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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사라 May 09. 2021

세상에 홀로 빛나는 별은 없다

마음을 쓰다듬다 13

이준익 감독의 영화라면 무조건 믿고 보는 열렬팬이다.

〈사도〉, 〈동주〉, 〈박열〉 역사 속에서 감추어진 인물을 찾아내는 그의 독특한 시선을 사랑한다.    

〈사도〉에서는 영조 옆의 사도세자를, 〈동주〉에서는 윤동주 옆의 송몽규를, 〈박열〉에서는 박 열 옆의 후미코를 조명해 세상에 알려지지 않고 묻혀있는 역사 속 인물을 스크린으로 살려낸다. 〈자산어보〉에서도 감독은 정약용 옆의 정약전을 조명해 빛나는 보석처럼 발굴해 낸다.    


〈동주〉처럼 〈자산어보〉도 흑백으로 펼쳐지는데 산과 바다의 절경, 거친 흑산도 어민들의 삶이 그대로 담긴 포구의 풍경이 수묵화처럼 아름다웠다. 흑백이어서 오롯이 인물에게만 집중할 수 있어 좋았다.    


“한 시대에 위대한 인물이 있다면 그는 결코 혼자 존재하지 않는다. 
옆에는 그 못지않게 위대한 인물이 있다
(이준익 감독)


신유박해로 세상의 끝 흑산도에 유배된 정약전과 강진에 유배된 정약용 형제는 유배의 시련을 집필로 꽃피워낸다. 정약용이 목민심서를 비롯하여 수많은 저서를 집필하는 동안 정약전은 우리나라 최초의 해양생물 백과사전 《자산어보》를 평생 집필한다.     


“홍어 다니는 길은 홍어가 알고, 

가오리 다니는 길은 가오리가 압니다”   

  

물고기에 문외한이었던 정약전은 바다와 온갖 생물에 해박한 지식을 가진 창대의 말에 크게 감동한다. 평생 어부로 살아왔으나 글공부에 목마른 창대는 정약전에게 바다 생물의 지식을 나누어주며 《자산어보》의 축을 이루는 인물이 된다. 



    

어느날 창대가 왜 동생 정약용처럼 목민심서의 길을 걷지 않는지 묻는다. 천주교의 영향을 받은 정약전은 양반과 천민의 구분이 없는 평등한 세상을 꿈꾸기 때문이라고 대답한다. 유배지에서도 정약용은 방대한 저서와 많은 제자를 통해 존재함이 드러나는데 창대가 보기에 스승 정약전의 집필은 별로 의미가 없어 보였기 때문이다. 또한 창대는 과거에 급제하고 벼슬을 얻어 양반 신분으로 출세하는 입신양명을 꿈꾸고 있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정약전의 꿈과 창대의 꿈.

그들이 꿈꾸는 다른 두 세상 속에서 올바른 삶의 방식이 무엇인가?

이준익 감독은 영화를 통해 질문을 던진다. 


학자와 어부, 정약전과 창대는 서로 다른 분야의 전문가였다. 정약전은 창대의 바다 지식을 배우고, 창대는 정약전의 학문적 지식을 거래한다. 서로 신분도, 나이도 다르지만 둘은 서로에게 스승이 되고, 친구가 되어 가는 길에 빛이 된다. 서로 마음을 열고 서로의 새로움을 받아들이니 서로에게 새로운 세상이 열리게 된 것이다.      


“섬 안에 장덕순, 즉 창대라는 사람이 있었다. 성격이 조용하고 정밀하여 대체로 초목과 어조 가운데 들리는 것과 보이는 것을 모두 세밀하게 관찰하고 깊이 생각하여 그 성직을 이해하고 있었다. 이분을 맞아 함께 묵으면서 물고기의 연구를 계속했다.”   《자산어보》   

 

정약전은 《자산어보》의 저술에 창대의 도움이 절대적이었음을 서문에 소개한다. 놀랍게도 이 한 줄의 문장에서 이준익 감독은 ‘창대’라는 이름을 발견해 〈자산어보〉의 창대라는 인물을 만들어 냈다. 정약전이 영화 속에서 창대에게 ‘질문이 진짜 공부’라고 외치는 대사에서 이준익 감독의 철학이 느껴졌다.  



   

“창대”가 누구일까?

이준익 감독의 호기심이 어린 질문 하나를 통해 〈자산어보〉라는 영화의 인물과 이야기가 나오게 된 것이다. 감독은 역사 속에서 알려지지 않은 ‘정약전’이라는 정약용의 형제로 이름만 알려진 인물을 조명해 존재감을 드러내 준다. 더불어 《자산어보》의 서문에 이름만 적혀있던 창대라는 인물에도 숨결을 불어 넣어 그의 거침없는 순수한 매력을 세상에 보여준다.     


서로의 꿈을 위해 스승과 벗이 되어가는 과정에서 정약전은 창대의 세속적인 꿈에 실망하고, 창대는 출세의 꿈을 이루기 위해 스승을 떠나 나주로 간다. 홀로 남은 정약전은 유배지에서 매일 기침이 멎지 않은 병에 시달리면서도 세상을 떠날 때까지 《자산어보》 집필에 전념한다. 하루도 쉬지 않고 글쓰기를 해내는 정약전의 작가로서의 성실함에 뭉클한 감동의 물결이 잔잔히 밀려왔다.  결국 병이 치료되지 않아 정약전은 책상에 앉아 자산어보를 집필하다 마지막 숨을 거둔다. 작가됨이 무엇인지를 정약전의 일생과 운명하는 마지막 모습을 통해 도전받게 된다.     


정조의 죽음 뒤 정약용과 정약전 형제는 억울한 유배를 떠나게 되었다. 세상 끝이라 여겨지는 강진과 흑산도에서 여생을 보낼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도 그들은 바꿀 수 없는 환경과 상황을 원망하지 않고, 무엇을 할 수 있을까에 집중했다. 유배지에서 얼마든지 할 수 있는 집필과 제자 육성에 최선과 열정을 다한다.    




정약전의 곁을 떠나 학문으로 입신양명을 도전했던 창대는 스승 없이 감당해내는 여정 속에서 스승이 자신의 꿈을 꾸짖었던 이유에 대한 깨달음에 도달한다. 신분도 가치관도 너무 달랐지만 서로의 지식을 나누며 감화되는 과정에서 참된 지식이란 무엇인지 감독은 또 질문한다. 

    

참된 지식은 쌓고 자랑하기 위함이 아니라 나누기 위한 것임을 영화를 통해 가르쳐 준다. 정약전은 높은 지식을 쌓아 벼슬에 올랐었지만, 출세를 위한 지식의 헛됨을 경험하고 유배를 왔다. 어부들의 실용서를 집필하며 사람보다 사물을 연구하는 학자와 작가가 되었다. 바다 생물에 문외한이었던 정약전은 끝없는 호기심으로 창대에게 질문을 던지며 메모하고 물고기 배를 갈라 해부를 하면서 바다 생물을 배우며 어류도감을 완성해 간다. 정약용이 수많은 저서와 제자들을 배출할 때 정약전은 자산어보 한 권과 제자 창대 한 명을 배출한다.     


정약전의 제자 창대를 향한 깊은 애정이 영화에서 강물처럼 흐른다. 그의 학문에 대한 배고픔을 자신의 학식으로 가르쳐 채워주고, 창대의 지식을 동네 아이들에게 가르쳐 나누도록 서당을 마련해 준다. 제자이지만 창대를 스승으로 삼아 자산어보를 완성하며 서문에 창대의 이름을 기념해 창대 덕분이라고 정약전은 제자에게 공을 돌린다.     


흑백이라서 지루할 수 있는 2시간을 이준익 감독의 폭소를 터트리게 하는 유머 지뢰들로 지루함 없이 관람할 수 있어 좋았다. 스승과 제자의 좋은 만남이 초라하고 보잘것없는 인생을 어떻게 열어주고 빛나게 할 수 있는지를 이준익 감독은 설경구와 변요한 배우의 연기를 통해 영상으로 전한다.  

   

사도와 동주와 박열의 영화 후 오랫동안 따뜻한 여운이 남았던 것처럼 자산어보에 대한 따뜻한 여운이 오랫동안 남았다. 정약전의 글쓰기 열정이 정체되었던 나의 글쓰기에 다시 시동을 걸어준다. 



“작가란 무엇인가? 

작가란 매일 글을 쓰는 사람이며, 자신의 지식을 세상에 나누는 기버이다.    

작가 됨은 무엇인가?

작가 됨은 하루에 글쓰기를 가장 중요한 업무로 삼는 것이며, 글쓰기를 멈추지 않는 것이다.     

작가의 일생은 어떠해야 하는가?

작가는 새로움에 대한 열린 마음으로 배움을 통해 전진하고 성장하는 글쓰기를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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