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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람풀 Aug 03. 2020

빨래를 널며

"엄마한테서 이상한 냄새가 나. 세탁기에 엄마를 돌려야겠어." 


곁에 다가온 둘째 딸이 인상을 찌푸리며 코를 움켜쥔다. 내가 입은 속옷 상의에서 나는 냄새 때문이다. 

며칠째 햇살을 받지 못한 옷들에서 구리구리한 냄새가 난다. 건조기도 제습기도 에어컨도 없다 보니 장마 기간 동안 감수해야 하는 냄새다.



비가 잦아드는가 싶더니 오후부터 다시 물폭탄이 쏟아진다. 산사태와 호우경보를 알리는 재난문자 알림도 계속 울려댄다. 연락이 뜸했던 친구들의 안부 문자와 전화도 이어진다. (다행히 여기는 상류지역이라 피해가 덜 합니다.)



날씨에 아랑곳하지 않고 빨래는 계속 쌓이고, 오늘도 거실에 빨래를 한 가득 널어두고 선풍기를 돌린다. 빨래의 운명을 좌우하는 건 햇빛과 바람. 마당에 나부끼던 빨래들을 생각한다. 그 가볍고 천진한 움직임을. 옷에 밴 내 땀과 체취를 거두어 갔던 산들바람과 투명하게 부서지던 햇살을.



바람이 먹구름을 거두어가면 마당 가득 빨래를 널어야지. 눅눅해진 이불의 먼지도 탈탈 털어내야지.

퀴퀴한 속옷도, 꿉꿉해진 우리의 몸과 마음도 다시 보송보송 가벼워질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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