다. 한낮의 열기가 가시고 난 뒤 따뜻해진 이불 위에 누워 있으면 기분 좋은 꼬순내가 났다. 오른팔로 곰인형을 감싸 안고 그 위에 누워 하늘을 올려다보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아마도 그 냄새 때문이었으리라. 식구들 체취가 켜켜이 쌓인 냄새. 집안 살림이 짙게 밴 일상의 냄새. 그 모든 걸 품은, 바로 엄마 품 냄새. 







 날마다 나린이를 등에 업고 소창 기저귀를 빨아 넌다. 뽀얗게 삶은 기저귀 천이 바람 속에서 펄럭이고 있다. 이 보다 더 가벼울 순 없다는 듯이... 



 바람에 흩날리는 하얀 천과 작은 아가 옷들. 그 천진한 움직임을 바라보고 있으면, 살면서 부딪치는 어려움들을 덤덤히 견딜 수 있을 것 같다. 햇살 가득 품고 뽀송뽀송해진 빨래가 ‘괜찮아, 모두 다 괜찮아.’ 하고 속삭여주는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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