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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zel Nov 07. 2022

코로나로 신혼여행을 못 떠난 딸과 사위

MMCA 이건희컬렉션 특별전 이중섭

샌프란시스코 쪽에 사는 딸 가족이 3박 4일 일정으로 뉴욕에서 열린 친구 결혼식에 다녀왔다. 18개월 된 아기와 함께 한 첫 비행이다. 아기쌩쌩한데, 어른들은 몸살감기가 심하게 걸렸다. 영상 통화에서 딸아이 목소리가 쉬고 가라앉아 어렵게 한 단어, 단어를 길어 올리는 듯 말을 한다. 사위도 콜록콜록 기침을 하고 두통이 있다. 코로나는 아니라니 다행이다. 매 순간 손이 가는 아기랑 미국 서쪽 끝에서 동쪽 끝까지 간 여행이 힘들었나 보다.


결혼식에서 찍은 사진과 동영상을 보니, 하늘빛 바탕에 핑크 꽃이 그려진 원피스를 입은 아기 손녀가 아장아장 걸어간다. 오랜만에 굽 있는 구두를 신고 하늘하늘 원피스에 멋진 장식까지 왼쪽 머리에 얹은 딸이 손녀 뒤를 쫓는다. 머리 장식이 낯설어 물어보니, 청첩장에 ‘재미있는 모자’ 또는 패시네이터(fascinator) 머리 장식을 착용하오라고 해서 처음으로 써봤다고 했다. 손녀는 성가신 패시네이터는 벗어던지고 춤을 추는 꼬마 언니들을 따라다니며 몸을 흔든다. 중간중간 빙그르 돌기도 한다. 딸은 허리를 굽혀 작은 몸이 유연하게 돌 수 있도록 손녀 손을 잡아준다. 손녀가 바닥에 주저앉자 사위가 아기를 번쩍 들어 음악에 맞춰 흔들어 준다. 아기는 함박웃음을 짓는다. 사람들이 많은 곳에 오니 손녀는 저절로 신명이 나는가 보다.


결혼식 분위기가 무척 흥겹다. 코로나 때문에 약식 결혼식으로 대신한 딸의 마음 한 구석에 아쉬움이 남아있지 을까?


코로나가 한창 기승을 부릴 때 딸과 사위는 미국에서 둘만 참석한 약식 결혼식을 올렸다. 양쪽 가족들은 태평양 건너 멀리서 각자 거실에 앉아 텔레비전 화면을 보며 축하와 덕담을 나누었다. 수업을 줌으로 하고 있지만 딸 결혼식까지 줌으로 볼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원래는 한국에서 결혼식을 올리기로 되어 있었다. 코로나로 여행이 차단되는 바람에 예약해 놓은 결혼식장을 안타깝지만 취소했다. 일단 미국에서 결혼 증명서를 받고, 상황이 좋아지면 결혼식을 올리자고 했는데 코로나 상황은 더욱더 깊은 수렁으로 빠졌다. 더욱이 결혼과 함께 가진 아가를 출산하고부터는 육아와 직장을 병행하느라 결혼식은 사실상 공수표가 되어 버렸다.


미국은 우리와 결혼식 하는 방식이 다른가 보다. 시청에서 결혼 허가서(marriage license)를 받은 후, 시청 직원이 주관하는 약식 결혼식(marriage ceremony)을 거행하면 결혼 증명서(marriage certificate)를 준다고 했다. 결혼 증명서를 받고 우리가 보통 하는 정식 결혼식을 올린다. 인터넷을 검색하니 샌프란시스코 시청이 예쁜 포토존으로 유명해 결혼식 장소로 인기가 많다던 코로나로 폐쇄되었다. 딸과 사위는 아파트에 딸린 작은 정원에서 식을 하기로 했다.


평상복을 입고 해도 되는 식 결혼식이지만  사람은 나름 정성을 았다. 정원 벽에 흰 망사 베일을 두르고 그 위에 꽃장식을 해서 화면상으로는 결혼식 분위기가 물씬 났다. 딸은 인터넷으로 주문한 심플한 흰 드레스를 입고 은빛 구슬이 달린 헤어밴드도 했다. 사위는 가지고 있던 신사복을 입었다. 많은 사람들의 축복을 받으면서 식을 거행하지는 못했지만, 둘이서 모든 걸 알콩달콩 계획하고 준비한 초미니 결혼식이 두 사람에게는 아주 소중한 추억이 되었으리라.


이제 코로나 상황이 나아졌으니 한국에 와서 가까운 친지들을 모시고 함께 식사라도 하면 어떻겠느냐고 딸 부부에게 물었다. 이번 뉴욕 여행에서 혼이 난 탓인지 아직은 아기랑 한국 여행이 어려울 것 같다고 했다. 신혼여행은 가고 싶다고 했다. 우리는 언제든 손녀를 봐줄 수 있으니, 날짜를 잡아보라고 했다. 내년 여름에 휴가가 가능하다며 딸이 “2주 정도?” 하니까, “아기를 2주나 안 보고 살 수 있어? 1주?”라고 사위가 말했다. 듣고 있던 남편이 “그럼 10일 정도 다녀오면 되겠네.”라며 웃었다. 아기를 향한 사위의 따듯한 사랑이 느껴져 나도 훈훈한 마음이 되었다.


아기와 2주도 떨어지기 어렵다는 사위 말을 들으니, 며칠 전 국립현대미술관 <이건희컬렉션 특별전 이중섭>에서 본 “두 아이와 물고기와 게 떠올랐. 벌거벗은 아이들이 게 잡고 물고기 잡으며 신나게 놀고 있는 그림이다. 작품 왼쪽 밑에 ‘태현 군’이라는 이중섭의 아들 이름이 쓰여 있었다. 일본으로 떠나보낸 두 아들이 얼마나 보고 싶었을까?

두 아이와 물고기와 게 (이중섭)


춤추는 가족에서는 아빠, 엄마, 두 아들이 손을 꼭 잡고 둥근 원을 그리며 춤추고 있다. 웃음을 띤 네 가족이 무척 행복해 보인다. 같이 있고 싶어도 같이 있을 수 없는 가족에 대한 이중섭의 그리움이 그대로 느껴졌다. 짠한 마음이 들었다.

춤추는 가족 (이중섭)


딸과 사위가 재롱둥이 손녀와 함께 잘 고 있으니 엄마로서 더 바랄 게 없다. 그래도 멀리 미국에서 기를 키우며 직장 다니느라 고군분투하는 딸 부부가 늘 안쓰럽다. 세 식구 건강하기를 빈다. 그리고 내년 여름, 늦었지만 신혼여행을 꼭 갈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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