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주가리 씨앗
바람을 타고 훨훨 날아가는
아가의 살결보다 보드랍고 새의 깃털보다 윤기 나는,
이토록 뽀얀 것은 무엇인가?
쭈글쭈글 울퉁불퉁. 말라비틀어진 표면은 갈색 얼룩과 검은 반점으로 뒤덮여있다. 새의 부리처럼 생긴 길고 뾰족한 열매 속을 손으로 톡 건드린 순간 눈앞에 펼쳐진 광경에 난 넋을 잃고 말았다. 긴 솜털 치마를 두른 씨앗이 끝없이 솟구쳐 나오는 것이 아닌가. 나의 탄성도 동시에 터져 나왔다.
박주가리 씨앗과의 첫 만남은 강렬했다. 마법에 걸려 어둠의 방에 갇혀있던 요정들이 깨어나 듯, 열매 속에 봉인된 씨앗들이 순식간에 허공으로 흩어졌다. 누군가 건드려주길 기다렸다는 듯 솜털을 날개 삼아 바람에 날아가는 씨앗의 비행. 비단 치마를 두른 작은 씨앗들이 춤을 추며 내 앞에서 사라져 갔다.
바람을 이용해 번식하는 식물들을 보면 엄청난 양의 씨앗에 놀라게 된다. 박주가리 열매 안에 겹겹이 포개진 씨앗들이 얼마나 많이 잠들어있던지, 이 솜털들을 모아 이불을 지어 맨몸에 덮으면 좋겠단 생각이 들 정도다. 옛사람들은 박주가리 씨앗으로 바늘쌈지를 만들었다고 하니 몇 년 채집하면 이불도 가능하지 않겠나 싶다. 누구나 한 번쯤 불어보았을 민들레도 씀바귀, 버드나무, 억새, 엉겅퀴, 방가지똥, 지칭개도 씨앗에 솜털을 달고 여행을 한다. 부모에게서 최대한 멀리 날아가 강에도 떨어지고 아스팔트 틈새에도 떨어진다. 산자락이나 들판에 안착한 씨앗은 쉽게 탄생의 기회를 얻고 보도블록 틈에 떨어진 씨앗은 고군분투할 것이다.
씨앗은 왜 여행을 하는 걸까?
씨앗은 부모 식물로부터 멀리 떨어질수록 생존율이 커진다. 부모 식물 아래서 싹을 틔우면 부모 그늘에 가려 햇빛을 제대로 받기 어렵고 부모의 크고 튼튼한 뿌리에 물과 양분을 빼앗기기 때문에 최대한 멀리 떨어져 싹을 틔우려 한다. 영국 옥스퍼드 대학의 교수인 윌리엄 해밀턴과 밥 메이는 실제 실험을 통해 이 결과를 입증했다고 한다. 같은 씨앗을 한 구역에서는 부모 식물 곁에서 자랄 수 있게 했고, 나머지는 자연에 맡겨 멀리 날아가게 한 뒤 생존율을 관찰했더니 부모 곁에 떨어진 씨앗들은 발아율도 떨어지고 발아가 되었어도 생존율이 낮았다. 반면 멀리 날아간 씨앗은 자신의 영역을 구축하며 잘 자랐다고 한다. 식물 영역 주변에는 이미 수십 년 동안 이 식물에 찾아오거나 함께 살아가는 벌레, 곤충, 바이러스 등이 있는데 이것들이 이제 막 싹을 틔운 씨앗에게 더 치명적인 해를 끼친다고 봤다. 더불어 멀리 날아간 씨앗들은 부모의 터전에서보다 더 큰 어려움을 겪지만 스스로 자라며 강한 생존력을 보인다고 했다.
단풍나무나 느릅나무처럼 날개를 달고 빙글빙글 날아가는 씨앗, 도깨비바늘이나 가막사리, 도꼬마리처럼 사람과 동물의 몸에 달라붙어 여행하는 씨앗. 꼬투리가 비틀리면서 멀리 튀어나오는 씨앗, 흐르는 물에 실려 가는 씨앗, 새의 뱃속에 들어가 멀리 이동하는 씨앗 등. 씨앗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여행을 한다.
이맘때면 박주가리 씨앗을 보기 위해 집 근처를 산책한다. 해가 땅으로 기울어갈 즈음 집을 나선다. 살얼음이 낀 개천을 따라 걷다가 마을 어귀 느티나무를 끼고돌아 산자락을 따라 걷는다. 맞은편 밭두둑의 울타리 그물망에 박주가리 덩굴이 보인다. 박주가리 열매를 톡 건드린다. 새근새근 잠자던 솜털이 춤을 추며 날아오른다. 이보다 더 가벼울 순 없다는 듯 겨울 햇살에 반짝이며 눈부시게 비상하는 씨앗들. 내게 환희를 선사하는 풍경이다.
씨앗의 여행을 알고 난 뒤에 ‘저절로 자라는 식물’이나 ‘늘 그 자리에 의연하게 서 있는 나무’ 같은 표현을 지우게 되었다. 요즘엔 산책길에 만나는 식물들을 보며 이렇게 묻곤 한다. 너의 전생을 기억하냐고.
하늘을 날았을까? 물 따라 흘러왔을까. 어떤 새의 뱃속을 통과해 배설물로 나왔을까? 누구의 털에 붙어 여기까지 왔을까? 여정은 달랐지만 그 험난한 여행을 마치고 결국 싹을 틔웠구나. 수고했어.
모든 생명이 그렇듯 종의 번식을 위해 식물은 씨앗을 맺고 혼신의 힘을 다해 씨를 퍼뜨린다.
사람도 이와 다르지 않다는 생각을 해본다. 자식을 잘 독립시키는 것이 부모의 제일가는 소임임을 두 아이를 키우며 알아간다. 3월이 되면 첫째 딸이 입학과 함께 읍내 고등학교 기숙사에 들어간다. 아닌 척 시치미 뗐지만 앞으로 아이가 겪게 될 긴 여정에 난 미리 겁을 내고 있었다. 작가 마크 헤이머는 그의 책 ‘봄비와 정원사’에서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아이들이 마치 그릇이라도 되는 양 우리의 생각을 안에 담으려고 그들을 세뇌하지만, 아이들은 우리들의 생각과 달리 어른들이 거의 필요하지 않다. 아이들은 생존하기 위해 세상이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알아내도록 설계된 존재들이다. 그들은 자기 자신만의 방식대로 살아가며, 본인들이 태어나기도 전에 어른들이 상상한 대로 사는 아이들은 거의 없다.
가볍게 비상하는 박주가리 씨앗도 내게 같은 말을 속삭여 주는 것만 같다.
참고한 글
-내 마음의 야생화 여행 (이유미/진선북스)
-오경아 “씨앗이 멀리 가려는 까닭은” 백세시대 칼럼
-이지사이언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