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향이 곧 경쟁력
2026년이 시작되면서 AI의 발전 속도가 정말 빨라졌다고 체감된다. 최근에는 Open claw를 써보면서 "와, 이제 정말 AGI 시대에 가까워졌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동시에 이런 생각도 했다. 사람이 직접 할 수 있는 일이 정말 많지 않아 지겠다고. 그래서 이번에 일요 글쓰기 모임에서 추천받은 주제를 통해, 나 자신에게 질문을 던져봤다. AI 시대에 나는 어떻게 경쟁력을 갖고, 성장하고, 살아남을 수 있을까?
조수용 님의 인터뷰에서 '자기다움'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면서, 나다움이 뭔지 한번 정리해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에는 내가 많이 쓰는 생성형 AI들한테 나에 대해 표현해 보라고 했다. 클로드, GPT, 제미나이에게 그동안 내가 질문했던 것들과 줬던 내용을 기반으로 나를 묘사해 보라고 한 거다. 물론 그들이 표현한 내용이 최근의 나를 어느 정도 반영하고 있긴 했다. 하지만 뭔가 부족했다. 조수용 님이 말한 것처럼, "아, 이 사람 좀 괜찮네"라고 느끼는 그 지점이 뭔지. 거기에 더 집중해서 생각해 보면 좋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분명 그 지점에서 나다운 모습을 발견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그래서 스스로 돌아봤다. 내가 나를 보면서 "이 친구 괜찮네"라고 느끼는 순간들이 언제인지.
나는 다음에는 어떻게 더 잘할까, 지금보다 어떻게 성장할까, 어떻게 하면 좀 새롭게 해 볼까를 계속 고민한다. 어떨 때는 운동에서의 성장이고, 어떨 때는 일에서의 성장이고, 어떨 때는 인간으로서의 성장이다. 그걸 위해 노력하는 순간순간들이 나도 사실 힘들고 너무 어렵다. 하지만 그 과정에 있는 나 자신이 나는 굉장히 좋다. 그렇게 노력하는 나 자체를 보면서 "이 친구 괜찮네"라는 생각이 드는 것 같다.
그래서 이런 나의 모습 때문에 발견되는 취향들이 있다. 나는 성장 스토리를 좋아한다. 일종의 성장스토리 덕후다. 나는 어렸을 때 동네 만화방에서 만화책을 거의 다 볼 정도로 만화를 좋아했는데, 그중에서도 유독 좋아했던 건 주인공이 성장하는 스토리들이었다. 드래곤볼, 원피스, 나루토, 베가본드 등등 장르는 다 달랐지만 공통점은 하나였다. 누군가가 한 단계씩 성장해 나가는 이야기. 게임도 그래서 RPG를 유독 좋아했다.
나는 스타트업 덕후이기도 하다. 다양한 스타트업들이 어떻게 성장해 왔는지, 어떤 어려움을 어떻게 이겨냈는지, 성장할 수 있었던 원동력이 뭔지, 실패했다면 왜 그랬는지. 이런 것들을 들여다보는 게 나는 즐겁다. 나는 운동해서 오늘은 근육이 좀 생긴 것 같다 싶을 때 뿌듯하고 즐거운 그런 사람이다. 돌아보면, 나는 성장하는 감각을 느끼는 걸 좋아하는 것 같다.
뭔가를 새롭게 알기 위해 노력하는 나 자신을 볼 때 괜찮다는 생각이 든다. 모르는 걸 알기 위해 전문가를 찾아가고, 고객을 만나고, 삽질하고 시행착오를 겪는 그 과정이 되게 어렵고 힘든 때도 있다. 근데 그러면서 뭔가를 찾아가고 알게 되는 그 순간을 나는 좋아한다. 성장이랑도 연결되긴 하는데.. 그냥 새로운 걸 알게 된 것 자체를 좋아하는 것 같다.
예를 들면, 배달시킬 때도 그렇다. 어떤 사람은 늘 먹던 걸 시키겠지만, 나는 항상 "이번에 새로 나온 치킨 브랜드 한번 먹어볼까?", "이 햄버거 브랜드 처음 보는데 시켜볼까?" 이런다. 먹는 것조차도 새로운 걸 시도하고 그래서 어딘 맛있는지 알게 되면 좋다. 운동도 축구를 오래 하다가 서핑을 배워보고, 어느 날은 스킨스쿠버를 해보고, 테니스를 배우고, 러닝을 하고, 크로스핏을 하고. 주로 하는 운동도 계속 바뀌는데, 그 과정에서 "아, 이 운동은 이런 원리구나, 내 몸을 이렇게 써야 하는구나"를 느낄 때 즐겁다.
요즘은 AI도 마찬가지다. 커서를 이렇게 써보니까, 클로드 코드를 이렇게 써보니까, 오픈 클로를 이렇게 활용해 봐야겠네. 이런 것들을 하나하나 시도해 나가는 과정이 나는 재미있다. 이건 뭐 덕후라면 새로움에 대한 덕후가 아닐까. 호기심을 바탕으로 실행하는 사람, 그게 나라는 사람인 것 같다.
나는 기본적으로 굉장히 감정적이고 이기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당연히 내가 편하고 좋은 방식은, 내 멋대로 생각하고 빨리 결정해 버리고, 내가 맞다고 우기는 거다. 그게 내 입장에선 편하고 좋을 수 있다. 하지만 나는 그렇게 하지 않으려고 굉장히 의도적으로 노력한다. 그리고 그런 나 자신을 볼 때 ‘이 친구 성격은 더럽지만 그래도 괜찮네’라고 생각한다.
그 노력의 핵심은 질문을 던지는 거다. 상대방은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 우리의 공동 목적이 무엇인지, 내가 놓치고 있는 게 뭔지. 나 혼자 생각하고 판단하고 규정짓는 게 아니라, 내가 마주하는 사람들, 상황들, 일들에 대해서 계속 질문을 던지려고 한다. 그 과정을 통해서 사람에 대해 이해하게 되고, 몰랐던 부분을 더 잘 알게 되고, 나만의 관점들이 조금씩 생긴다. 그게 나는 즐겁다.
이렇게 된 데는 이유가 있다. 사실 나도 사람들한테 많은 상처를 주는 사람이었다. 그러면서 동시에 나도 상처를 받았다. 상처를 주는 내 모습을 보면서 "나는 사실 그런 의도가 아니고 싶었는데…"라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됐다. 거기에 여러 번의 번아웃과 정신적으로 힘든 시간들을 거치면서, 자연스럽게 성숙함은 어떤 모습일지 고민 하게 됐다. 당시 내가 나에게 했던 질문들은 나는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가? 나는 사람들과, 이 세상과 어떻게 소통해야 할까? 이런 질문들이었다.
그래서 심리상담도 받아보고, 코칭도 받아보고, 관련된 책들도 차곡차곡 많이 읽었다. 그러면서 점차 나한테서 의도적으로 성숙함을 장착하려는 모습들이 쌓여간 것 같다. 내가 편하고 나한테 쉬운 방식이 아니라, 좀 불편하더라도 상대방 입장에서 더 나은 방식으로 행동하려고 하는 것. 아주 힘들고 여전히 어렵지만 그 과정을 잘 지나갔을 때, 내 의도가 잘 전달됐을 때, 굉장히 큰 기쁨을 얻었던 것 같다.
그렇다면 이런 나다움이 AI 시대에 어떻게 쓰일 수 있을까? 취향이라는 걸 어떻게 잘 활용할 수 있을까도 고민을 해봤다.
결국 AI가 주된 일하는 방식이 되는 시대에서, 나만의 경쟁력은 내 머릿속에만 저장되어 있는 나만의 기억, 나만의 감각, 나만의 취향, 나만의 본능적인 판단과 결정들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디자인으로 보면 내가 좋아하는 로고, 내가 좋아하는 브랜드, 내가 좋아하는 물건 같은 것들이 취향이 되겠지만, 스타트업 창업이나 콘텐츠 제작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내가 좋아하는 스토리, 내가 관심 있어하는 분야나 지식들, 호기심을 갖고 새롭게 배워온 것들, 성숙해지기 위해 읽었던 책들. 이런 것들도 나만의 취향이자 경쟁력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 취향이라는 건 뭔가를 만들어내는 게 아니라, 나를 들여다보면서 발견하는 게 아닐까? 다른 사람에게서 "아, 이 사람은 이런 걸 잘하는구나, 이런 취향이 있구나"라고 우리가 발견하게 되는 것처럼, 나 자신한테 그걸 찾고 인정하는 게 아닌가 싶다. "내 취향은 이거구나. 나는 이런 덕후였구나." 누군가와 비교하면 당연히 부족하고 모자랄 수 있지만, 그래도 이건 내 취향이라고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 그걸 통해서 내 취향이 생기고, 더 좋아하게 되고, 더 알게 되고 시도하게 되면 그 취향이 점점 더 깊고 선명해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결국 AI한테 의존하지 않고 나 스스로 판단하고, 내가 중심이 돼서 AI한테 요청하고 요구할 수 있는 그 주체성이 있어야, 나만의 이야기들을 써 내려갈 수 있지 않을까. AI들이 학습하고 만들어내는 것들은 결국 이 세상에 이미 공개적으로 나와 있는 많은 정보들이다. 거기엔 대중적으로 많이 나오는 이야기들이 주를 이룰 수밖에 없다.
하지만 나만의 이야기는 다르다. "스타트업 창업이 꼭 글로벌로 진출하는 유니콘을 만드는 게 아니어도 된다"라고 말하는 것. "90년대 리바이스의 단단하고 묵직한 천의 느낌이 좋아서 지금 데님 브랜드들과는 다른 방식의 데님을 만들고 싶다"라고 하는 것. "모바일에서 자동화된 게임이 아니라 진짜 어렵게 어렵게 한 단계 한 단계 깨면서 성장하는 스토리의 RPG게임을 만드는 것". 이런 것들이 AI가 만들어낼 수 없는, 나만의 취향에서 비롯된 결과물이지 않을까.
물론 이런 반론도 할 수 있다. AI 때문에 뭘 배울 필요가 없어지는데, 뭔가를 배우기 위해 그렇게 노력해야 하나? 맞는 말일 수 있다. 하지만 무언가를 안다는 것보다, 뭔가를 알 수 있는 학습 능력 자체가 무기가 돼서 새로운 AI를 활용하는 방법을 습득하고 적용하는 게 중요해질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계속 새로운 걸 시도하고 알아가는 그 과정들이 AI가 계속 발전하는 상황에서 나의 경쟁력을 유지해 줄 수도 있다.
의도적인 성숙함도 마찬가지다. 앞으로 사람들과 직접 만나서 일하는 순간이나 기회가 줄어들 수 있다. 그러면 그게 필요할까? 하지만 반대로 보면, 이제 정말 소수의 탁월한 사람들이 모여서 일을 해야 하는 시대가 오고 있다. 그렇다면 인간다움, 성숙함이라는 건 오히려 훨씬 더 중요해지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솔직히 미래가 어떻게 될지 잘 모르겠다. 하지만 한 가지는 믿고 싶다. 내가 나를 보면서 "괜찮다"라고 느끼는 그 모습을, 다른 사람도 "괜찮다"라고 봐줄 거라는 것. AI 시대에도 사람과 사람이 일을 해나가고, 사람이 어떤 사람을 좋아하게 되는 건 마찬가지일 거라는 것을 믿어야 되지 않을까.
그래서 결국, 내가 괜찮다고 생각하는 나의 모습을 발견하고, 그걸 계속 더 깊게, 더 선명하게 만들어가는 것. 그게 AI 시대에도 여전히 중요한 일이 아닐까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