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만저만 Apr 12. 2024

유감스러운 것들

나는 누구인가

 평소보다 빠른 퇴근길. 걸어가며 아버지께 전화를 했다. 지난 설날 아버지의 간밤 몸살 때문에 차례를 지내지 않았다. 다행히 아침에 괜찮다고 하셔 세배드리고 떡국 먹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러곤 몸은 좀 어떠시냐는 문안 전화도 없이 또 2주가 지났다. 어머니는 집에 계신지, 몸은 좀 어떠신지, 식사는 잘하시는지, 평소와 같이 용무만 간단히. 그리고 걸음을 재촉했다.


 평소와 다른 퇴근 이유는 장모님의 허리 때문이다. 대학병원에서 검사를 받았는데, 골괴사라는 진단을 받았다. 사과를 택배로 보내드렸는데 그걸 살짝 밀다가 삐끗하셨다고 다. 그 후로 허리가 낫지 않아 대학병원에 가게 된 것이다. 진단명의 무거움 함께 허리디스크 수술을 했던 아내의 허리 보호대를 가지고 장모님 댁으로 갔다.


 큰아이는 아침에 잘 일어나지 못한다. 매일 아침이 전쟁이다. 아내와 전우애를 발휘해 참전한다면, 아이와 긴 냉전시대가 올 수 있기 때문에 나는 참전하지 않는다. 아마 나도 학창 시절 아침에  일어나지 못했다. 아니, 30대 초반까지 아침잠을 이겨내지 못한 것 같다. 20대 이후는 단순히 잠뿐만 아니라 몸에 맞지 않는 술의 영향도 있었으리라. 지금은 누가 깨우지 않아도 아침에 눈이 떠진다. 나이 드는 게 가끔은 유감스럽다. 좋은 것만 닮아도 부족한데. 이것도 유감이다.


 둘째는 다행히 나를 닮지 않아서 인지 아침에 잘 일어난다. 이제 초등학교 6학년인데 아내의 키보다 크다. 쑥쑥 크는 키 때문에 1년 정도 성장억제 주사를 맞기도 했다. 학원 숙제 때문에 방학이거나 학기 중이건 나보다 더 바쁘다. 가끔 주말에 도서관이나 카페에 가서 공부하자고 해보지만, 조금 고민하는 척하고 싫다고 하는 때가 많아진 것 같다. 중학생이 돼서야 했던 영어의 abc와 수학을 요즘은 초등학교나 유치원부터 시작한다. 이것도 유감이다.


 대학동기 아버님의 부고를 알리는 문자가 왔다. 고인의 명복을 빈다는 말과 저녁에 만나자는 말로 오랜만에 대화창이 분주하다. 나는 참석하지 않고 조의금만 보냈다. 회사에서도 업무에 필요한 대화만 한다. 요즘 스스로 고립시키는 것 같다. 글쓰기 선생님의 '외로움과 고독은 창작의 원동력'이라는 말씀을 빌려 핑계 삼아 본다. 요즘 이유와 대상을 알 수 없는 화가 쌓이는 것 같다. 무대의 구석에서 불평하며 고집스럽게 서있지 말고 서서히 내려갈 마음의 준비를 해야겠다. 역시 유감스럽지만 정신건강에 좋을 것 같다.


 '라떼는 말이야'라는 시쳇말을 생각해 본다. 스스로 잘 쓰는 표현은 아니지만, 내가 젊었을 때는 어려운 환경에서도 불평하지 않고 열심히 일을 했다는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실제 의미는 그 뜻이 아니다. 그때와 지금은 다르다 그러니 그런 말이 통하지 않으니 조용히 하라는 것이다. 과거로부터 배울 것이 없다는 의미는 아니겠으나, 과학과 사회 발전 속도가 너무 빨라 5년만 지나도 모든 게 바뀐다. 쫓아가기 버겁다. 유감이 아닐 수 없다.


 빠르게 변하는 사회 속에서 느리지만 나도 조금씩 변한다. 그것들이 조금씩 쌓여 어느 날 아침 눈을 떠보니 지금의 내가 되어 있는 느낌이다. 20대에 나의 꿈은 무엇이었던가. 30대와 40대에는 결혼하고 열심히 직장을 다니다 보니 시간이 쏜 살과 같이 지나갔다. 학창 시절 나는 어떤 것을 잘하는 아이였을까. 유년시절 기억들은 점점 희미해져 기억 속에서 사라지고 있다. 개인적으로 기억이라는 능력 부족과 부정되는 과거의 '라떼'들로 현재의 나를 설명하기가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정말 유감스럽게도 내가 누구인지를 현재의 내 주변 사람들과 일어나는 일들로부터 생각해 볼 수밖에.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