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hazel Oct 13. 2022

중∙고등학교 동창들과 간 스페인∙포르투갈 여행

나이 들면서, 적응하면서

스페인과 포르투갈 여행 동영상이 동창 단톡방에 올라왔다. 친구들이 저마다 찍어 올린 사진들을 한 친구가 보기 좋게 편집해서 동영상 앨범을 만들었다. 선글라스를 끼고 멋지게 포즈를 취하고 있는 친구들을 보니 나도 모르게 미소가 지어진다.


스페인 부, 그라나다에 있는 알함브라 궁전을 배경으로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 기타 선율이 흘러나온다. 친구들은 이슬람 정취로 가득한 궁전과 정원에 매료되어 이곳에서 특히 사진을 많이 찍었다. 이어서 유럽의 서쪽 끝, 포르투갈의 카보다로카에서 망망 대서양을 바라보는 친구들 사이로 아말리아 호드리게스가 절절하게 파두를 부른다. 파두의 여왕답다. 사진에 맞는 배경 음악을 고르고, 장소명 그리고 친구들의 이름과 특징까지 세심하게 자막으로 쓰느라 얼마나 수고가 많았을까. 여독도 풀리지 않았을 텐데… 친구들과의 여행이 기억 저편으로 사라지려고 할 즈음, 친구가 만든 동영상을 따라 다시금 추억을 소환하며 스페인과 포르투갈을 돌아본다.

카보다로카(호카 곶), 포르투갈

60대 후반 중∙고등학교 동창생 15명이 패키지여행으로 스페인과 포르투갈을 다녀왔다. 10박 12일 기간이 좀 길다 보니, 처음에 간다고 신청한 친구들 중에서 사정이 생긴 몇 명은 여행을 취소했다. 포르투갈은 남편과 7년 전에 다녀왔지만, 스페인은 처음이다. 친구들과의 해외여행은 더더욱 처음이라 기대가 되었다.


우리들은 중학교 입학시험을 본 마지막 세대다. 중학교에 입학해서 고등학교까지 내리 6년을 같은 교정에서 다녔다. 나는 친구들과 중학교는 함께 다녔지만, 중간에 학교를  고등학교 졸업은 친구들보다 1년 늦었다. 게다가 지방에 있는 직장에 다니며 주말부부를 하느라 은퇴 전에는 친구들을 거의 만나지 못했다. 그래서 같이 여행 가는 친구들 중에 잘 아는 친구는 몇 명 되지 않는다.


인천공항에서 떠날 때 비행기 옆자리에 앉은 친구는 낯이 익지 않았다. 처음 보는 얼굴이다. 우선 통성명을 했다. 특별하지 않은 아주 흔한 성과 이름을 가진 우리  사람은 서로의 기억 속에 각인되어 있지 않다.


옆자리 친구와 나는 혹시 중학교 때 같은 반을 했는지를 짚어나갔다. 전혀 모른다고 생각했던 친구와 나는 놀랍게도 중학교 1학년 때 같은 반이었다. 1학년 4반. 담임선생님은 키가 크셨던 수학 선생님이다. 온화하고 조용하신 분이셨다. 그동안 꼭꼭 닫혀있던 추억의 서랍을 열어, 우리는 잊고 있었던 중1 시절을 회상하기 시작했다.


아무리 오래전 일이지만 한 교실에서 1년이나 같이 지냈는데 어떻게 친구 얼굴이 전혀 기억나지 않을까? 그때는 키 순으로 번호를 정했다. 나는 키가 작아 앞 번호였고, 친구는 키가 커서 뒤 번호였다. 학급당 학생 수가 60명이나 되니, 반 친구 모두가 함께 섞여 놀기는 힘들었다. 앞 번호 작은 아이들은 작은 아이들끼리 놀고, 뒤 번호 큰 아이들은 큰 아이들끼리 놀았다. 같이 놀지는 않았어 교실을 들락거리면서 안 볼 수가 없었을 텐데... 친구 얼굴을 자세히 보니 키가 컸던 단발머리 모습이 오버랩되었다. “맞아. 생각 나!” 무릎을 쳤다.


우리는 기억도 가물가물한 10대 시절로 돌아가 이야기 꽃을 피웠다. 바로 조금 전까지 서먹했는데 어느새 친해진 느낌이 다. 이것이 바로  동기동창마법다. 친구는 우연히도 우리 집에서 멀지 않은 곳에 살고 있고, 내가 가는 이마트에서 장을 본다고 했다. 생활 동선이 비슷한데 어떻게 한 번도 마주치질 않았지? 사실 마주쳐도 알아보지 못했을 거다. 친구는 두 딸을 잘 키웠고, 지금은 직장을 다니는 딸들의 아이들을 보살펴준다고 했다. 미국에서 육아와 직장으로 정신없이 살고 있는 딸에게 전혀 도움을 주지  못하는 나로서는 그 친구가 부러울 뿐이었다.




버스 바로 뒷좌석에서 뭔가 이상한 소리가 들렸다. 뒤를 돌아보니 한 친구가 눈물을 찍고 있었다. 통로 건너편에 앉은 친구도 고개를 숙이고 있다. 건너편 친구가 몇 년 전 갑자기 두 달 만에 암으로 돌아가신 남편에 대해 이야기하다가 눈물을 떨군 것 같았다. 말하는 친구도 옆에서 들어주는 친구도 같은 마음이 되어 흐느끼고 있다. 졸업 후 각자 자기 생활이 바빠 만나지 못하다가 많은 세월을 훌쩍 뛰어넘어 60대에 다시 만나 상대의 아픔을 느끼고 공감해 주는 따듯한 사이가 된 것이다. 앞에 앉은 나도 가슴이 먹먹했다.


70년 가까이 살아오는 동안 물론 정도야 다르겠지만 마음 한 구석아픔을 묻어두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을까. 상실과 아픔, 좌절과 슬픔, 소망과 성취, 평안과 기쁨 등 여러 감정의 기복을 겪으면서 이 나이까지 꿋꿋하게 잘 살아온 친구들이 자랑스럽다.


앞으로 살아갈 시간이 길다고만 할 수 없는 우리들에게 어떤 일들이 일어날지 아무도 모른다. 지금, 여기를 소중하게 여기며 순간순간 환한 웃음과 당당한 포즈로 사진을 찍은 우리 친구들이 참으로 멋지다. 모두 더 멋지게 건강하게 나이 들어가기를 바라본다.


작가의 이전글 Chuseok holiday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