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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사라 Feb 13. 2021

우리를 괴롭히고 위로하는 사소함에 대하여

첫 영화에 실패한 무명 감독이 있었다.     


그는 자신의 두 번째 영화를 준비하면서 배우 한명을 캐스팅 하고 싶었다. 그런데 도저히 자신이 없었다. 첫 영화에 실패한 자신에 비해 그 배우는 너무나 잘나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과연 내가 이 배우를 섭외할 수 있을까?’ 

감독은 한참을 고민했다. 


‘그래, 대본은 보내놨으니 전화라도 해보자.’ 

떨리는 마음으로 배우에게 전화를 걸었다.     

뚜뚜.. 

‘아, 네 시나리오 보냈던 감독입니다. 혹시 읽어 보셨나요?’ 

감독이 물었다. 


당연한 거절을 생각했던 감독의 귓가에 뜻밖의 대답이 들려왔다. 

“출연하겠습니다. 난 이미 5년전에 당신 영화에 출연하기로 결정했어요.”        

5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 보자. 




5년전 무명이었던 이 배우는 영화 오디션을 하나 보게 된다. 그는 오디션에 떨어졌고 힘없이 집으로 돌아왔다. 무거운 발걸음으로 집에 돌아온 그는 자신의 삐삐에 음성메시지가 녹음되어 있는 것을 발견했다.     

‘안녕하세요. 오디션 봤던 영화의 조감독입니다. 

좋은 연기 정말 감명 깊게 봤습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맞는 배역이 없어서 같이 작업을 못할 것 같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언젠가는 꼭 좋은 기회에 다시 뵙고 함께 작품을 했으면 좋겠습니다. 

오늘 만나 주셔서 너무 감사드립니다.’는 내용이었다.     


무명 배우는 충격을 받았다.

지금까지 어떤 조감독도 오디션에 떨어진 자신에게 이렇게 정성 들여 합격여부를 연락해 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배우는 생각했다.     

‘이 양반은 앞으로 나와 만나게 될지 안 만나게 될지 모르지만, 이 태도와 자세를 보니 뭐가 되도 되겠다. 이런 마음으로 사람을 만나고, 세상을 살아가면 뭐라도 되지 않을까.’


배우는 결심했다. 

‘언젠가 이 사람이 감독이 된다면, 나는 반드시 그의 영화에 출연할 것이다.’     

그런 사연으로 배우 송강호는 봉준호 감독의 두 번째 영화 ‘살인의 추억’(2003)에 출연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 후 ‘괴물’(2006), ‘설국열차’(2013), ‘기생충’(2019)까지 함께 하며 송강호는 봉준호 감독의 뮤즈가 되었다. 송강호는 오디션을 볼 당시 별볼일 없는 무명 배우였다. 조감독이었던 봉준호는 그를 함부로 대하지 않았다. 송강호는 봉준호 감독의 사소한 배려에 감동되었다. 봉준호의 사소한 배려가 잘나가는 유명배우 송강호를 무명 감독의 영화 주인공으로 섭외한 것이다.     


송강호는 평상시 봉준호 감독이 진짜 친구이자 동지라고 이야기한다. 봉준호 감독의 별명처럼 너무 디테일한데 큰소리 한번 안내고, 배려하고, 밥 때를 잘 챙겨주고, 스텝들에게까지 다정하다고 봉준호 감독을 폭풍 칭찬한다.     



봉준호 감독은 무명 감독일 때만 배려깊은 사람이 아니었다. 

그의 사소함은 무명이었을 때에도, 아카데미를 휩쓴 지금도 동일한 것이다.      

봉준호 감독의 사소한 한통의 음성메시지가 무명 배우 송강호의 초라함을 위로했다.


수없이 많은 배우들이 오디션을 보러 왔을 텐데 송강호를 비롯해 떨어진 배우들에게 봉준호 감독은 결과를 연락해 준 사소한 배려를 베풀어 준 것이다. 그 사소함이 송강호의 실망에 위로를 주었고 이러한 사소함이 쌓여 아카데미 4관왕이라는 놀라운 기적을 이루어 냈다.        

 



“사소한 일이 우리를 위로한다.

사소한 일이 우리를 괴롭히기 때문에”

〈파스칼〉     


파스칼의 명언처럼 우리는 사소한 일로 괴롭힘을 받고, 사소한 일로 위로를 받는 존재이다. 사소한 비방, 사소한 말실수, 사소한 무례함이 우리에게 상처가 되고 우리를 괴롭힌다. 반면 사소한 친절, 사소한 배려, 사소한 감사가 우리를 감동케 하고 위로하며 격려한다.     


내 인생이 기나긴 사막을 걷는 듯 가장 메마른 시간을 보낼 때 오아시스가 되어 주신 K교수님과의 인연도 너무 사소한 질문에서 비롯되었다.  2002년에 대학원을 입학해 산소 학번이었던 나는 두 번의 출산과 휴학으로 2013년에 대학원 에 다시 복학해 3학년 재학 중이었다. 동기들도 낯설고, 교수님들도 낯설어 수업이 끝나면 바로 귀가하는 날들이 지속되었다.     


집이 멀어 첫 수업 지각을 자주 했던 나는 수업 쉬는 시간 결석이 아닌 지각처리를 해야 했다. 결석을 지각으로 처리하시던 K교수님이 나와 학번을 번갈아 보시더니 질문을 던지셨다.

“이 학번이 맞나요? 학번이 잘못된 게 아닌가요?”    

2010학번의 수많은 학생들 중 나 홀로 2002학번이었는데 내 학번을 관심있게 봐주신 교수님의 사소함이 나에게 감동이 되어 밀려왔다. 다른 교수님 누구도 내 학번에 관심이 없었다. 학번에 관심을 보여준 사소함이 폭풍 감동이 되어 그날부터 K교수님의 수업은 무엇이든 수강하는 열렬제자가 되었다.



.     

책쓰기 온라인 카페를 가입한 후 4시간 책쓰기 특강 공지가 보였다. 호기심에 신청을 했다. 특강일 SRT를 타러 기차역에 오전 8시쯤 도착했었다. 그런데 8시 정각 책인사에서 오후 책쓰기 특강을 안내하는 장문의 문자가 왔다.     


“많은 사람들이 저에게 묻습니다.

“어떻게 하면 행복해질 수 있나요?”    

행복해지기 위해서 우선, 자신이 앞으로 나아갈 때마다 방해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정확히 인지해야 합니다. 예전의 저를 돌이켜보면 항상 결단력이 부족했고, 보이지 않는 그릇의 뚜껑을 여는 것을 두려워했었습니다.     

결국 나를 불행하게 만들었던 것이 무엇인지 알고나서야, 지금 무엇을 해야하는 지 정확히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지금까지 진실이라 믿었던 내 믿음과 신념이 제한되어 있었고, 한계지어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여러분은 태초에 위대한 소명을 지니고 세상에 태어난 존재입니다. 

웅장하고 아름다운 나무가 무엇을 하지 않아도 주변에 기운을 나눠주듯이, 여러분이 가진 가치와 직감에 귀를 기울이고, 자신이 바라는 것들에만 집중해 보세요.     

그것만으로 엄청난 변화가 찾아옵니다. 인생의 대변화가 시작될 오늘 오후 1시, 책인사 4층 ‘초심’에서 벅차오르는 힘을 아낌없이 나누겠습니다. 살펴오시기 바랍니다.”    


책쓰기 특강을 들으러 오는 참석자들에게 보내는 공지 문자에 나를 기다리는 마음이 가득 느껴졌다. 누군가에게 환대받는 기분좋은 따뜻함이 밀려왔다. 얼굴도 모르는 나를 누군가 기대하며 설레임을 안고 기다리고 있다는 마음이 문자를 통해 전해졌다.     




특강을 참석하기 전부터 사소한 문자에 마음이 활짝 열렸다. 낯가림 있어 새로운 만남에 긴장되던 마음이 환대하는 문자를 통해 빗장이 열렸다. 시간 맞추어 책쓰기 특강에 오는 이들을 맞이하는 곳이라면 신뢰해도 좋겠다는 확신이 들었다. 출간할 출판사를 무한 신뢰하게 된 계기가 바로 얼굴을 마주하기 전 사소한 문자 한통이었음에 참, 인생은 사소함이 사소하지 않음을 배워간다.       


일상의 사소한 일이 우리를 괴롭게 하듯 사소한 일이 우리를 위로한다.     

사소함에 배려와 친절과 사랑을 담아 감동을 전달하는 봉준호 감독에게 박수를 보낸다. 나도 누군가에게 사소한 배려와 친절로 위로를 전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사소함을 나누다 보니 “역린”이라는 영화에서 여운을 주었던 마지막 메시지가 떠오른다.      

“작은 일도 무시하지 않고 최선을 다해야 한다. 

작은 일에도 최선을 다하면 정성스럽게 된다.

정성스럽게 되면 겉에 배어 나오고 겉에 배어나오면 

겉으로 드러나고 겉으로 그러나면 이내 밝아지고 

밝아지면 남을 감동시키고 남을 감동시키면

이내 변하게 되고 변하면 생육한다.    

그러니 오직 세상에서 정성을 다하는 사람만이 

나와 세상을 변하게 할 수 있는 것이다.”

- 사서삼경 중용 23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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