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hazel Jan 11. 2023

남편의 칠순

가족들의 따뜻한 축하

생일이 되면 우리 가족은 화상으로 만난다. 딸 가족이 멀리 떨어져 있어 함께 모이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남편의 칠순 생일 때도 서울에 있는 우리 부부, 미국의 딸·사위와 곧 두 돌이 되는 손녀, 경기도에 사는 아들과 며느리 일곱 명이 화상 채팅을 했다. 축하 노래도 불렀다. 화면 가득 꽉 찬 가족들을 보니 절로 미소가 나온다. 삼 개월 뒤 며느리가 아기를 출산하면 화면은 더욱더 꽉 찰 것이다. "할버지"라고 말하는 손녀가 귀엽고 사랑스럽다. 손녀 재롱을 보고 밀렸던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시간 가는 줄도 몰랐다. 아이들의 시간을 많이 뺏고 싶지 않은 남편이 채팅을 마무리하자고 했다.




이제 기대 수명이 늘어나 장수 시대가 된 만큼 남편은 칠순을 조용히 보내고 싶어 했다. 화상 축하면 됐다 남편에게 TV 홈쇼핑에서 짧은 일본 패키지여행을 칠순 기념으로 다녀오자고 했다. 


일본은 남편이 안식년을 지냈익숙한 곳이라 예전에는 자유여행으로 이곳저곳을 돌아다녔다. 나이를 먹으면서 일정 짜고 특히 예약하는 일들이 점점 힘겹게 느껴진다. 그리고 여행지에서 차 운전하는 것도 만만치 않다. 패키지여행은 이런 수고와 번거로움 없이 가볍게 떠날 수 있어 다.


여행 첫날 저녁 식사는 자유식이다. 가이드에게 식당 추천을 부탁하니, 코미디언 정준하가 다녀가서 한국 사람들에게까지 유명해졌다는 맛집을 소개해주었다. 가이드 말대로 아늑한 분위기에 직원들도 친절하고 스시 또한 신선다. 남편은 건강 때문에 보통 때는 술을 안 마시지만, 특별한 생일인지라 이름도 처음 들어 본 하이볼까지 시켰다. 남편은 엄지를 치켜세웠다.  


여행에서 돌아오자 아들 부부가 우리 집에서 칠순 이벤트를 하고 싶다고 했다. 며느리는 입원까지 했을 정도로 입덧이 심하다. 입덧으로 고생 며느리가 아무래도 무리를 하는 것 같아 걱정이 되었다. 절대 무리하면 안 된다고 했더니 이제는 입덧이 많이 좋아져 괜찮다며, 이벤트 장식을 위해 잠시 집을 비워달라고 했다. 물론 아버님한테는 비밀로 하고. 


남편에게 산책을 자고 말한 뒤, 동네 근처를 돌았다. 그날따라 바람이 매서워 그냥 일찍 집에 가자는 남편한테   걷자인근 몰 건물로 들어가 시간을 끌었다. 입덧을 하는 며느리가 걱정되어 신경이 쓰였는데, 아들에게서 장식을 다 끝냈다는 반가운 카톡을 받았다.

거실에 들어서니 핑크빛, 보랏빛, 주황빛 풍선들이 천장에 매달려 있고, 축하 메시지가 쓰인 사각형 배너가 유리창에 드리워져 있었다. 배너 하단에는 금빛 알파벳으로 조합된 congratulations가 너울거렸다. "며느리 덕에 이런 멋진 이벤트도 경험하네!" 우리 부부는 탄성을 질렀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광경에 남편의 입이 귀에 걸렸다. 남편은 케이크 촛불을 불고 꽃다발도 받았다. 




부모님 칠순 때는 친지분들을 모시고 떠들썩한 축하의 자리를 마련했다. 여자들은 어른도 아이도 한복을 곱게 차려입었다. 삼 년 전 아주버님 칠순에는 단출하게 삼 형제 부부만 모여 식사를 했다.


형제들은 이번에도 남편 칠순을 기념하여 식사를 같이 하자고 했다. 얼마 전 시동생 부부가 다녀왔다는 서울에서 멀지 않은 인천 무의도에 바람도 함께 쐬러 가자고 했다.


무의도는 개통된 지 몇 년 안 된 무의대교 덕분에 자동차로 쉽게 도착할 수 있었다. 햇살에 반짝이는 바닷물을 바라보니 마음이 탁 트인다. 세 살씩 터울이 지는 세 형제들도 뒷모습을 보이며 나란히 서서 파란 바다를 바라본다. 남편은 구부정하셨던 생전의 시아버님을 닮아가고 있다. 남편의 꼿꼿했던 젊은 날의 모습이 떠올라 마음이 짠해진다.


젊디 젊은 20대에 처음 만났던 위아래로 한 살씩 차이나는 동서들도 60대 후반이 되었다. 세월이 언제 흘렀는지... 형님은 도로변에 걸어놓은 반건조 생선을 어느새 사서 우리 앞에 내민다. 세월은 흘렀어도 따뜻하게 베푸는 형님, 행동대장 손아래 동서는 예전 그대로다.


칠순을 조용하게 지내고 싶어 하던 남편이었지만 가족들의 축하를 받으며 행복 웃음이 얼굴에서 떠나지 않았다. 역시 따뜻한 관심과 배려는 마음을 훈훈하게 해 준다. 내년에는 형님, 내후년에는 나, 그다음 해에는 동갑내기 시동생과 동서가 줄줄이 칠순이다. 각자의 자리에서 열심히 살아온 서로가 서로에게 응원과 격려를 아끼지 말아야겠다.

작가의 이전글 코로나로 신혼여행을 못 떠난 딸과 사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