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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정 Feb 16. 2020

글을 쓴 이유

위로가 되었으면

 나는 열심히 살았던 것 같다. 나는 원래 타고나길 재미없고 규칙을 못 어기는 그런 태생의 사람이라서 학교 다닐 때부터 교복 한 번 줄이지 않고, 야자 땡땡이 한 번 안치고 그렇게 살았다. 대학교를 다닐 때에도 아르바이트를 한 번도 쉬지 않고 했지만 그 와중에 복수전공까지 해가며 나름 열심히 학교를 다녔다. 항상 최고로 잘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성실히 살았던 것 같았는데, 결과는 그렇게 만족스럽지는 못했다.

 대학교도 재수했고 취업준비도 2년이나 하는 바람에 남들이 시험을 합격하는 나이에 나는 시험공부를 시작했다.  시험공부도 언제나 그랬듯 열심히 했다. 뭐 합격수기에 나오는 어떤 대단한 사람처럼 '쉬지 않고 10시간을 공부했어요.' 이 정도의 최고 열심히는 아니었지만, 나는 그래도 꾸준히 열심히 했다. 그리고 열심히 더 잘하려고 노력했다. 그런데 너무 많은 원하지 않는 일들이 생겼다.


 더 열심히 하고 싶어서 원했던 여러 가지 방법들이 내게는 허락되지 않았다. 나는 노량진에 갈 수도 없었고, 독서실 조차 쉽지 않았다. (노량진에 간다고 합격하는 것은 아니지만, 당시 더 열심히 하고 싶었던 내게 그런 사소한 장애들은 나의 의지를 꺾어버리곤 했다. ) 게다가 오래 만났던 남자 친구가 먼저 합격하고는 마음이 돌아섰다. (그 사람은 합격해서 그런 것은 아니라고 이야기하겠지만 어쨌든 결과는 그랬다.) 그리고 그즈음에 사람들의 다른 얼굴들도 많이 보게 되었다. 그리고 시험은 자꾸만 미끄러졌다. 한 문제로 떨어지고, 마킹 실수를 해서 떨어지고, 시험을 보러 가다 휴대폰을 잃어버리고, 간신히 면접까지 갔더니 면접에서 탈락했다.


 친구들은 이미 취업하여 승진하고 있었고, 또 어떤 친구는 결혼하여 벌써 아이가 둘이었다. 모두들 앞으로 나아가고 있는데 나만 멈춰져 있었다. 심지어 내가 저 친구들보다 덜 열심히 살았던 것도 아니라고 생각이 들었다. 나이는 먹었지만 나는 취업도 하지 못했고, 오래 만났던 남자 친구는 아무렇게 지 않게 나의 어려움을 외면했다. 시험공부도 열심히 하는 것 같은데 합격은 도무지 되지 않았다. 매일매일 불안했던 날들이었다. 평생 이렇게 나는 취업도 하지 못하고 공부만 하다 늙어 죽는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런 불안함에 난생처음 불면증도 겪었다. 잠을 자지 못하는 밤이 그렇게 끔찍하다는 것을 그때 처음 알았다. 불안함으로 식욕도 잃고 한 달 사이에 살이 5kg 나 빠졌다. (원래 나의 체중은 50kg가 안되기에, 한 달 사이에 5kg 빠진다면 꽤 많은 체중감소였다. )


 그렇게 불안했던 그때 합격수기를 읽어보면 모두 대단한 사람들만 합격하는 것 같았다. 모두 단기간에 합격하고, 고득점으로 합격한 사람들. 어린 나이에 시작해서 대학교를 졸업하기도 전에 합격한 사람들. 이미 장수생이 되어버린 내게 이미 이십 대 후반이 되어버린 내게 그 수기들은 위로의 글이 아닌 아닌 좌절감만 주는 그런 글들이었다. 그 합격수기들은 '이렇게 하면 나도 합격할 수 있어'가 아닌 '난 합격할 수 없는 사람'이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나 같은 사람도 결국 합격했다는 것이 누군가에게 위로가 되었으면 좋겠다. 고작 9급 시험을 4년이나 준비했고, 1점 차이로 탈락 , 마킹 실수로 탈락, 면접 불합격, 하다 못해 시험 보러 가다 휴대폰을 잃어버리는 일까지.  이렇게 다사다난한 방법으로도 합격 한 사람이 있다는 것.  이미 장수생이 되어버린 사람이든, 나와 같은 사소한 불행으로 자꾸 시험을 미끄러져 좌절한 사람이든, 꼭 공무원 시험이 아니라도 무엇이든 '때'가 있으니 조금만 마음 편히 가졌으면, 그래서 이 글이 위로가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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