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보 농사꾼의 오미자 이야기
고등학교 때 단짝 친구 집에 놀러 간 적이 있다. 친구 엄마가 쟁반에 내오신 오미자차를 아직도 선명히 기억한다. 투명한 유리잔에 담긴 새빨간 빛깔은 무척이나 요염했고, 시고 달큼한 맛은 참으로 관능적이라 여겼다. 그 후로 오미자 맛을 보지 못했고 시간이 흐르고 흘러 오미자를 재배하는 마을에 살게 되었다.
북동쪽으로 이어진 야트막한 산자락 아래 척박한 땅. 우리 집 뒤에 있는 그 사백 평 땅에 오미자 밭을 만들었다. 군에서 오미자를 특화작물로 지정해 지원 사업을 하는데 평소 허물없이 지내던 S아저씨가 사업신청을 위한 재배면적을 맞추기 위해 정목수 이름을 명단에 올린 것이다.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너네 집 뒤에 오미자 농사해라.” 느릿하고 우직한 K아저씨 말에 우리 부부는 ‘허허’ 웃음만 나왔다.
“그래, 어차피 놀리는 땅인데 한번 해보지 뭐. 나는 밖으로 집 지으러 다닐 것이니 오미자 밭은 당신 것이오. 그러니 알아서 관리하고 수확해서 팔고, 번 돈은 맘대로 쓰시게.”
이건 또 무슨 귀신 씻나락 까먹는 소리인가? 갑작스러운 정목수 말에 몹시 당황했으나 마음은 벌써 3년 뒤에나 수확이 가능한 빨간 오미자 밭을 날아다니고 있었다.
‘파란 가을 하늘 아래서 탱글탱글 새빨간 오미자 열매를 따는 거야. 내가 직접 밭을 일구고 거름 주고 묘목을 심어 재배한 싱싱한 열매지. 가족들에게 나눠주고 지인에게 보내고, 원하는 사람에게 팔아 돈도 벌고....’
갑자기 대지주가 된 것 마냥 기분이 좋아졌다. 손바닥만 한 텃밭 농사에서 벗어나 ‘나도 이제부터 오미자 농사짓는 농부여’ 하고 혼자 우쭐하기까지 했다. 포클레인으로 울퉁불퉁한 돌밭을 갈고, 트랙터로 로터리 작업을 한 다음 퇴비를 뿌렸다. 며칠에 걸쳐 아치형 하우스 파이프를 세우는 시설 작업도 마쳤다. 오미자 순이 타고 올라갈 수 있게 하우스 파이프에 그물망도 씌웠다.
이제 오미자 묘목을 밭에 심기만 하면 한 숨 돌리겠는데 일정에 차질이 생겨버렸다. 하필 묘목을 심어야 하는 기간에 정목수가 대구에 일이 생긴 것이다. 그동안 처자식 걱정에 먼 현장에 가지 못하고 동네 일만 근근이 해왔다. “나 올 때까지 묘목은 집 앞에 가식해 놔.” 정목수는 연장과 짐을 꾸려 대구로 떠났다. 냇가의 물을 끌어오려면 경운기도 빌려야 하고 물탱크에 물도 받아야 하니 나로선 엄두도 못 낼 일이었다. 그 사이 다른 집들은 이웃에 사는 오미자 선배 농부까지 초빙해 요목조목 설명을 들으며 모두 작업을 마쳤다.
이주 뒤에 정목수가 돌아왔다. 봄볕과 황사 먼지에 새까맣게 그을린 얼굴, 피로에 지친 시뻘건 토끼눈을 달고 돌아왔다.
“대구엔 벚꽃도 피고 목련도 다 폈는데, 여긴 아직 춥네.”
“당신 얼굴도 황량하네 그려. 고생 많았어.”
다음날 오후, 이웃집 아저씨가 경운기를 끌고 와서 물을 대주고, S아저씨의 부인인 정희 언니가 오미자 농사짓는 동네 분들을 모시고 와서 함께 묘목을 심었다. 제때에 심어야 하는데 우리 집만 못 심은 게 걱정되었다며 도와주러 온 거였다. 두 딸아이도 언니 옆에 붙어 앉아 일손을 도왔다. 일러주지도 않았는데 나린이는 아빠가 괭이로 파 놓은 고랑에 묘목을 하나씩 가져다 놓았다. 뿌리째 집어 든 묘목에서 쌉싸래하고 매캐한 오미자 특유의 진한 향이 풍겨왔다. 다음날 아침에 오미자에 북을 주고 발로 꾹꾹 눌러주었다.
“우리 관수시설 안 할 거야? 호스는 다 연결해놨잖아.”
“빗물 저장탱크를 만들 계획이었는데, 작업장 처마에 물받이도 교체하고 빗물 받을 수 있는 시스템도 만들어야 해. 올해는 못할 것 같아. 하늘에 기대는 수밖에.”
당장 작업 일정이 줄줄이 잡힌 터라 정목수는 오미자에 신경 쓸 여력이 없었다. 그다음 날엔 비를 맞으며 정목수와 둘이서 남은 묘목을 심었다. 고맙게도 이틀 걸러 한 번씩 봄비가 내려주었다. 도움을 준 이웃들 덕에 일단 시설과 묘목 작업을 마칠 수 있었다.
며칠간 끙끙 앓을 정도로 작업을 마치고 오미자 농사 교육도 받고 나자 불타올랐던 내 의지도 한풀 꺾여 버렸다. 오미자 작목반 중에 우리 집 재배면적이 제일 작다. 다른 분들에겐 오미자는 농사짓는 작물 중 일부일 뿐. 오롯한 농부의 길은 내가 범접할 수 없는 인내와 내공이 필요한 영역임을 시간이 지나며 알게 되었다.
그렇게 오미자를 심은 게 5년 전 일이다. 그동안 세 차례 수확을 했다. 생각보다 수확량이 많지 않았던 첫 해를 보내고 두 번 째 해에는 백 킬로가 넘는 양을 수확했다. 친정 식구들이 와서 오미자를 양껏 따갔다. 그 해 담은 오미자를 예쁘게 병에 담아 시어머니 칠순 잔치에 오신 분들께 한 병씩 선물로 드렸다. 도시에 사는 지인에게도 보내고, 평소 마음 써 준 고마운 이웃에게도 나눠주었다. 내가 직접 농사지은 먹거리를 나누는 기쁨이 어떤 건지 그때 알았다. 하지만 나의 게으름 탓에 오미자 수확량은 점점 줄어갔다. 제때에 가지치기도 해주고 거름 주고 풀 뽑고, 흰가루 병이 생기지 않게 유황가루도 뿌려야 하는데 내 힘으론 부족했다. 오미자 가지도 많이 죽었다. 이제는 한 해 식구들 먹고 몇 병 선물 줄 수 있을 정도의 양만 겨우 나온다. 그거면 족하다.
자연이 빚어준 열매를 수확해 효소를 담그고, 숙성되는 시간을 기다렸다가 정성으로 걸러낸 오미자 효소. 한 여름 시원하게 마시고 추운 날 따뜻하게 마시는 그 농염하고 새빨간 오미자차 한 잔에 나의 어설픈 농사 이야기 한 스푼이 들어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