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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사라 Feb 16. 2021

당신의 집은 안녕하신가요?

《죽은 자의 집 청소》독서에세이 

행     복 

(나태주)    


저녁때 

돌아갈 집이 있다는 것     

힘들 때

마음속으로 생각할 사람 있다는 것     

외로울 때

혼자서 부를 노래 있다는 것 





나태주 시인이 정의하는 ‘행복’의 의미가 마음에 깊이 와닿았다. 파랑새처럼 멀리 있을 것 같은 행복은 매일 반복되는 평범한 일상 속에 깃들어 있다. 매일 일을 마치고 돌아갈 집이 있다는 것, 힘들지만 마음속으로 생각할 사람이 있다는 것, 외로울 때 혼자서 부를 노래가 떠오르는 것, 그 소소함이 바로 행복이다.  

   

어린 시절 부모님과 함께 살았던 집은 1층 구도로변 낡은 주택이었다. 집 밖으로 나가면 재래식 화장실이 있었다. 욕실을 대신하여 씻는 공간과 작은 옥상이 기억난다. 삼 남매였던 우리는 할머니와 작은방에서 생활했고, 부모님이 안방을 사용했다.     


연탄불을 갈아야 했던 수고로움이 있었다., 온수가 나오지 않아 연탄아궁이에 물을 끓여 씻었던 기억이 난다. 여름날 장맛비가 억수로 오던 날, 세차게 쏟아지는 빗물이 집안까지 차오르던 기억과 젖은 물건들을 햇빛 좋은 날 말리던 풍경이 파편처럼 떠오른다.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가족과 잠을 자고 생활했지만 그 시절 집은 나에게 home이 아니었다. 매일 전쟁이 끊이지 않는 house였다. 결혼 전까지 행복한 풍경이 한 장도 떠오르지 않는 슬픔과 불행이 가득한 house였다.     




집은 누구에게나 안식할 수 있는 home이 되어야 한다. 종일 집 밖에서 지치고 힘든 하루를 보냈을지라도 집에 돌아오면 회복과 충전이 저절로 되는 따뜻한 둥지 같은 공간이 home이다.


스물일곱에 결혼하고서야 집은 나에게 home이 되었다. 암 수술을 하고서 고장 난 시계가 된 듯한 기분이 들었을 때도 존재만으로 나를 여전히 사랑하고 필요로 하는 가족이 있는 공간, home의 의미를 더 절실히 깨닫게 되었다. 모든 것이 끝이 났구나 싶어 절망이 찾아왔을 때 그 절망까지 품어주며 따뜻한 온기를 나누어주는 가족이 있는 공간, 드디어 내가 살고 있는 집이 home이 되었다.      


결혼해 19년 동안 이사를 네 번 했다. 신혼 초 작은 아파트를 리모델링해 신혼생활을 했다. 아이를 키우면서 신축 아파트를 분양받아 살아봤다. 아이들이 어릴 때 좋은 집의 기준은 학교가 가깝고, 산책할 환경이 근거리에 있는 집이었다.         


홀로 숨을 거둔 고독사나 자살 현장을 청소하는 일을 하는 김완 작가는 대학에서 시를 전공했다. 출판과 트렌드 산업 분야에서 일하다 전업 작가로 살고자 삼십 대 산골 생활을 했다. 그 후 몇 년 동안 일본에 머물며 죽은 이가 남긴 자리를 수습하는 일에 관심을 두었다. 동일본 대지진을 겪은 후 귀국하여 특수 청소 서비스 회사 ‘하드 웍스’를 설립했다.     


누군가 홀로 죽으면 죽은 자의 집을 청소하는 김완 작가의 일이 시작되었다. 죽은 자의 흔적을 말끔히 지워내야 한다. 죽은 자의 유품을 처리하고 쓰레기 집을 깨끗이 비워내면서 죽음의 자리에는 쉽게 말할 수 없는 사정들이 남겨져 있었다.    


“죽음이 왔다 간 자리에 사연이 남아있다.”    




김완 작가는 죽은 자의 집을 청소하면서 인간 존재의 아이러니는 늘 죽음을 등에 지고 살아가는 것이며 삶과 죽음은 양면으로 된 동전과 같다고 이야기한다. 우리가 그동안 삶이라는 눈앞에 펼쳐진 방향에 몰두하느라 죽음이라는 등짝까지 살펴볼 기회를 얻지 못한 것에 대하여 성찰하게 한다.  


죽음을 돌아보고 그 의미를 되묻는 행위, 인간이 죽은 곳에서 더 선명하게 드러나는 삶과 존재에 대한 면밀한 진술은 오히려 항바이러스가 되어 비록 잠시 발열하지만 결국 우리 삶을 더 가치가 있고 굳세게 만드는 기전이 된다고 말한다. 누군가의 죽음으로 생계를 이어가는 직업적인 아이러니 속에서 자신의 기록이 그 역할을 하리라는 믿음, 자신에게 주어진 사회적 책무라는 자각이 작가로서 글쓰기를 멈추지 않도록 다독여 주었다고 고백한다. 


평범한 사람들이 할 수 없는 죽은 자의 집을 청소하는 일에서 찾은 즐거움을 작가는 작업이 끝난 후 ‘해방감’이라고 표현한다. 세상의 수많은 일 가운데 특수 청소를 인생의 직업으로 받아들이고 새로 시작한 가장 큰 동기이기도 했다.     


악취 풍기는 실내를 사람이 마음 놓고 숨 쉴 수 있는 원래의 공간으로 돌려놓을 때, 살림과 쓰레기로 발 디딜 틈 없는 공간을 완전히 비우고 아무것도 남지 않은 텅 빈 집으로 만들었을 때 김완 작가는 자유로움과 해방감을 느끼기에 특수 청소가 매력이 있다고 고백한다.    


그 해방감을 보람으로 느끼며 배설물로 가득하여 막혀있는 변기를 손으로 뚫기도 하고, 케이지에 쌓여있는 고양이들의 사체를 기꺼이 청소하기도 한다. 그의 당당하고 보람찬 고백에서 죽은 자의 집을 청소 일에 대한 소명이 느껴졌다. 참, 아름다웠다.    

우리가 터부시하고 두려워하는 죽음에 대한 인식이 일상적으로 받아들여지기를 원해서《죽은 자의 집 청소》를 집필했다고 김완 작가는 말한다. 우리 삶의 종착역이 죽음인 것을 잘 알아야 마음의 준비를 하고 인생을 더 잘살아갈 수 있으며 삶과 맞대고 있는 죽음에 대해 성찰하며 살아갈 때 삶도 뚜렷해지는 것이라고 전하고 싶은 메시지를 책에 담아 전한다.     




“당신이 하는 일처럼 내 일도 특별합니다.”    

작가의 고백처럼 모든 일은 특별하다. ‘나’는 이 지구 상에 단 한 사람뿐이니 이 귀중한 ‘나’가 하는 일도 당연히 특별하다. 직업에는 귀천이 없는 것이다.    


“세상에 단 한 사람뿐인 귀중한 사람이 

죽어서 그 자리를 치우는 일이거든요. 

한 사람이 두 번 죽지는 않기 때문에, 

오직 한 사람뿐인 그분에 대한 

내 서비스도 한 한 번 뿐입니다. 

정말 특별하고 고귀한 일 아닌가요?”     

《죽은 자의 집 청소》



나에게 가장 인상 깊게 여운이 남은 대목 하나.

자살한 영민 씨의 집을 청소하면서 작가가 그에게 쓴 뭉클한 편지글이었다.     


오늘은 오후 내내 당신의 

동생에 대해서 생각했습니다. 

이 집을 청소하면서 한 가지 

뚜렷하게 알게 된 것이 있다면 

당신에 대한 것이 아니라 당신을 

향한, 이곳에 남은 자들의 마음입니다.


 당신은 사랑받던 사람입니다. 

당신이 버리지 못한 신발 상자 

안에 남겨진 수많은 편지와 사연을 

그 증거로 제출합니다. 당신이 

머물던 집에 찾아와 굳이 당신의 

흔적을 보고 싶어 한 아버지와 

어머니, 홀로 서서 눈물을 흘리던 

당신의 동생을 증인으로 신청합니다.     

그들은 당신을 사랑했습니다. 


당신이 남긴 모든 것은 결국 

사라지고 지워질 테지만, 

당신이 남긴 사랑의 유산만은 

누구도 독점하지 못하고, 

또 다른 당신에게, 또 다른 

당신의 당신에게 끝없이 

전해질 것이라고 믿습니다. 

그들은 여전히 당신을 사랑합니다. 


부디 이 사실 하나만은 당신에게 

전달되길, 모자라고 부끄러운 글월을 부칩니다.    

당신이 머문 곳을 치운, 이름 없는 청소부 올림.”     




스스로 생을 마감한 대부분의 사람들이 선택한 장소도 역시 집이었다.   

혼자 죽음을 선택한 그들은 가족과 함께 하는 것이 아닌 혼자 거주했었다는 공통점을 지녔다. 그들에게 돌아올 집이 있다는 것이 행복이 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힘들지만 마음속으로 생각할 사람이 생각나지 않았고, 외롭지만 부를 노래 한 소절이 떠오르지 못할 때 그들은 결국 삶의 의미를 잃었다.     


집에 머물며 살았지만, 그들에게 집은 home이 아닌 house에 불과했다.  

그들에게 ‘집’이 가족과 함께 머무는 따뜻한 home이 되었더라면 어떠했을까?

.

.    

당신의 집은 안녕하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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