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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zel Feb 10. 2022

보청기를 착용한 첫날이다

나이 들면서, 적응하면서

오늘은 보청기를 찾는 날이다. 약속 시간보다 조금 일찍 청각언어센터에 도착했다. 지난번에 만났던 흰 가운을 입은 젊은 청능사가 환하게 웃으며 방에 들어오라는 손짓을 했다. 벽에 걸린 화면에는 내 청력 그래프가 띄어 있었고, 책상 위에는 내 이름이 박힌 안내서가 놓여 있었다. 준비를 다 하고 기다리는 청능사에게 믿음이 갔다.


그냥 쑥 끼면 되는 안경과 다르게 보청기는 신경을 써야 할 부분이 많아 보인다.


콩알만 한 배터리를 며칠에 한 번씩 교체해야 한다. 교체할 때가 되면 삐리리 소기가 난다며 그 소리를 직접 들려주었다. 잡기도 어려운 작은 배터리를 몇 번 시도 끝에 제 자리에 넣고 뚜껑까지 찰칵 닫는 것에 성공하니, 청능사는 매일 보청기 외관을 닦아줘야 하고 소리구멍도 작은 칫솔 모양의 솔로 털어내야 한다고 했다. 또 점처럼 조그맣게 뚫린 공기구멍에 벤트 솔을 깊숙이 집어넣어 막히지 않도록 해야 한다. 생각보다 많이 귀찮네. 그리고 밤에 잘 때는 보청기를 빼서 침대 옆 아무 데나 놓으면 안 되고 동그란 방습제를 바닥에 넣은 투명한 원통 플라스틱 용기에 보관해야 한다.


안내서에 있는 설명이 끝나자 보청기를 실제로 착용해 보자고 했다. 조그만 보청기 한 면에 각각 빨간 글자와 파란 글자로 제조사, 고유번호와 내 이름까지 깨알같이 적혀 있었다. 빨간색은 오른쪽, 파란색은 왼쪽을 표시한다. 한 손으로 보청기를 글자가 보이도록 잡고, 다른 손으로 귓불을 밑으로 내린 다음 보청기를 밑에서 위로 밀듯이 귓속으로 쏙 집어넣으라고 했다. 설명대로 했더니  들어갔다. 청능사는 보청기 상태를 조절한 후 어떠냐고 내게 물었다. 양쪽 귀를 꼭 막아놓으니 답답함은 좀 느꼈지만 그런대로 괜찮았다. 괜찮다고 말하는데, 내 목소리가 마이크에 대고 말하는 것처럼 울리고 비음으로 들렸다.
 

보청기는 적응하는 데 시간이 걸리므로 우선 2주 후에 다시 만나기로 약속을 잡고 보청기를 양쪽에 낀 채 거리로 나왔다. 도로 위의 차들이 얼마나 시끄러운지 깜짝 놀랐다. 도로변을 그렇게 많이 걸었어도 지금껏 차 소리가 거슬렸던 적은 없었던 것 같다. 옆에 함께 걷고 있던 남편에게 차 소리가 원래 이렇게 크게 들리냐고 물어보니 당연히 시끄럽다고 했다.


저녁 식사를 준비하면서 부엌 환풍기를 틀었다. 갑자기 큰 소리가 튀어나와 움찔했다. 음식을 씹는 소리가 증폭되어 양쪽 귀에서 서걱, 서걱거렸다. 무슨 맛인지도 모르고 서걱대는 소리 하나하나에 초집중해 가며 조심스럽게 씹었다. 지금껏 그냥 흘려보냈던 소리들이 갑자기 너도 나도 들어달라고 아우성치는 새로운 환경에 적응해야 할 것 같다.


자기 전에 청능사가 준 하얀 헝겊으로 보청기 외관을 닦았다. 까만 작은 솔로 소리구멍을 털어낸 후, 역시 까만색의 벤트 솔을 점 같은 공기구멍에 넣었더니 반대편 공기구멍으로 솔에 부착된 딱딱한 투명 실이 나왔다. 가는 공기구멍 통로도 쉽게 청소할 수 있네. 마지막으로 동그란 주황색 방습제가 깔린 투명 플라스틱 통에 빨강, 파랑 보청기 두 개를 넣고 뚜껑을 닫았다.


보청기 착용 첫날을 무사히 넘긴 셈이다. 왠지 꼬맹이 보청기랑 쉽게 친해질 수 있을 것 같다.



(2022.0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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