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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zel Aug 27. 2022

인생 선배님

나이 들면서, 적응하면서

대학교 친구 두 명과 함께 대학 은사님을 만나 점심을 먹고 유영국 전시회에 가기로 했다. 비 온 뒤 맑게 갠 하늘만큼이나 기분 좋은 약속이다.


유영국 화가의 강렬한 주홍빛 재킷을 입고 교수님이 우리 앞에 나타나셨다. 언제나처럼 화사하고 고우시다.


교수님은 우리가 대학에 입학했던 바로 그 해에 새로 부임하셨다. 그래서 농담 삼아 우리가 대학 동기라고 말씀하신다. 당시 우리는 갓 20살 된 신입생이었고 교수님은 30대 중반 신임 교수였다. 세월이 많이 흘러 우리는 60대 중∙후반, 교수님은 80대 초반이 되었다. 외양으로 보면 교수님이나 우리나 별반 차이가 없어 보인다.


언제부터인가 나보 연배가 위인 분을 보면 그분에게 미래의 나를 대입해 보는 버릇이 생겼다. 여러 활동 지금도 활기차게 하시는 교수님을 뵈면서 나도 앞으로 십여 년간괜찮겠구나 하는 안도감을 느낀다. 지나가다가 혹은 전철 안에서 나이가 많아 보이는 분들을 보면 나도 모르게 눈길이 멈춘다. 자세가 구부정하거나 뒤뚱뒤뚱 불편하게 걷는 분들도 있다. 이 분들을 관찰하면서 나이를 가늠해 본다. 앞으로 몇 년 뒤에 내가 저분들 모습이 될까도 따져본다. 미래의 내 모습이라는 생각이 들어 마음이 쓰인다.




나는 요즘 집순이다. 매일 남편과 산책을 나가는 일 외에는 거의 대부분 집에서 지낸다. 내 방에서 가르치고, 읽고, 쓰기도 한다. 은퇴 전 직장에 가려면 고속버스로 두 시간 남짓 달려가야 했는데, 이제는 의자에 그대로 앉아 컴퓨터 화면을 보며 가르친다. 편하다. 우리 문화와 한국어를 알고 싶어 하는 외국인을 가르치는 일이 즐겁다. 우리 것에 관심을 갖는 고마운 학생들에게 따듯한 격려와 도움을 주고 싶다.


책과 글을 읽는 시간도 행복하다. 눈길 닿는 대로 마음 가는 대로 읽는다. 보물 같은 브런치 글도 읽는다. 다양한 주제에 대한 흥미로운 글이 너무도 많다. 어떻게 저렇게 술술 풀어낼 수 있을까? 글 잘 쓰는 분들이 참으로 부럽다.


외국인이 힘들어하는 한국어 표현을 나도 함께 고민하며 글로 나타내는 일도 재미있고 보람 있다. 또 나이 들면서 느끼는 일상을 적어보기도 한다. 이런 글에 누가 관심이나 있을까 생각하면서도 가끔씩 브런치에 글을 올린다. 부족한 글에 라이킷을 눌러주고 댓글을 달아주는 분들이 고맙다.


내가 건강 체질이라 믿어 당연히 지금 같은 생활이 10년, 20년이 지나도 계속될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알고 보니 내 실제 나이만큼 내 신체도 나이를 먹었다. 시력이야 콘택트렌즈와 안경의 도움을 오랜 기간 받고 있지만, 청력도 약해져 있고, 목소리도 쉽게 쉬고 잠긴다. 신체적 제한 때문에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일들을 언젠가는 못 하겠구나 하는 생각을 한다.


앞으로 내가 얼마나 지금의 생활을 유지할 수 있을지 잘 모른다. 짧을 수도 길 수도 있다. 파스칼 브뤼크네르가 그의 책 <아직 오지 않은 날들을 위하여>에서 한 말처럼 낡으면 낡은 대로 나를 수선하면서 지금, 여기를 소중하게 여기며 감사한 마음으로 살아야 할 것 같다. 침침해지는 눈은 잠시 눈을 감고 달래고, 잘 잠기고 쉬는 목은 말을 적게 하고 따듯한 물로 다독이면서…. 더 심해지면 수선을 받으며 욕심부리지 말고 내가 할 수 있을 때까지 하자. 현재를 선물을 받은 듯 즐기면 될 것 같다. ‘현재’와 ‘선물’은 영어로 똑같은 철자 ‘present’로 쓰인다. 정말 현재는 선물이다.


긍정적으로 열심히 사시는 은사님처럼 멋진 분들이 인생의 선배님으로 주위에 있어 마음이 든든하다. 그분들을 보며 용기를 얻는다. 나 또한 다른 사람들이 지켜보면서 잣대로 삼을 수 있다. 이왕이면 저렇게 되지 말아야지 하는 사람보다 저 정도면 괜찮겠다라는 사람이 되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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