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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zel Feb 10. 2022

새해 초부터 대박 실수

나이 들면서, 적응하면서

무술년 올해 나는 세는 나이로 64세가 되었다. 내가 느끼는 나이보다 훌쩍 높은 내 숫자 나이와 나는 영 서먹하다. 유엔이 분류한 ‘청년’(18~65세) 그리고 정부가 규정한 ‘신중년’(50~60대)이란 과장돼 보이는 명칭들이 그래도 내 서먹한 마음을 다독여준다.


그런데 요즘 들어 나는 이런 상큼한 명칭들과 어울리지 않는 칙칙한 실수를 연발한다. 식후에 약을 먹었는지 안 먹었는지 헷갈리는 가벼운 실수부터 공복 채혈해야 하는 걸 깜빡 잊고 새벽에 일어나 아무 생각 없이 우유를 마셔버린 좀 심한 실수까지 여러 종류의 실수들을 남발하고 있는데, 며칠 전엔 완전 대박 실수 하나를 저질렀다.


나는 보통 남편과 함께 차로 외출할 때 쓰레기를 버리는 편이다. 나 혼자 외출할 땐 대부분 약속 시간에 임박해 나가기 때문에 쓰레기까지 버릴 여유가 없다. 그래서 남편이 차 가지러 지하로 내려가는 자투리 시간을 이용한다.


차 외출로 결정이 나면, 남편과 나는 현관문을 나와 엘리베이터를 함께 탄다. 그렇지만 내리는 곳은 서로 다르다. 나는 쓰레기 분리수거장이 있는 1층에서 그리고 남편은 더 내려가 차가 주차되어 있는 지하 2층에서 내린다. 1층에서 먼저 내린 내가 수거장에 가서 쓰레기를 각 분류망 안으로 던진 후 차 나오는 출구 부근에서 기다리면, 남편이 차를 내 앞에 멈춘다. 조수석 문을 열고 내가 차에 올라타면 우리 부부의 동반 차 외출이 시작되는 것이다.


그날도 쓰레기를 분류망에 집어넣고 언제나처럼 화단 앞으로 가니 이미 우리 은빛 차는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오늘은 웬일로 차가 먼저 왔네. 나는 급하게 조수석 문을 열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조수석 바닥이 온통 흙투성이었다. 딸과 아들은 우리랑 떨어져 살고 있어 남편과 나만 차를 타는 데다, 우리 부부 모두 지하철을 많이 이용하는 편이라 차는 오래되었어도 특히 내가 주로 앉는 조수석의 바닥 매트는 항상 새 차처럼 깨끗하다.


대체 차가 왜 이렇게 더럽게 됐냐고 투덜거리며 허리를 굽혀 조수석 바닥에서 매트를 꺼내 화단으로 가져갔다. 남편이 운전석에서 뭐라고 중얼거리는 소리를 뒤로 하고 나는 화단 흙바닥에 매트를 툭툭 털었다. 대충 흙이 떨어진 매트를 조수석 바닥에 놓으면서 뭔가 이상한 느낌이 들어 운전석에 앉은 얼굴을 힐끔 올려다보니, 아뿔싸, 우리 아들뻘 되는 젊은 남자가 “지금 뭐, 뭐 하시는 거예요?”라며 아주 황당하고 놀란 얼굴로 내게 말하는 것이 아닌가. 나도 똑같이 너무 놀라고 당황스러워 “아, 아, 죄송합니다. 색깔이 똑같아 우리 차인 줄 알았어요. 정말 죄송합니다.”라고 말하며 차 문을 닫았다. 떠나는 차 뒤꽁무니를 보니 색깔만 우리 차와 비슷했지 차종도 완전히 달랐다. 어쩌다 이런 실수를 했는지 얼굴이 화끈거렸다.


잠시 후 진짜 우리 은빛 차가 주차장 출구에서 나와 내 앞에 멈춰 섰다. 나는 차 번호를 확실하게 확인한 후 조수석 문을 열었다. 망연자실한 얼굴로 남편에게 자초지종을 얘기하니 박장대소하며 이제 아파트 전체에 내가 정신없는 할머니라고 소문 다 났다며 나를 놀렸다.


그날 대소동 이후 아무리 우리 차라고 생각되는 은빛 차가 내 앞에 서도 나는 차 밑에 달려있는 번호판을 확인한 다음 조수석 문을 조심스럽게 연다. 아직까지는. 그리고 운전석에 앉은 사람도 쳐다본다. 이제 내가 실수를 많이 하게 된 나이임을 아쉽지만 인정한다. 새해에는 청년, 신중년이라는 과분한 명칭에 누가 되지 않도록 한 템포 늦춰 신중하행동해야겠다.



(2018.0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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