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비신부에게 생활치료소 근무라니
공포와 분노의 D-60
코로나 상황이 심각해졌다 나아졌다를 반복하고 있었다. 2020년 봄과 여름 사이에 우리가 사실 웨딩홀 계약을 할 때만 해도 우리가 결혼하는 2021년에는 코로나가 나아져있을 줄 알았다. 우리는 해외로 신혼여행을 갈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들떠하며 결혼할 날짜를 정했다. 하지만 상황은 나아지지 않아다. 오히려 악화되었다.
그 사이에 단계가 올라가 50명도 결혼식에 초대할 수 없는 기간도 생겨버렸다. 이제 해외여행은커녕 오로지 결혼식날 그 최고 단계가 안되길 비는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코로나와 관련하여 단순히 신혼여행을 해외로 갈 수 있냐 없냐, 결혼식에 몇 명을 초대할 수 있냐 없냐의 염려만 있었던 것이 아니었다. 우리의 직업 때문에 매일 회사의 업무가 과중되었고 그 와중에 나는 한창 결혼 준비로 바쁜 결혼식 두 달 전 생활 치료소 근무자로 차출되었다.
나말고는 갈 사람이 없었다. 왜냐면 차출 인원이 너무 많았기 때문. 15명도 안 되는 작은 규모의 우리 과에서만 3명이 가야 했다. 현안업무로 절대 빠질 수 없는 사람, 이미 생활 치료소 근무를 다녀온 사람, 다른 코로나 관련 업무를 이미 하고 있는 사람, 그리고 육아로 갈 수 없다는 사람 (육아는 배려의 대상이 되지만 안타깝게도 결혼 준비는 배려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 ) 그래서 결국 나와 다른 팀원 두 명이 가기로 결정되었고, 그렇게 나는 4월 첫째 주 일주일을 그곳에서 근무했다.
그곳에서의 근무가 나의 '결혼'에 영향을 미치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였다.
1. 밤샘근무로 인해 사라진 일주일 : 생활 치료소는 24시간 운영되기 때문에 2교대 근무로 운영되었다. 아침 8시에 출근해서 저녁 9시까지 근무를 하고, 그다음 날 저녁 8시에 출근하여 다음날 아침 9시에 퇴근하는 그런 시스템이었다. 우선 일주일 동안 밤샘근무를 해야 한다는 사실이 너무 힘들었고. (당시 식 한 달을 두 달을 남겨두고 다른 신부들은 마사지다 관리다 하는 와중에 나는 업무가 너무 바빠 마사지 조차 꿈꾸지 못하고 있었는데, 무려 일주일간 2교대로 불규칙한 밤샘근무를 하게 된 것.... ) 당시 청첩장, 신혼집 이사 등 이것저것 준비하고 신경 쓸 것이 너무 많은데 하루에 13시간씩 낮 근무 그리고 야간 근무 후 집에 와서 잠을 잔 후 다시 출근하는 일정은 근무 외에는 개인적인 일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스케줄이 되었다. 생활 치료소 근무 동안 나의 일주일은 그냥 사라진 기분이었다. 심지어 월화수목금 정상적인 근무를 하고 토요일부터 생활 치료소 근무를 시작했기 때문에 갑자기 바뀐 2교대 근무 리듬에 맞추는 것은 더 어려웠다.
2. 코로나.. 무섭다. : 생활 치료소 관리자 말로는 행정업무를 보는 곳이라 확진자들과 접촉할 위험은 없다고 했다. 하지만 같은 건물에서 확진자와 24시간 함께 지낸다는데, 불안하지 않을 수 없었다. 또 접촉하지 않으니 안전하다고 말은 그렇게 하면서 생활 치료소 가기 전에 코로나 검사를 받고, 다녀온 후에도 반드시 코로나 검사를 받아야 했다. 또한 그러면서 퇴근 후 집으로 가라니... 우리 가족은... 내가 코로나를 옮겨도 된다는 것인가?? 다행히 하는 당시 빈 신혼집이 있었기 때문에 빈 신혼집에 들어가 혼자 생활하며 생활 치료소 근무를 했는데, 이것은 정말 나의 예외적인 경우라고 생각한다.
당시에 백신이 막 접종되었던 시기였던 것 같은데, 의료진은 백신 접종 우선 대상이었지만 우리는 백신 접종 대상이 아니었다. 같은 사무실에 근무하는 의료진은 모두 백신을 접종해주면서, 같은 업무를 하는데 공무원이라는 이유로 백신을 맞지 못한다니...(그곳의 의료진도 우리와 비슷한 행정업무를 보고 있었다).
나는 코로나로 '죽을까 봐' 무서웠던 것보다는 혹시나 '코로나'에 걸려서 내가 내 결혼식장에 못 가는 것이 아닌지 , 결혼 준비를 하면 사람들을 이런저런 이유로 많이 만나게 되는데, 혹시나 내가 타인에게 피해를 입히게 되는 것은 아닌지 그게 너무 두려웠다. 당장 생활 치료소 끝난 직후 본식 드레스도 고르러 가고, 상련례도 앞두고 있었는데, 혹시나 만에 하나 내가 걸렸고 몰라서 누군가에게 옮기기라도 한다면??
일주일 근무하고 내가 받은 수당은 15만 원 전후였던 것 같다(1일 15만 원 아니라 근무기간 총 합쳐서 원래 받던 급여 이외에 생활 치료소 근무로 인해 추가로 받은 수당을 의미합니다. ). 하루 4시간의 초과근무비(시급 8700원)와 일 8천 원의 위험수당. 같은 곳에 일했던 의료진의 급여를 들으며, 내 인생에서 한번뿐인 결혼 준비조차 제대로 못하고, 공포에 떨며 1주일을 보냈는데, 내 인생에서 이것에 대한 대가가 고작 이 정도라니, 매우 무시당하고 도구화되는 느낌이 들어 씁쓸했다.
당시 아침 출근 중 집 앞 과일과 게에서 선물로 받은 오렌지 그래도 이 오렌지 덕분에 하루 기분 좋았다!!
다행히도 나는 코로나 음성이었고, 며칠 후 컨디션 회복을 할 수 있었지만 (생활치료소 근무 후 바로 숙직 당첨이라 거의 7일이상을 내리 밤을 샜다 ㅎㅎ) 어쨋든 당시에 생활치료소 근무는 보람도 없고 그저 공포와불편함의 시간으로 기억에 남는다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