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자체보다는 이름이 만들어진 목적이 싫었어.
결국 30년이 넘도록 개명하지 못하고 그냥 살고 있지만, 나는 어릴 적 내 이름을 썩 좋아하지 않았다. 그 이유는 바로 '남자 이름'이라는 생각이 강하게 드는 이름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걸스카우트를 했던 초등학교 때 이름은 보이스카우트 명단에 들어가 있었고, 대학교 때 했던 봉사활동 과외에서도 학부모님이 내 이름만 듣고 '남자 선생님'이 오기를 기대했다고 하셨다.
내가 초등학교를 다녔던 그때와 달리 지금의 시대에는 딱히 여자 이름 남자 이름 구분이 없고, 여러 가지 의도로 일부로 '중성적인' 이름을 짓는 부모들도 많이 있어 요즘 세대에 내가 태어났다면 큰 문제가 되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남자 같은 '나의 이름은 어린 시절 내내 내 콤플렉스였으며 신경 쓰이는 부분이었다. 이름만 듣고 남자인 줄 알았다. 이 말은 어른이 돼서 회사를 다니는 요즘도 종종 듣는 말이다.
내가 내 이름에 특히 더 아쉬움을 같은 것은 이 이름이 단순히 '예쁘지 않은 이름', '남자 같은 이름' 이라서가 아니었다. 더 안 이쁘고 더 남성적인 이름이었다 하더라도, 그 이름을 지어준 의도가 오로지 나를 위한 좋은 의도였다면 나도 이름을 그렇게 싫어하지 않았을지 모른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내 이름은 '나'를 위해 지어진 게 아니었다. 내게 이런 이름을 지어준 의도는 '남동생'을 보기 위함이었다. 첫딸에 아쉬움을 가지셨던 친할아버지께서 다음번 동생은 꼭 '남자 동생'을 보라는 의미로 지인께 부탁해서 지어주신 이름이 바로 지금 나의 이름이다. (그때는 딸의 이름을 남자 이름으로 지으면 남동생이 생긴다는 미신이 있었나 보다.)
나는 태어나자마자 '딸'이라는 이유로 가족들에게 아쉬움을 주었으며, 나의 첫 정체성인 이름은 '남동생'을 보기 위한 도구가 되었다.
나이를 먹으며 여러 가지 이유로 더 이상 개명이라는 귀찮음을 감수할 정도로 이름을 싫어하지는 않지만, 가끔 장을 보고 엄마의 마일리지로 적립하며 엄마의 이름으로 불릴 때 (엄마는 예쁜 이름으로 요 근래 개명을 했다). 오로지 예쁜 이름으로 불리는 것 만으로 이렇게 기분 좋은 일이구나를 느끼며 새삼 씁쓸한 아쉬움을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