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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만저만 Apr 14. 2024

여행의 맛

음식

 벌써 5년이 지났나? 입사 후 6년째가 되던 해, 5년마다 리프레시 휴가 제도가 생겼다. 나는 10년을 다 채우고 시행 초기 한 달이던 휴가를 줄어든 2주로 다녀왔다. 코로나가 한창이던 때라 해외나 국내여행을 다니기 쉽지 않았다. 아내는 2살짜리 몰티즈인 개린이를 혼자 두거나, 다른 사람에게 맡기고 휴가를 갈 수 없다고 했다. 자신은 평소 아이들과 계속 붙어있느니, 이번엔 당신이 아이들을 데리고 가라고 한다. 결국 방학이 끝나기 직전 부랴부랴 혼자서 아이들을 데리고 여행을 떠났다.


 아이들과 급하게 정한 여행의 얼개는 다음과 같다. 기간은 4박 5일이며 전주에서 한복 체험하기, 통영에서 루지타기, 부산 여행하기 그리고 포항에서  <동백꽃 필 무렵> 촬영지 둘러보기였다. 나의 역할은 운전기사 및 아이들의 매니저였다. 그 매니저 역할에 나를 위한 여행 목표를 추가하였다. 당시 즐겨보던 <생활의 달인> 등 텔레비전에 나온 지역의 맛집을 방문하는 것이다. 그렇게 첫 여행지인 전주의 숙박 장소만 정하고 출발하였다.


 전주 가는 길을 둘러서 첫 맛집 '문정식당'에 들렀다. 당시 86세의 할아버지가 요리하는 중화요릿집이다. 텔레비전을 볼 때 할아버지가 무거운 조리기구로 어떻게 요리를 할까 걱정이 될 정도였다. 그 집의 대표메뉴인 볶음밥과 짬뽕을 주문했다. 차로 달려온 시간과 거리만큼의 기대 때문인지, 눈이 번쩍 뜨일 맛은 아니었다. 하지만, 아이들은 맛있다며 좋아했다. 3명 중 2명의 평가가 맛이 있다니 일단 출발은 좋았다.


 오후 늦게 전주에 도착하여 전주한옥마을을 둘러보며 거리에서 파는 간식거리를 사 숙소인 한옥집에서 저녁을 해결하였다. 특히 오징어 반마리를 통째로 튀겨 꼬치에 끼워 양념을 뿌린 '오짱'이 맛있었다. 다음날 아이들은 한복으로 갈아입고 한옥마을 거리와 전주경기전을 다니며 사진을 찍었다. 아이들 외투를 안고서, 한복을 입고 새침한 포즈를 취하는 모습과 빙글빙글 돌고, 폴짝폴짝 뛰는 역동적인 동작들을 카메라에 담느라 정신이 없었다. 지금도 그때 찍은 사진들 중에 드물게 내가 등장한 사진을 보면 마치 두 아씨를 모시는 하인처럼 보인다. 다음날 '현대옥' 본점에서 콩나물 국밥을 먹었다. 이때 음식을 나르던 로봇을 보고 아이들과 신기해했던 기억이 난다.


 거제도로 가는 길에 통영에 들러 루지를 탔다. 초등학교 3학년이었던 둘째는 체격에 비해 아귀 힘이 약했다. 너무 재미있는데 이 아파 더 못 타겠다며 울기 직전이었다. 더 타고 싶은 간절한 마음을 담아, 나이 제한 때문에 안 된다는 안전요원에게 상황을 설명했다. 그렇게 아이와 함께 2인용으로 두 번 더 타고 주어진 횟수를 모두 채웠다. 그리고 케이블카를 탔고 달아공원에서 일몰을 봤다. 다음날 거제도에서는 몽돌해수욕장, 바람의 언덕 등의 여행지를 둘러보았다. 통영과 거제에서는 텔레비전에 나오는 맛집은 찾지 못했고, 지역 명물인 '오미사꿀빵'을 사고 식당에서 생선구이 정식을 먹었다. 그리고 부산으로 이동하였다.


 도착한 저녁 호텔 주변 번화가 거리에서 탤런트 이승기가 먹었다는 씨앗호떡과 납작 만두, 물떡 등으로 저녁을 해결했다. 부산은 대도시답게 텔레비전에 나온 맛집이 많았다. 그중에 밀면과 돼지국밥을 먹었다. 밀면을 먹기 위해 '시민냉면'이라는 음식점으로 찾아갔으나 쉬는 날이었는지 휴가였는지 영업을 하지 않았다. 인터넷 검색으로 평이 괜찮은 곳으로 갔다. 나는 나쁘지 않았다. 아이들은 맛있다는 평이었다. 돼지국밥도 휴대폰 검색으로 '해운대 오복돼지국밥'으로 갔다. 나와 아이들 모두 나쁘지 않다였다.


 마지막 여행지에서 순조로웠던 나의 맛집 방문에 문제가 발생했다. 포항의 맛집 방문 예정지는 구룡포 해풍으로 말린 면을 이용하는 '할매국수'와 70년 전통의 구룡포 찐빵을 파는 '철규분식'이었다. '할매국수'는 구룡포항에 즐비한 대게집들을 지나 시장골목으로 들어가야 한다. 지도를 보면서 겨우 찾았다. 잔치국수와 김밥을 시켰다. 기대하며 한입 먹은 후, 아이들 표정을 보니 좋지 않았다. 동네 분식집에서 먹는 잔치국수 맛보다 못한 것 같았다. 배고픈 아이들을 이끌고 힘들게 찾아왔는데. 대게를 찔 때 나오는 김을 한껏 내뿜으며 유혹하는 가게들을 헤치고 조금만 더 가면 된다고 데리고 왔는데. 여행에서 돌아온 아이들이 엄마에게 일렀다. 아빠가 국수가게에 간다고, 대게뿐만 아니라 대게빵도 안 사줬다고. 멀리 여행까지 가 국수를 사 먹여야겠냐고, 아이들에게 대게빵도 안 사주고 국수만 먹였다고 아내에게 한소리 들었다.


 이 여행을 시작으로 가끔 아이들과 여행을 다니고 있다. 결국 지난번 주문진 여행에서 대게를 배불리 먹였다. 아이들은 맛있다고 했지만, 나는 고급 맛살과 무슨 차이가 있냐고, 좀 느끼하고 손에 비린내도 많이 난다며 뒤끝을 남겼다. 나는 미각이 뛰어나지 않기 때문에 어떤 음식이 정말 맛있다고 얘기하지 못하겠다. 다만, 그 음식으로 그때를 떠올리며 잠시 미소 지을 수 있다면 그게 정말 맛있는 음식이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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