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바야돌리드 토요일의 도시 풍경 -
어젯밤 늦게는 물론이고 오늘 새벽녘까지 호텔 주변 카페 식당가에서 사람들의 소리가 계속 들렸다. 스페인의 금요일 밤은 모든 사람들이 집 밖으로 나와 각자의 처지에 맞게 즐기는 것 같다.
9시가 넘어 시내를 돌아보기로 한다. 가는 길에 카페 식당에 들러 아침 식사를 하기로 한다. 그런데 이 시간에 연 곳이 보이지 않는다. 어젯밤 늦게까지 장사하고 토요일에는 12시 가까운 시간에나 여는 것이다. 사람들의 움직임도 뜸하다. 그래도 가다보니 한 곳이 열려 있어서 무조건 들어가 커피에 단 빵을 주문해 아침을 때웠다.
식사 후에 마요르 광장으로 향한다. 스페인 구시가지는 거의 모두 중심 광장으로부터 시작한다. 그 광장을 대부분 마요르 광장이라고 부른다. 도시에 따라 역사를 반영하여 다른 명칭을 붙이기도 하지만 그 성격은 같다. 토요일 아침이고 사람들의 움직임이 적다. 도시가 뭔지 모르게 다른 도시와는 다른 생소함이 있다. 건축 양식 때문일까? 건축 양식도 조금 다르다. 건물의 연륜이 꽤 된 것 같은데다가 외부 창문이 밖으로 튀어나온 형태이다. 그리고 뭔가 어수선한 느낌이 있고 산만하다.
호텔이 있는 곳이 구시가지 중심지역이라 마요를 광장이 600여 미터 거리여서 쉽게 도착한다. 광장은 중심에 서적 전시회가 열리고 있는데 개점을 하지 않았고 회랑의 식당들은 토요일 영업을 위해 테라스 좌석들을 준비하고 있다. 회랑의 주변 공간은 식당들의 테라스로 이용되고 있는데 그 규모가 크다.
광장은 4면으로 모두 도로가 연결되어 있고 바로 중심 상가로 가거나 거주 지역으로 연결되고 있다. 그 출구에 스타벅스나 버거 킹 등 미국 프렌차이스 영업점도 들어서 있다.
주거지역으로 나와 조그만 공원 벤치에 앉아 쉰다. 공원에는 조각들이 보인다. 문득 바야돌리드가 조각으로 유명하다는 글을 읽은 것 같다. 호텔 앞 광장에서도 조각들을 본 것 같다. 그 뒤 관심을 가지고 보니 시내 곳곳에 조각들이 설치되어 있다.
호텔에 체크인할 때 엘리베이터 입구에 설치된 일본식 꽃꽂이가 보기 좋았다. 배정 받은 3층 엘리베이터에서 내리니 그 곳에도 다른 형태의 꽃꽂이가 있다. 크지는 않지만 아름답게 장식되어 있었다. 왠 일본 문화? 하고 독특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마요르 광장에서 주택가로 이어진 길의 한 상가에서 ‘본사이’라는 간판이 보인다. 상가 문은 닫혀 있었지만 안을 들여다보니 실내 장식업체이다. 서구식 장식 속에 일본 문화를 섞은 디자인을 구상한 것 같다. 거기서 호텔에서 본 형태의 꽃꽂이 장식을 본다. 묘한 생각이 든다.
다시 마요르 광장으로 돌아와서 중심 상가로 이어지는 방향으로 나온다. 상가는 아직 열지 않아서 사람의 이동은 많지 않다. 캄포 그란데(Campo Grande) 공원을 가기 위한 것이다. 이 도로의 끝을 가면 만난다. 과연 공원이 보이기 시작하고 그 앞에 광장과 큰 분수대가 보인다.
공원을 향해 길을 건너려다가 옆을 보니 매우 훌륭하고 단정한 건물이 보인다. 범상치가 않아서 가까이 가서 보니 ‘기병사관학교’이다. 관광가이드 정보에는 이 곳도 곡 들러보아야 하는 관광지로 되어있다. 그래서 들어가 볼 수 있느냐고 물어보았더니 길 건너 관광국에 사전에 등록하고 그룹을 배정받아야 들어갈 수 있다고 하는데 오늘은 이미 끝났다고 한다. 돌아서 갈려고 걸어 나왔는데 관리인이 나와서 부른다. 지금 들어가는 그룹에 그냥 끼어서 들어가라고 한다. 가이드 장교가 인솔하고 설명해주는데 일종의 기병사관학교 박물관을 돌아보는 성격이다. 건물에 에어컨이 없어서 더운 공기 속에 계단을 오르며 다니니 아내는 대단하게 불만이다. 나는 원래 이런 곳에 관심이 많으니 재미있는데 아내의 불만으로 재미가 반감된다. 1시간 반이 소요된다고 한다. 뜻밖에 내일 가보려고 생각했던 곳을 우연하게 오늘 들렀다.
캄포 그란데 공원으로 들어가니 규모는 큰 것 같은데 마드리드 레티로 공원과 같이 잘 정돈되어 있는 것 같지 않다. 12시가 가까운 시간이라 공원을 돌고 나오면 힘들 것 같아 다시 마요를 광장으로 나와 아침에 보아놓았던 일본식 라면집으로 들어가 점심을 먹는다. 일본 사람들이 하는 식당인 것으로 생각했으나 중국인들이 하고 있다. 음식의 품질이 걱정된다. 예상은 맞아서 반도 먹지 못하고 나온다. 가게는 오픈한지 한 달 반이 되었다고 한다. 식당 안에 설치된 장식용 안내에는 ‘요코하마’라고 쓰인 한국어도 보인다.
광장의 서적 전시회에 사람들이 꽤 보인다. 여행 중이 아니면 들여다보겠지만 지금은 살 수도 없으니 대강 눈요기만 하고 나온다. 다시 상가 쪽으로 내려오니 상가들이 모두 개점을 했고 사람들이 크게 늘었다. 많은 사람들이 식사나 산책을 하러 나온 것 같다.
관광안내 사이트에서 소개된 ‘구티에레스 골목(Pasaje Gutierrez)’이 멀지 않아 찾아간다. 나는 마드리드의 산 미겔 시장과 같은 곳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골목길의 식당들이 골목의 테라스를 장악하고 각종 타파스를 판매하고 있다. 그런데 사람들로 꽉 차있다. 관광객일까? 아니면 현지 사람들일까? 소음과 산만함으로 쳐다보는 것도 부담이 되어 그냥 지나친다. 다행히 이 곳은 호텔에서 400 미터 거리에 있어 서둘러 호텔로 돌아온다. 비가 올 것 같다.
호탤 모퉁이 돌아서 있는 슈퍼에 가서 어제 먹었던 파파야를 사서 호텔로 돌아와 쉰다. 여행의 피로가 풀리지 않은 상태에서 자꾸 움직이기만 하니 이제 쉽게 몸이 뻐근하다. 집에 돌아가는 길이라고 긴장이 풀려서일까? 오늘이 집 나선지 73일 째, 17일만 지나면 집으로 돌아간다. ‘집 떠나면 고생이다’라는 말이 틀리지 않다는 생각이 드는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