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을 먹으면 바로 혈당 변화를 알려주네요
지금 내 왼쪽 팔에는 혈당 변화를 실시간으로 보여주는 '연속혈당측정기'가 부착되어 있다. 혈당 그래프가 급히 오르지나 않을지? 음식을 입에 넣기 전에 매번 멈칫하게 된다.
아침에 삶은 달걀 1개, 생오이와 방울토마토. 양배추, 브로콜리, 청경채, 팽이버섯과 두부를 끓는 물에 살짝 데쳐 올리브오일에 찍어 먹었다. 현미밥에 검은콩가루를 넣고 걸쭉하게 끓인 죽을 아침마다 맛있게 먹고 있었는데 죽이 당을 빨리 높인다고 해서 요즘은 당과 무관한 남편만 가끔씩 먹는다. 아무래도 측정기 눈치를 많이 보게 된다. 아침 식사 후 혈당 앱을 열어 보니 그래프에 뾰족한 산 같은 봉우리 하나가 만들어졌다.
점심은 두 달에 한 번씩 만나는 중학교 동창 친구들과 이탈리아 식당에서 먹었다. 우리가 간 세미 뷔페식 식당에는 스파게티와 피자를 비롯해서 갖가지 빵, 치즈, 호박죽, 가지 튀김, 훈제 연어, 닭요리와 여러 종류의 케이크, 아이스크림이 준비되어 있었다. 측정기가 신경이 쓰여 당지수가 높은 죽, 튀김과 디저트 같은 음식은 재빨리 지나쳤다. 조심은 했지만 아침 식사 때보다 봉우리가 높게 올랐다.
저녁에는 돼지고기를 넣고 김치찌개를 끓였다. 남편은 돼지고기, 특히 비계 부분을 즐겨 먹는다. 두부와 팽이버섯도 넣었다. 냉동고에 있는 가자미를 꺼내 싱겁게 조렸다. 오이도 씻어 썰어놓았다. 지난번 전통시장에 갔다가 싱싱한 오이 1개가 500원이라 많이 사놓고 요즘은 끼니때마다 오이를 먹고 있다. 서리태 얹은 현미밥도 함께 먹었다. 역시나 세끼 중 봉우리가 제일 높았다.
점심 옆에 붙어있는 낮은 봉우리 하나가 눈에 띄었다. 친구들과 식사 후 카페로 이동해 마신 카페라테! 카페라테 한 잔의 존재감이 확실하다.
내가 즐겨 먹는 카페라테는 식사 두 시간 후 혈당 수치가 안정될 때 마시라고 한다. 우유에도 당이 있기 때문이라고 당뇨교실 간호사가 말한다. 친구들을 만나면 식사 후 바로 커피로 이어지기 때문에 두 시간을 기다리는 건 불가능하다. 집에서는 그래도 두 시간 기다린 후 커피를 내려 우유를 넣어 마시려고 한다.
간호사는 그렇지만 우유를 타지 않은 아메리카노는 식사와 함께 먹어도 괜찮다고 한다. 40여 년 전 미국 유학 갔을 때 학교 식당에서 커피에 우유를 넣어 먹는 습관이 생겼다. 지금껏 계속하고 있는 이 습관을 바꾸는 일이 쉽지 않을 것 같다.
연속혈당측정기를 달기 전까지 나는 사실 내 당 수치에 별 관심이 없었다. 언제인지 정확히 기억은 안 나지만 '당뇨 전 단계’라는 진단을 받은 후부터 4개월마다 피검사를 하고 검사 결과를 들었다. “다른 이상은 없고 ‘당화혈색소’ 수치도 아직 괜찮으니 계속 관리 잘하세요”라고 의사가 말하면 나는 “네”라고 답하며 진료실을 나오곤 했다. 이 루틴화된 대화 패턴이 계속 갈 줄 알았다.
그런데 지난 4월 초 대학 친구들과 칠순 여행으로 중국 시안에 다녀온 후에는 상황이 달라졌다. 평소처럼 진료실에 들어가 간호사가 가리키는 동그란 의자에 앉았는데, 화면을 뚫어지게 보던 의사가 말했다.
“당화혈색소가 0.3 올랐어요. 무슨 일 있었나요?”
의사는 당화혈색소가 6.1%에서 6.4%로 오른 그래프를 손으로 가리켰다. 0.1% 더 올라 6.5%가 되면 당뇨병이라고 했다. 아주 작은 수치 차이로 당뇨병 환자가 된다니!
갑자기 긴장되었다. 집에 와서 모아둔 최근 검사결과표를 훑어보았다. 당화혈색소는 5% 후반부터 6% 초반 사이를 왔다 갔다 했다. 6.4%까지 오른 건 이번이 처음이다. 당화혈색소는 최근 2~3개월간의 평균 혈당 수치를 나타내는 지표다.
의사는 15일 동안 이름도 처음 듣는 연속혈당측정기를 부착하는 것을 권했다. 갑자기 여러 스케줄이 합쳐져 4월 하순부터 5월 하순까지 또 여행을 앞두고 있었다. 의사는 그러면 여행 다녀와서 측정기를 부착하라고 했다. 여행을 마치고 6월 중순, 당뇨교실에서 교육받은 후 바로 측정기를 달았다. 측정기 바늘 센서는 따끔함을 느낄 사이도 없이 쉽게 왼쪽 팔 위 뒤쪽에 삽입되었다. 그 위에 동그란 밴드를 붙이는 걸로 부착은 끝났다. 간호사는 핸드폰에 앱을 설치해 주며 음식, 약 등을 먹을 때마다 기록하라고 했다.
측정하는 15일 동안 휴대폰은 항상 옆에 두라고 했다. 측정기와 휴대폰이 연동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집 안에서도 휴대폰을 멀리 현관 구석에 놔두면 측정기가 반응하지 않아 그래프가 중간에 끊긴 적도 있다.
왜 갑자기 당화혈색소 수치가 올랐을까? 친구들과 중국 시안의 맛집을 신나게 돌아다닌 탓일까? 시안 음식이 우리 입맛에 맞아 끼니때마다 맛있게 배부르게 먹었다. 친구들과 함께 먹으니 입맛이 더 돌았다. 틈틈이 친구들이 건네주는 캔디와 쿠키도 거리낌 없이 받아먹었다. 거기다 한 친구가 남편이 학술상을 받았다며 한턱낸 케이크도 싹싹 끝냈다.
병원에서 당뇨 전 단계라는 진단을 받았어도 지금까지 일상생활 하는 데는 아무런 영향이 없었다. 아직 약 먹을 단계도 아니어서 당뇨병은 그야말로 저 멀리 있는 남의 일이었다. 평소 흰쌀밥 대신 서리태 넣은 현미밥을 먹는다. 과자나 케이크를 일부러 사서 먹지 않는다. 다만 친구랑 만나 커피를 마실 때는 즐겁게 먹는다. 걷기도 매일 하는 편이다. 체중은 보통. 키가 줄고 왜소해져서 요즘은 말랐다는 말도 가끔 듣는다. 그래서 그냥 당뇨 전 단계로 평생 갈 줄 알았다. 칠순 기념으로 친구들과 함께한 특별한 여행에서 맛있는 음식과 달콤한 과자나 케이크를 많이 먹는 일탈쯤은 당연히 아무 문제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연속 혈당 측정기를 달고 나서 계속 높게 나오는 혈당 수치가 자꾸 신경이 쓰인다. 자는 시간이나 공복 때 정상 수치가 70~100mg/dL이라는데 여기에 도달한 건 몇 번 되지 않는다. 식사 2시간 후 정상 혈당인 140mg/dL 미만으로 내려간 경우는 한 번도 없었다.
이제는 간호사가 권한 '채단탄'(채소- 단백질-탄수화물) 순서로 식사하려고 한다. 채소의 식이섬유가 장에 벽을 만들어 당의 흡수를 늦추고, 단백질이 위산 분비를 감소시킨다는 설명 때문이다. 또한 과일과 카페라테를 식사 후 두 시간 지나 간식으로 먹는 습관도 생겼다.
연속혈당측정기가 내게 가져다준 변화는 생각보다 크다. 당뇨 전 단계로 병원 진료를 정기적으로 받으면서도 당뇨병과는 무관하다고 믿었던 무심한 내게 경각심을 일깨워줬다. 내가 먹는 음식이 나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실시간 그래프를 통해 생생하게 확인할 수 있어서 큰 자극이 되었다. 앱에 무엇을 얼마나 먹었는지 기록하는 것도 음식 관리에 도움을 주었다.
연속혈당측정기 달기를 참 잘했다.
3일 후 측정기를 떼고 나서도 지금처럼 내가 먹는 음식에 신경 쓰며 조심하려고 한다. 시간 생기면 아무 때나 나가던 산책도 되도록 식사 후에 할 생각이다. 이렇게 꾸준히 생활습관에 관심을 갖고 주의를 기울이면 당뇨병으로 진행되지 않고, 오히려 당뇨 전 단계를 벗어나 정상으로 돌아갈 수도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