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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현서 Mar 01. 2021

칠순 잔치를 했다!!!

그러니까 2월 마지막 날이 내 칠순이 되는 날이었다. 우리 나이로 70이 되는 날이 칠순이다. 고희라고도 한다. '가슴에 흰 코 닦이 수건 차고 초등학교 입학하던 기억도 생생하고 중고등학교, 대학교 졸업하던 날도 엊그제 같으며 직장에 신입하여 얼떨떨하던 때도 마음에 선명한데 칠순이라니...',

그런데 그런 일들은 사실상 모두 몇십 년 전 일이 되어 버렸고 세월은 그렇게 흘러 가버렸다.


지난해 6월 말엔가 고향 선산에서 가족이 모일 일이 있었다. 누님 동생 등 형제들이 갑자기 내 칠순 행사를 어떻게 할 것인가 물었다. 그래서 그냥 '가족들하고 집에서 미역국이나 먹을 생각이야. 번거로운 것이 싫어'하고 얘기했다. 그랬더니 막내 여동생이 '아니~ 오빠! 칠순 날 형제 밥 한 끼 안 주고 지나갈 거요?'하고 핀잔 섞인 말을 한다. 그래서 속으로 '아이고 조촐하게나마 칠순잔치를 하기는 해야겠구나' 생각했다.


그러나 코로나 상황이 더 악화되어서 밖에서 사실상 칠순 행사하는 것이 원천 봉쇄되었다. 아들 내외가 칠순잔치 건을 물어와서 나는 '우리 집에서 미역국에 밥이나 먹자'하고 말했다. 그렇게 할 생각이었다. 또 하루는 아들이 집에 와서 우리 집 TV를 요즘 나오는 대형으로 바꾸라고 하며 '칠순 선물로 사드리겠다'라고 한다. 나는 거절했다. 아직 '우리 집 TV 크기도 적당하고 아무 문제가 없다'면서... 그리고 또 그것이 사실이었다. 단 방역지침이 식당에서 직계가족 경우 5인까지 식사가 가능한 것으로 발표되어 분당 내 식당에서 점심을 하자고 제안했고 그렇게 하기로 했다.


일주일 전 아들이 칠순 날 11시까지 자기 집으로 오라고 한다. 사진도 찍고 뭐 행사 같은 것도 하고  식당으로 가자는 것이다. 직감으로 잔치 이벤트 하자는 것 같아서 '준비하지 말고 식당에 가서 밥이나 먹자'라고 말했다. 그랬더니 그럴 수는 없다고 한다. 무슨 칠순이 자랑되는 일도 아니고 지난 환갑 때와 같이 밥이나 먹고 지나면 되지 하고 생각하면서 '괞히 돈 들고 수고하는구나' 생각했다. 그러나 다음날 새벽 아침 걷기 운동하며 아들 내외 입장에서 생각해 보니 '칠순잔치를 성의껏 하는 것이 뒤에 마음에 남는 것이 없이 개운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마음도 중요하지만 삶에 있어서 형식도 꽤 의미가 있다고 생각했다.


11시 아들 집에 도착하니 응접실에 잔치 상을 화사하게 차렸다. 며늘아기 솜씨인 것이 확 느껴진다. 준비된 것들과 분위기가 젊고 쾌활해서 보는 순간 마음이 환해진다. 우리 같이 나이 든 사람들이 접해왔던 분위기와는 확연하게 차이 난다. '수고를 많이 했구나' 하는 생각이 저절로 떠 올랐다.



그렇게 직계 가족만 모여 조촐한 칠순잔치가 시작되었다. 며늘아기가 생일 노래도 배경음악으로 틀어 놓고 연출을 한다. 번거로운 것을 싫어하는 성격이어서 평생 아내가 준비해 준 미역국 밥상만 받아보다가 화려한 생일 상을 받아 본 것은 너무 뜻밖이어서 처음에는 조금 어색했지만 곧바로 마음이 즐거워졌다. 그래 더 나이가 들면 '칠순 날 이런 적이 있었지' 하고 생각할 수 있는 '좋은 기억이 되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가족 모두에게 감사한다.



며늘아기가 준비한 케이크, 다과, 꽃 등이 모두 정성이 가득하다. 여러 군데 접촉해서 마련했을 것이다. 돈만 가지고 되는 일이 아니다. 정성이 있으니 조화롭게 보기 좋은 것이다. 조금 더 관료적인 표현을 사용해보면 '기획을 신경 써서 섬세하게 잘한 것'이다.



판교에 있는 식당으로 이동했다. 철판요리 식당인데 넓고 깨끗한 데다가 분위기가 갈색 톤의 목조를 많이 사용해서 정갈하고 고급스럽게 느껴진다. 넓은 공간에 우리 가족뿐이다. 젊은 요리사가 와서 메뉴에 있는 요리를 하나 씩 설명해주며 눈 잎에서 요리를 준비해 준다. '보는 재미' 그리고 '먹는 재미'가 있다. 그리고 하나 더 요리사가 음식을 준비하며 말하는 우스개 소리를 '듣는 재미'도 추가한다. 요리사가 식사를 준비하며 짬짬이 마술도 부리고 장기도 보여준다. 어색하지 않고 분위기에 맞다. 먹으면서 요리사와 소통도 하고 재미있다.



철판요리 식사가 끝나고 다른 방으로 옮겨 오붓하게 차와 커피를 마시며 다과를 먹었다. 다과도 아주 정성스럽다. 케이크에 크림을 올려놓은 것으로 알았는데 떡에 앙금을 색깔을 넣어 크림 같이 만들어 놓은 것이라고 한다. 내가 앙금을 잘 먹으니 이렇게 준비했나 생각을 했다. 앙금이 단맛이 많지 않아 담백해 많이 먹어도 물리지 않는다.



아들이 칠순 선물로 봉투를 준다. 이 봉투 주는 것도 아들 내외의 칠순 잔치 행사 기획에 포함되어 있다. 내용도 중요하지만 행사도 중요하다. 고맙게 잘 받았다. 사업을 하는 것도 아니고 직장에 몸 담고 있는데  돈을 받는 것이 미안하지만 주는 것이니 성의로 받고 다른 계기에 돌려줄 때가 있을 것이다. 딸은 이미 소정의 적지 않은 금액을 내게 주었다. 모두 고맙다.



칠순이 다가오면서 컨디션이 과거만 못하다는 것을 느끼고 있다. 매일 헬스장에서 운동하고 산책하며 건강하게 살려고 노력하고 있다. 그래도 뭔지 모르게 몸이 예전만 못하다. 우선 하루에도 컨디션이 자꾸 변한다. 오전 중에는 말짱하다가도 오후 되어 갑자기 두통이 시작된다거나 몸이 찌부듯하는 경우가 잦다. 아내는 '그러면서 늙어가는 것'이라고 그런다. 맞는 말이다. 이제 나이 들면서 가장으로서 자식들에게 해 줄 수 있는 일은 '아내와 내가 건강하게 잘 사는 일'이다. 부모가 병들고 아프면 자식들이 힘들다. 한참 사회생활을 열심히 해야 하는 때 부모가 짐이 된다. 그럴 일이 없거나 최소화 할 수 있도록 건강을 잘 지키며 살아가는 일이 자식들 돕는 일이다. 그런 나이가 되어 버렸다. 그런데 그것이 순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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