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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람풀 Aug 05. 2020

나무에 새긴 마음의 무늬

나무처럼 살고 싶었어


한때 목수가 되고 싶었다. 한 소목장의 작업장 사진에서 비롯된 꿈이었다. 오십 년간 전통 목가구를 만들어온 박명배 장인, 그의 공방에 걸린 사진 속 연장들이 예사롭지 않았다. 목수는 연장으로 말한다고 했던가. 끌, 톱, 자귀, 대패 등 가지런히 걸린 수공구들 모습에서 강한 아우라가 느껴졌다. (대패만 수백 개가 넘는다.) 셀 수 없이 많은 연장들이 그가 나무와 함께 보낸 오랜 고통과 인내의 시간을 말해주는 것 같았다. 사진을 본 순간 나도 저런 작업실에서 평생 나무를 만지며 살아야겠다고 결심했다.



인터넷으로 공방을 검색했다. ‘한국 전통공예 건축학교’에 1년 과정 소목반이 있었는데 아쉽게도 이미 모집이 끝난 뒤였다. 집에서 가까운 공방부터 다녀보기로 하고 B공방을 찾아갔다. 둥글둥글 선한 인상의 주인은 다른 곳도 둘러보라며 주변에 있는 공방 위치까지 친절하게 알려주었다. ‘남은 생을 목수로 살겠노라고 내가 너무 비장하게 말한 탓이었나?’ 왠지 나를 달가워하지 않는 눈치였다.



그곳을 나와 독일에 본사를 둔 H공방을 찾아갔다. 지나치게 규격화된 느낌이랄까? 장비는 훌륭한데 뭔가 나와 맞지 않는 분위기였다. 다시 발길을 돌려 나무 스케치라는 개인 공방을 찾아갔다. 이 공방 주인은 진짜 목수처럼 보였다. 얼굴에 새겨진 굵은 주름과 목공에 대한 그의 친절한 설명은 내 의욕을 부추겼다. 하지만 이 공방 주인 역시 20년 경력의 실력자가 있다며 다른 공방을 소개해 주었다. ‘대체 왜지? 왜 나를 거부하는 거야?’



다음날 소개받은 또 다른 공방을 찾아갔다. 드디어 나의 사부를 만나겠구나 하고 내심 기대했다. 하지만 그는 자기 작업에 방해가 되어 더 이상 회원을 받지 않을 거라 딱 잘라 말했다. 대신 실력이 좋다는 후배를 소개해주었다. 그의 공방은 우리 집에서 아주 가까웠다.



드디어 공방을 다니게 되었다. 자전거를 타고 날마다 공방에 나갔다. 공방 주인은 29세 청년이었다. 처음 몇 달간은 나보다 대여섯 살이나 어린 목공 스승의 잔소리에 시달려야했다. 겁도 없이 전동공구를 막 써대는 나를 보고 혼을 냈다. 누구는 이 공구를 쓰다가 손가락이 잘렸다더라, 타카 핀이 다리에 박힌 사람도 있고, 다리가 절단되기도 했다더라, 혹은 뼈가 으스러졌다더라. 별별 끔찍한 일화를 수시로 들려주며 사용법 준수와 안전을 강조했다. 그럴 만도 했다. 굉음을 울리며 작동하는 전동공구 모두 공포영화에 단골로 등장하는 살인 도구들이었으니까.

 ‘이 청년은 언제 배워서 이런 공방을 차린 걸까?’



그때 난 부모님 집에 얹혀사는 서른 중반 백수였다. 도시로 출퇴근 하는 일은 영원히 포기한 대책없는 백수가 그동안 번 돈은 여행에 탕진하고 공방을 다니고 있었으니, 그 젊은 목수가 대단해 보였다. 꼼꼼하고 깐깐한 목수 밑에서 1년을 배우며 가구를 만들었다. 주로 두 언니가 내 배움의 희생양이 되었다. “이런 가구 필요하지 않아? “ 하고 언니들 옆구리를 찔러서 자재비와 약간의 인건비를 챙겼다. 그런식으로 없어도 되는 언니네 집의 책상과 의자, 식탁, 장식장 등을 만들었다. 아파트 쓰레기장에 버려진 가구를 주워 모아 리폼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때 한참 유행하던 DIY 가구 수준을 벗어나지 못했다. 남은 생을 목수로 살기엔 내 인내심도 체력도, 실력도 의지도 아주 많이 부족했다. 이 일로 내 밥벌이는커녕 가족들만 등쳐먹을 게 뻔했다.



어쩌다 보니 목수 대신 목수의 아내가 되었다. 남편 정 목수는 한옥 짓는 걸 배웠다. 가구는 물론 구들 놓는 것부터 집 짓는 것 까지 두루 잘한다. 꼼꼼하고 치밀하며 성실하고 부지런하다. 여러모로 나와 정반대다. 정목수 작업장에는 집 짓는 데 필요한 모든 공구가 있다. 결핍이 창작을 낳는 법. 나보다 훨씬 실력있는 목수 앞에서 나는 목공에 흥미를 잃어갔다. 아이들 돌봄과 집안일 때문에 여유가 없기도 했다. 대신 나무로 작고 예쁜 것들을 만들기 시작했다.



간벌한 나무 단면에 그림을 그려 나무 브로치나 모빌을 만든다. 조롱박을 삶아 속을 파내고 바싹 말린 뒤 그림을 그리면 마트료시카 못지않은 멋진 인형이 된다. 거기에 눈, 코, 입과 옷을 그려 넣으면 개성 있는 아이들이 하나 둘 탄생한다. 자투리 나무로 새집을 만들어 나무에 걸어두기도 한다. 이런 것들을 틈틈이 만들어 둔다. 혹여 마음을 전하고 싶은 사람을 만나면 ‘슥’ 하고 멋쩍게 선물로 건넨다. 나무에 새긴 내 마음의 무늬다.



나무를 계속 만지다 보면 나무를 닮은 사람이 될 수 있을까? 생각해보니 그때 내가 바랐던 건 목수가 아니었는지도 모른다. 나무에 둘러싸인 채 나무와 친구가 되어 나무처럼 살고 싶은 삶, 이런 걸 꿈꿨던게 아니었을까?

'나무들은 늘 나의 시선을 가장 많이 끄는 강력한 설교자였다’ 는 헤르만 헤세의 말처럼 내게도 나무는 늘 경외와 숭배의 대상이요, 진정한 친구이자 사랑스러운 이웃이었다. 내가 바랐던 대로 나는 지금 산 밑에 나무로 만든 집에서 날마다 나무를 만지며 살고 있다. 마당에는 내 성지와도 같은 커다란 느티나무가 한 그루 있다.


날마다 나무들에게 귀를 기울이며 그저 온전히 나로서 오늘을 사는 . 오래전 간직한 목수의 꿈은 이렇게  삶의 방식으로 자리잡았다. 하지만 누가 알겠는가? 언젠가 연장들을 손에 쥐고 나무를 깎고 다듬으며 노년을 보내게 될지. 내가 감동 받았던 사진속 작업장의 주인처럼 말이다.    


나무들의 속삭임에  기울이는 법을 배우면서 생각이 짧고 어린애같이 서두르는 우리들은 말할  없는 즐거움에 젖는다. 나무들에게  기울이는 법을 배운 사람은  이상 나무가 되려고 갈망하지 않는다. 그는 자신 이외의 다른 무엇이 되려 하지 않는다.

(고독하고 의연한 나무들) 헤르만 헤세『정원일의 즐거움』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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