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홍사라 Feb 02. 2021

한 트럭 분량의 소똥이 쏟아질 때

《술 취한 코끼리 길들이기》독서에세이



〈싱어게인〉이라는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자꾸 시선이 머무는 가수가 있었다. 






11호 이소정이 싱어게인 프로그램을 출연한 사연이 남달랐다. 그녀는 자신을 “이제는 웃고 싶은 가수”라고 소개한다. 그동안 울 일이 너무 많았다는 그녀는 걸그룹 ‘레이디스 코드’라는 애슐리, 은비, 권리세, 소정, 주니. 5인조로 구성된 걸그룹으로 2013년 데뷔했었다.      


2014년 갑작스러운 교통사고로 멤버 권리세와 은비가 사고 현장에서 사망해 큰 충격을 안겼다. 교통사고 현장에서 두 명의 멤버가 죽는 모습을 지켜봤다. 이소정을 비롯한 나머지 멤버들도 크게 부상을 입어 오랜 시간 재활치료를 했다. 이후 세 멤버는 아픔을 딛고 1년 6개월 만인 2016년 3인조로 컴백해 5년 정도 가수로 활동을 했지만 사람들의 시선이 부담스러웠다.       


사고의 후유증으로 아직도 심리치료와 약물 치료를 병행한다고 담담하게 고백하는 이소정은 가수로서 밝은 에너지를 드리고 싶은데 웃으면 안 될 것 같은 생각이 들어 슬프다고 고백하며 자기의 과거를 솔직하게 드러냈다. 과거의 트라우마와 상처가 너무 컸다. 그 상처의 후유증으로 여전히 힘듬이 있다. 하지만 그녀는 포기하지 않고 다시 무명가수로서 싱어게인이라는 오디션에 도전했다. 그리고 주어지는 무대를 늘 마지막 무대라고 생각하며 열정을 불태워 준비하고 노래했다.      


가수로서 기본 가창력에 남다른 상처가 재능으로 더해졌다. 남다른 아픈 사연만큼이나 그녀가 부르는 노래의 가사들은 남다른 뭉클함을 안겨주었다. 과거의 상처를 뚫고 나온 그녀는 무대에서 노래의 가사로 전하고 싶은 메시지를 풀어낸다.      




처음 홀로 선 무대에서 그녀는 임재범의 “비상”이라는 곡을 열창했다. 수많은 가수들이 비상을 불렀으나 이소정이 부르는 비상은 남다른 여운이 가득했다. 자신을 안쓰럽게만 보는 게 속상하다며 부르는 그녀의 노래 가사가 마음 깊은 곳에 들어와 가라앉는다.      



나도 세상에 나가고 싶어

당당히 내 꿈들을 보여줘야 해

그토록 오랫동안 움츠렸던 날개 

하늘로 더 넓게 펼쳐 보이며 날고 싶어


다시 새롭게 시작할 거야.

더 이상 아무것도 피하지 않아.

이 세상 견뎌낼 힘이 돼줄 거야.”     



모든 무대마다 팔색조의 변신을 아낌없이 펼쳐낸 그녀가 TOP 10을 뽑는 무대에서 선곡한 노래는 서편제에 나오는 〈살다 보면〉이었다. 그녀가 사고 이후 힘들어할 때마다 그녀에게 “힘내”, “이겨내”, “넌 할 수 있어”가 아니라 “괜찮아, 다들 그래 살아야지”라고 다독여 주었던 그녀의 어머니를 떠올리며 부른 노래의 울림이 깊은 파도가 되어 넘실거렸다.      


혼자라 슬퍼하진 않아 돌아가신 

엄마 말하길 그저 살다 보면 살아진다 

그 말 무슨 뜻인진 몰라도 

기분이 좋아지는 주문 같아 


너도 해봐 눈을 감고 중얼거려 

그저 살다 보면 살아진다 

그저 살다 보면 살아진다.”     



무명가수 이소정은 힘든 터널을 빠져나왔다. 그리고 이제는 이 세상 견뎌낼 힘이 돼줄 거라고 약속한다. 자신의 상처에 매몰되지 않고 상처를 뚫고 나온 그녀가 참 눈물겹게 아름다웠다. 그녀가 가장 잘할 수 있는 노래를 통해 메시지를 감동 있게 전하는 모습에 매료되었다. 그저 살다 보면 살아진다 그저 살다 보면 살아진다” 지금도 울림이 되어 울려오는 듯하다.      




《술 취한 코끼리 길들이기》에서 아잔 브라흐마는 인생의 비극적인 고통을 한 트럭 분량의 소똥으로 비유한다. 인생의 비극은 멋진 오후를 보내고 돌아온 집 앞에 갑자기 한 트럭 분량의 소똥이 쏟아부어져 있는 것과 같다는 것이다. 소똥을 주문한 적도 없다. 소똥을 어떻게 해야 할지도 모른다. 소똥은 불쾌하고 고약한 냄새가 진동하기까지 하다.       



한 트럭 분량의 소똥에 갇히게 되었을 때 어떻게 해야 할까?


대부분 사람은 두 가지로 반응을 한다. 첫 번째 방식은 소똥을 늘 가지고 다니는 것이다. 주머니 안에, 가방에, 셔츠 안에, 바지 속에 소똥을 넣어 다니다 소똥 냄새 때문에 주변의 친구들까지 잃게 된다.  두 번째 방식은 한숨을 내쉬면서 소똥 옮기는 작업을 시작하는 것이다. 


손수레, 쇠스랑, 갈퀴를 동원하여 소똥을 집 뒤로 옮겨 정원에 비료 삼아 파묻는다. 지치고 힘들어도 하루에 한 수레여도 날마다 조금씩 소똥을 퍼 나른다. 여러 해가 걸려 집 앞의 소똥이 모두 사라진 것을 보게 되는 기적의 아침을 맞이하게 된다. 

      

소똥을 늘 가지고 다니는 것은 부정적인 마음, 분노와 좌절에 잠겨 소똥을 갖다 놓은 누군가를 원망하고 불평하며 살아가는 것이다. 반면 소똥을 퍼 나르는 것은 누구도 도와줄 수 없는 비극을 삶을 위한 거름으로 환영해 받아들이는 것이다.   

   



무명가수 이소정에게도 한 트럭의 소똥이 쏟아졌다. 


소똥은 그녀가 주문한 것이 아니었다. 그녀의 잘못이 아니었다. 그리고 쏟아진 소똥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소똥 범벅이 된 그녀는 한동안 병원에 오래 머물며 치료를 받아야 했다. 지금도 그녀는 치료 중이라고 고백한다. 불결하고 불쾌한 고약한 냄새가 그녀의 주변을 한동안 가득 채웠다. 


그녀는 냄새나고 불쾌한 소똥을 날마다 조금씩 뒤뜰의 정원으로 퍼 날라 파묻었다. 지치고 힘들어도 재활치료를 받으면서도 집 앞의 소똥을 퍼 날랐다. 손수레와 쇠스랑, 갈퀴를 동원하여 소똥을 치운다. 그리고 그녀는 소똥이 점점 사라진 기적의 아침을 맞이했다. 


한 트럭의 소똥 같았던 과거의 상처와 트라우마를 삶을 위한 거름으로 환영해 받아들인 그녀의 정원은 꽃들이 만발한 아름다운 꽃밭이 되었다.  그녀가 부르는 노래에서 나오는 아름다운 향기가 지나가는 행인들에게 미소를 안겨준다.    


삶에 쏟아진 비극을 삶을 위한 거름으로 환영해 맞아들이는 것이 바로 소똥을 나르는 것이고, 우리가 오늘 혼자 해야 하는 일이다. 소똥을 치우는 일은 아무도 도울 수 없다. 우리에게 찾아온 비극적인 불행과 고통을 겪고 그것의 교훈을 배워갈 때, 그것으로 우리의 정원을 가꾸어 갈 때, 우리는 깊은 비극 속에 있는 다른 사람을 껴안을 수 있는 상처입은 치유자로 설 수 있다. 그리고 부드럽게 말할 수 있다.


"그래요. 나도 다 압니다. 저도 그랬으니까요."






아잔 브라흐마는 위대한 스승일수록 거대한 소똥 무더기가 쏟아졌다고 소개해 준다. 크나큰 시련을 겪으면서 묵묵히 소똥을 퍼 날라 풍요로운 내면의 정원을 가꾸었기에 더 많은 소똥을 가졌던 이들이 세상과 나눌 것을 더 많이 가지고 있었다고 이야기한다. 


우리 삶에 한 트럭 분량의 소똥이 쏟아질 때 이렇게 말해야 할 것이다.

"우아!! 내 정원에 뿌릴 거름이 풍년이 들었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