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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zel Feb 10. 2022

보청기를 맞추기로 마음먹었다

나이 들면서, 적응하면서

오늘 오후 집에서 전철로 두 정거장 거리인 청각언어센터에 가서 보청기를 맞추고 왔다. 3개월 전 검사만 받고 보청기 맞추는 일은 차일피일 미루다 오늘에야 약속을 잡은 것이다.


2년마다 종합검진을 하면 어느 때부터인가 청력이 안 좋다는 결과가 계속 나왔다. 의사 선생님이 보청기를 써야 하는 경계선상에 있다며 보청기를 사용해 보라고 권했지만 보청기는 나보다 훨씬 더 나이 드신 분에게 해당되는 것 같아 선뜻 내키지가 않았다.


그런데 이제는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이유들이 하나씩 둘씩 늘어갔다.


코로나가 기승을 부리기 전이니까 벌써 이년 전쯤인가. 동창 모임에서 테이블 건너편에 앉은 친구에게 내 옆에 앉은 친구가 뭔가 얘기를 했는데 건너편 친구는 전혀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몇 차례 더 시도했지만 건너편 친구는 듣지를 못 했다. 바로 나를 보는 것 같았다. 보청기를 해야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건너편 친구를 빼고는 내 또래의 친구들은 대부분 난청을 겪고 있지 않은 듯했다. 내가 잘 들리지 않아 보청기 착용을 생각하고 있다고 말하니까, 어떤 친구들은 일상에 큰 문제가 없는데 벌써 보청기까지 쓸 필요가 있느냐고 하고, 또 다른 친구들은 소리를 못 들으면 뇌에 자극이 가지 않아 일찍 치매에 걸릴 수 있으니 난청 초기부터 보청기를 껴야 한다고도 했다.


은퇴 전 학생이 하는 질문이 잘 들리지 않으면 교탁에서 내려와 학생 가까이 가서 질문을 다시 받곤 했었다. 학회에서도 발표 후 질문을 제대로 듣지 못할까 봐 방청석에서 손을 들면 얼른 질문자 옆으로 걸어가서 질문을 받았다. 이런 나의 모습을 본 한 동료가 내가 배려심이 많은 사람 같다고 말해주었다. 그래서 내 아픈 진실을 동료에게 이실직고하였다.


명절 때는 대부분 시댁 형님 댁에서 1박을 하는데, 형님과 막내 동서와 나란히 누워 함께 잠을 잔다. 내가 가운데에 누우면 그나마 동서들 이야기에 참여할 수 있지만, 내가 왼쪽이나 오른쪽 가에 눕게 되면 두 사람이 하는 이야기가 웅얼거리는 소리로만 들린다. 다른 식구들이 모두 자고 있어 두 동서들이 목소리를 최대한으로 낮춰 작게 말하기 때문에 아무리 귀를 기울여도 듣기가 힘들다. 그럴 때마다 보청기를 꼭 해야지 하고 굳게 마음을 먹었다가 또 일상으로 돌아오면 보청기에 대해서는 슬그머니 잊었다.


남편이 혼자 텔레비전을 볼 때는 소리 없이 영상만 보는 사람처럼 텔레비전의 볼륨을 아주 낮춘다. 정말 소리가 들리냐고 거실을 지나가다 물으면 잘 들린단다. 주인공이 방금 한 말이 뭐냐고 물으면 거리낌 없이 대답해 주는데 나야 듣지 못했으니 진짜 맞는지 확인할 방도는 없다.


그리고 ‘한강진역’이 자꾸 세 정거장 뒤에 있는 ‘삼각지역’으로 들린다. 인터넷을 찾아보니 난청이 있으면 ‘ㅎ, ㅈ, ㅊ, ㅅ, ㅍ’ 등에 대한 분별력이 떨어진다고 한다. 한강진의 ‘ㅎ’이 ‘ㅅ’으로 들리는 걸 보니 난청이 맞는 것 같다.


더 이상 보청기를 피하면 안 되겠다는 생각에 오늘 청각언어센터를 찾은 것이다. 내 차례가 되어 진료실에 들어가니 청능사라는 다소 생소한 직함을 가진 흰 가운의 젊은 남자분이 컴퓨터 화면에 3개월 전에 한 내 청력 검사 결과를 띄어놓고 있었다. 화면에는 경도와 중도 난청에 집중된 빨간색과 파란색 그래프가 보였다. 제일 높은 주파수에서는 양쪽 귀 모두 중고도 난청에 걸쳐 있었다. 파란색으로 표시된 왼쪽 귀가 빨간색 오른쪽 귀보다 조금 좋아 보여, 우선 오른쪽 한쪽만 해보면 어떻겠느냐고 물었다. 청능사는 두 귀의 차이가 그리 크지 않고, 보청기를 착용하지 않은 귀가 나빠질 수 있다며 양쪽을 다 착용하는 것을 권했다.


청능사는 본을 뜨기 위해 내 귓속에 하얀 솜과 민트색 실리콘을 조금씩 넣었다. 내 귀가 작은 편이라고 했다. 그러고 보니 지금껏 내 귀 모양에 관심을 가져본 적이 한 번도 없었던 것 같다. 청능사는 귓본을 가리키며 내 귓속이 넓고 오른쪽과 왼쪽의 외이도 길이가 서로 다르다고 알려줬다. 정말 짝짝이네. 보청기 색은 눈에 띄지 않게 살색으로 골랐다. 보청기는 구정이 끼어 2주 후에 찾으러 오란다.


고인이 되신 친정 아버지는 말년 즈음에는 거의 들으시지 못해 의사소통이 어려웠다. 얼마나 답답하고 마음고생이 심하셨을까. 올해 93세가 되신 친정 엄마도 귀에 바짝 대고 이야기를 해야만 알아들으시기 때문에 그렇게 말씀을 좋아하셨던 분이 이제는 그림처럼 앉아 가족들이 왁자지껄 떠드는 모습을 조용히 바라만 보신다.


친정 부모님은 윙윙거리는 울림이 심하다며 보청기를 거의 쓰지 않으셨다. 아직 보청기 착용이 얼마나 불편하고 힘들지 가늠은 안 되지만 콘택트렌즈와 안경이 내 안 좋은 시력을 해결해 주듯이 보청기도 내 부족한 청력을 보완해 줄 것이라 믿어 이왕 어렵게 결심했으니 열심히 착용해 볼 생각이다.



(2022.0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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