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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람풀 Jul 27. 2020

내 영혼의 도반

나의 길동무에게

 

ⓒ 바람풀



J언니를 처음 만난 건 시드니 외곽, 크로이던이라는 작은 마을에서였다. 그곳의 한 셰어하우스에서 각자 나름의 이유로 호주에 온 세 명의 한국 여자와 짧은 동거를 한 적이 있다. 나는 워킹홀리데이 비자로 입국해, 6주짜리 어학연수를 하던 중이었다.


비 오는 밤, 우리는 본다이 비치로 달려가 해변을 달리고 포말이 하얗게 부서지는 바다에 드러누웠다. 온몸이 젖은 채로 다시 기차를 타고 시내에 있는 펍(pub)에 들어가 아바의 댄싱 퀸에 맞춰 춤을 추기도 했다. 시드니 구석구석을 밤늦도록 쏘다녔고, 유람선을 타고 허공으로 솟구쳐 오르는 돌고래와 만나기도 했다. 모두 이십 대 중반을 통과하는 청춘이었다. 일주일 뒤 그 집을 떠났고, 나는 호주와 뉴질랜드의 농장을 떠돌며 일과 여행을 반복하다가 집으로 돌아왔다.


여행 중 만난 누군가의 주소가 수첩에 빼곡했지만, 다시 만나고 싶은 사람은 언니가 유일했다. 다시 직장을 구해 광고회사에 다니기 시작했을 무렵 언니에게 편지를 보냈다. 레몬 빛 편지지에 꾹꾹 눌러쓴 편지 한 통을 시작으로 지금까지 이십 년 넘게 메일을 주고받는 사이가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언니가 알려준 주소로 신사동에 있는 작업실을 찾아갔다. 다니던 회사와 멀지 않은 거리였다. 후미진 주택가 골목에 위치한 작고 낡은 그곳은 이상하고 아름다운 것들로 가득했다. 골동품 같은 재봉틀과 색색의 조각 천과 실, 한 땀 한 땀 손으로 만든 공책과 올망졸망 귀엽고 예쁜 것들. 언니는 편집디자인을 하며 책에 그림도 그리고, 손으로 공책과 가방과 인형 같은 것들을 만드는 사람이었다. 호주에 있을 때도 늘 수첩을 들고 다니며 뭔가를 기록하던 언니 모습이 떠올랐다. 한 번은 언니 침대 맡에 한국으로 보낼 종이 상자 두 개가 놓여있었는데 그 안은 헌책으로 가득했다. 책 뒷장에는 대출기록 카드를 꽂던 봉투가 붙어 있었고, (당시엔 그랬다) 대부분 그림책과 동화책이었다. 여행 중 언니가 제일 먼저 찾는 곳은 그 지역 도서관이라 했다. 그곳에 가면 폐기처분 직전의 책들을 싸게 팔았고 거기서 산 책들이 모이면 한 번씩 한국으로 부친다는 거였다.


로또에 당첨되면 어린이 도서관을 짓는 게 꿈이라는 언니, 그녀는 내가 가 닿지 못한 저 너머의 사람 같았다. 언니가 작업실을 옮길 때마다 설레는 마음으로 그녀를 만나러 갔다. 회현역에 내려 가파른 비탈길을 올라 찾아갔던 남산 시범아파트(회현 시민아파트)는 내가 가장 좋아했던 작업실이다.


남산 시범 아파트   2003년 모습


세월의 흔적이 검버섯처럼 피어있는 그곳은 이상한 나라로 가는 관문 같았다. 낡을 대로 낡고 쇠락할 대로 쇠잔해진 집이지만 깊은 바닷속처럼 고요하고 정감 어렸다. 헤어질 때면 언니는 늘 자신이 만든 것들을 선물로 안겨주었다. 그녀는 날마다 뭔가를 만들고, 쓰고 그리며 나누는 사람이었다. 쓸모를 다한 것들을 그러모아 아름답고 빛나는 것으로 둔갑시키는 언니의 손이 마냥 부러웠다. 언니를 만나면 언제나 내 안에서 꿈틀대는 뭔가를 강하게 느꼈다.


아파트 10층, 언니의 작업실


삼 년 만에 다니던 광고회사를 그만두고 나는 다시 여행길에 올랐다. 정처 없이 길을 걷고 싶은 열망만 가득하던 시절이었다. 여행 중에도 언니에게 엽서와 이메일을 보냈다.


콜카타를 떠나 그토록 오고 싶던 다르질링에 왔는데 3일 내내 안갯속에 갇혀있어요.     ...     오늘 다시 네팔로 가려고 아침 일찍 짐을 싸서 나왔는데 무슨 선거 때문에 인도 전체가 파업이라 모든 교통수단이 멈춰버렸고 가게들도 문을 닫았네요. 오들오들 추위에 떨며 모든 게 안갯속에 갇혀 버린 느낌이에요. 얼른 이 안갯속을 벗어나야 할 것 같아요. 여행 마치고 돌아가 여기서 산 차와 음악 시디 들고 얼른 찾아갈게요. (2004.2.24)


다시 포카라에 왔어요. 여기서 여행 일정을 전면 수정하고 있습니다. 다시 카트만두로 가서 파키스탄 비자를 받아 그곳에서 중국으로 가는 루트를 고민하고 있어요. 물론 돌아오는 비행기 티켓은 포기하고요. 여기서 만난 사람들과 믿지 못할 만큼 놀라운 일들과 우연의 연속. 어서 돌아가 언니에게 들려주고 싶네요.   (2004.3.11)


네팔과 인도, 티베트를 넉 달간 여행하고 돌아가려던 계획은 무한정 늘어졌고 카트만두에서 파키스탄 비자를 받고 다람살라로 갔을 때는 몹시 지쳐있었다. 그날 밤, 언니가 꿈속에 나와 작아진 나를 꼭 안아주었다. 아마 아래의 편지를 내게 쓰고 있던 시각이 아니었을까 짐작해본다.  


잘 가고 있지. 길을 잘 걸어라. 언니도 변덕을 부려대며 쭉 길을 걷고 있다.   ...    내가 너를 언제나 생각한다는 것을 잊지 말아라. 우리들은 언젠가 이 세상을 떠나갈 거고 그리웠던 사람을 만나게 될 거야. 만나서 얼마나 사랑했는지.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고 그 몸을 만질 수 있을 것 같다. 다시 꽉 끌어안아 볼 수 있을 것 같다. 어떤 여행도 좋다고 생각이 된다. 거리를 옮기지 않지만 나도 여행 중에 있다. 그리고 종종 나는 네가 있는 곳에 있기도 하다. 아마 그때가 네가 나를 생각하는 <찰라>의 순간일지도 모른다. (2004.3.30)


승주는 항상 그 본연의 사람이었어. 그런 사람의 그 시절을 함께 해서 좋았어. 우리 집에 승주 그림 조롱조롱 달린 나무그림 걸려 있어. 매일 본다. 매일 보는데도 덜 본 것을 알게 하는 그림이다. 좋은 것은 외워지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좋은 그림은 자꾸 방대해진다. 그것 승주에게 있다. 마음까지도 비우고 그린 그림은 영혼이 담기는 것 같다. 그래서 어린이들이 그린 그림을 보면 좋지. 몇 해 전에 앞만 보고 걷는데 오른쪽 화랑에 문이 열렸던지 거기서 영혼의 기운이 막 쏟아져 나오는 거야. 며칠 뒤 그 화랑에 가서 보니 환기 그림이었다고 전에 이야기한 것 같다. 그림을 꾸준히 자주 그리길 바란다. 승주야. 널 만나다니 전생에도 길을 함께한 도반이었나 보다.  (2008.2.21.)


언니처럼 나도 작업실을 갖고 싶었다. 나만의 공간에서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쓰며 손으로 무엇이든 만드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하지만 그것으로 내 생계를 꾸리고 독립된 주체로 살아가기에는 어림도 없었다. 어설픈 취미 수준이었으니까.


여행을 계기로 결혼과 동시에 산골 마을에 둥지를 틀었다. 자연 속에서 내 본성대로 자유롭게 살고자 하는 마음이 컸다. 첫째 아이를 뱃속에 품고 여행기를 썼다. 내 첫책인 히말라야 여행기가 세상에 나올 수 있도록 언니가 다리를 놓아주었다. 한마을에 사는 아기 엄마들과 도서관을 만들 때에도 언니는 누구보다 기뻐하며 많은 책과 책 목록을 꾸준히 보내주었다. 지난 두 해 동안 마을주민들과 그림책 만들기 수업을 진행할 때도 언니의 조언과 지지가 큰 힘이 되었다. 독립 출판 작업을 하며 서점을 운영하는 지인을 강연자로 소개해 줬고, 언니가 직접 와서 더미북 만드는 방법을 알려주기도 했다.


좋은 것들은 스스로 우러나는 시점이 있으니 잊지 않고 자꾸 돌보고 가꾸면 우리 앞에 맑은 얼굴로 마주할 때가 온다고, 언니는 내게 고조곤히 들려 주었다.  ‘운명은 길섶마다 행운을 숨겨 두었다.’라고 한 니체의 말을 빌리자면, 내게 그 행운을 알아봐 주게 해준 사람은 바로 언니였다고, 언니가 있었기에 늘 내 안에서 꿈틀대던 욕망의 실체를 마주하고 이제야 일상에서 담담히 펼쳐 보일 수 있게 되었노라고 나는 말할 수 있다.

 

스물다섯에 만나 삼십 대와 마흔을 훌쩍 넘기고 쉰을 바라보는 나이. 그간의 편지 속에는 지나는 삶의 굴곡마다 서로를 다독이던 문장이 조용히 숨 쉬고 있었다.


강한 사람도 약한 사람도, 약하고 강한 것이 고루 들어차 있는 것 같아요. 강할 수밖에 없는 사람과 약하지만 쓰러지지 않으려 하는 사람들이 다 하늘과 산과 구름과 노을과 햇빛 같아요. 살아보니 우리는 다 자연이고 죽음은 자연이 되는 일인 것 같아요. 자연스럽다는 것이 세상 제일의 말 같아요. 우리 잘 해왔지요? 이렇게 슴슴하게 한 번쯤 살아보고 싶었던 그 생을 살고 있는 것 같아요. 우리가 오래 지내면서 언니 동생이면서 친구면서 서로의 선생이 되어 주어 기쁩니다. 승주는 저의 선생 아니겠습니까. 그럼, 바람처럼 풀처럼 자연처럼 살아가는 승주에게 잘 자라는 인사 보내며.               
파주에서 언니 드림       (2019.9.2.)


내가 어디까지 할 수 있는 사람인지 깨닫게 해 준 사람, 나도 몰랐던 내 가치를 발견하고 끊임없이 지지해준 사람. 내가 제법 잘살고 있다고 매번 느끼게 해주는 사람. 작고 여린 것들에게 한없이 다정하고 따스한, 내가 닮고 싶은 사람. 언니는 내게 그런 사람이었다. 어쩌면 우린 서로에게 그런 존재였는지도 모른다. 각자 가는 길을 조용히 축복해주는 영혼의 도반과도 같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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