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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zel May 04. 2022

당근마켓에서 구입한 돌 한복과 돌잡이 용품

나이 들면서, 적응하면서

 

오늘은 손녀의 첫돌이다. 조그만 아가 돌쟁이에게 한복을 입히면 어떤 모습이 될까? 마음들뜨기대가 된다.


손녀의 두 팔을 들어 치마 어깨 걸이에 넣은 후, 얼른 치마끈을 앞으로 돌려 매었다. 잠시도 가만히 있지 않는 손녀를 내가 잡고 있는 사이 딸이 저고리도 서둘러 입혔다. 머리 위에 조바위까지 얹어 놓으니 갑자기 꼬맹이 아가가 훌쩍 소녀가 되어버렸다.




손녀의 돌 한복은 막 알게 된 당근마켓에서 구매했다. 당근마켓에서 ‘돌 한복’을 클릭하니 앙증맞은 예쁜 돌 한복이 많이 올라와 있었다. 내 눈길을 끄는 화사한 한복 몇 개를 골라 미국에 사는 딸아이에게 카톡으로 보냈다.


“와~~ 다 예뻐요!”


모두 색감이 곱고 예쁘다고 했다. 딸과 사위는 그중에서 옷걸이에 단정히 걸려있는 꽃분홍 치마와 노란 당위, 꽃무늬 수가 놓인 까만 조바위에 꽂혔다. 그 한복을 사고 싶어 했다. 첫 손주의 첫 돌인데 새 옷을 사지 않고 중고를 사는 게 마음에 걸려서 딸에게 정말 당근마켓에서 사도 되느냐고 물어보니, 미국에서도 이웃에 사는 한국 애기가 입던 옷을 잘 입히고 있다고 했다. 좋은 옷을 저렴하게 살 수 있고 친환경 효과도 있으니 일거양득이라고 했다. 전혀 개의치 않는다고 했다.




아주 오래전 미국에서 공부할 때 시내에 있던 <Once more with feeling>이라는 중고가게가 기억난다. 지금도 있으려나? 다른 사람이 쓰던 것을 따듯한 느낌으로 고맙게 한 번 더 사용하자는 <한 번 더, 느낌으로>란 가게 이름이 아주 마음에 들었다. 이 예쁜 이름의 가게는 넉넉지 않던 유학생 시절 가끔씩 들려 아기자기한 장식품도 구경하고 헌 책도 사곤 했던 젊은 날의 추억이 어린 곳이다.




판매자에게 사고 싶다는 문자를 보냈다. 당근마켓에서 보내는 첫 문자여서 약간 설레기까지 했다. 판매자는 마침 근처에 올 일이 있다며 우리 집으로 한복을 가져오겠다고 했다. 집 앞에 도착했다는 문자를 받고 급히 아파트 정문으로 나가보니 멋진 젊은 여자분이 쇼핑백을 들고 차 옆에 서 있었다. 집에 오자마자 한복을 소파 위에 펼쳐 놓았다. 역시 멋진 주인처럼 한복은 구김도 없이 관리가 잘 돼있었다. 꽃분홍 치마색이 무척 고왔고, 무릎까지 내려오는 노란색 당위도 화사하고 눈부셨다. 까만 바탕에 잔잔한 연분홍과 진분홍 꽃 수가 놓인 조바위도 깜찍하고 예뻤다.


첫 거래를 성공적으로 끝낸 나는 용기가 생겨 돌잡이 용품도 찾아보았다. 청진기, 축구공, 실타래, 책, 붓이 새것처럼 깨끗해 보여 사겠다는 문자를 보냈다. 집에 아가들이 있어 남편이 퇴근할 때까지 이동하기가 힘들다고 해서 이번에는 내가 판매자가 사는 곳으로 갔다. 전철로 집에서 두 정거장인 가까운 거리라 기분 좋게 돌잡이 용품을 받아왔다.

 



한복을 예쁘게 차려입은 손녀는 돌잡이 용품을 둘러보더니 까만색과 흰색이 섞인 말랑말랑한 작은 축구공을 덥석 집어 손에서 놓지 않았다. 여자 축구 선수가 되려나? 더 집으라고 어른들이 부추겨도 공만 가지고 놀다가 마침내 청진기 끈을 집었다. 축구를 잘하는 여의사! 딸, 사위, 남편, 나 모두 손녀가 진짜 튼튼한 의사나 된 것처럼 환호성을 질렀다.


당근마켓에서 따듯하고 친절한 판매자로부터 구입한 돌 한복과 돌잡이 용품 덕에 미국에서 오붓하지만 행복하고 흥겹게 돌잔치를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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