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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zel Jun 18. 2023

『파친코』에서 두 남성이 사용한 '어머'(uh-muh)

한국어의 여성어 '어머'

미국에 사는 두 돌이 지난 손녀는 넘어지려고 하면 ‘아이고’ 자동적으로 나온다. 생뚱맞게 아기 입에서 '아이고'가 튀어나오니 귀엽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하다. '아이고'는 허리가 잘 뻐근해지는 내가 주로 하는 말인데, 설마 자주 만나지도 못하는 나한테 배운 건가? 아니면 동동거리며 육아일과 직장 일을 병행하는 딸아이가 많이 쓰고 있나?


이민진 작가가 쓴 파친코원서를 읽다가 요셉이 말한 uh-muh('어머')에 눈이 멈췄다. 가부장적인 요셉이 '어머'를? 요셉의 '어머'는 손녀가 말한 '아이고'만큼이나 생뚱맞다.


요셉은 공장에 자기를 찾아온 조카 노아를 보자마자 '어머'(uh-muh)를 외쳤다. 집에 나쁜 일이 생겼다는 걸 직감했다. 여덟 살짜리 노아가 공장에 오는 건 극히 드문 일이기 때문이다. 노아가 공장에 온 건 일 년 전 요셉의 아내가 고열로 의식을 잃고 쓰러졌을 때 요셉에게 알려주기 위해 달려왔던 그때뿐이었다. 요셉의 직감대로 신사참배를 거부한 동생 이삭이 감옥에 투옥되었다가 거의 죽음에 이르자 풀려나 집에 온 것이다.


그런데 아를 보고 놀라 외친 '어머'는 요셉에게 전혀 어울리지 않는 주로 여자들이 쓰는 감탄사이다. 

요셉: “Uh-muh, Noa, what are you doing here?”
노아: “Appa’s home.”
요셉: “Really?”
노아: “Can you come home now?”
(p. 183)


노아의 동생 모자수도 uh-muh('어머')를 쓰고 있다. 모자수는 모범생 형 노아와 달리, 레슬링 선수 역도산을 좋아하고 주먹을 휘두르며 싸움도 잘한다. 성장해서 파친코를 운영하게 된 상남자 모자수가 쓴 '어머'는 큰아빠 요셉의 '어머'보다 더 어색하고 생뚱맞다. 모자수는 아내 유미가 교통사고로 하늘나라에 간 후, 장례식장에 찾아온 어머니 선자의 첫사랑 고한수를 보고 놀라 '어머'라고 한 것이다.

고한수: “Mozasu, are you okay?”
고한수: “It’s me. Koh Hansu. Have I aged that much?”
모자수: “Uh-muh. Of course, I know who you are. It’s been so long.”
(pp. 342-343)



요셉과 모자수가 쓴 uh-muh를 번역판에서는 어떻게 표현했을까? 궁금해졌다. 당연히 '어머'라고 번역하지 않았을 것이다. 번역판을 먼저 읽었는데, 요셉이나 모자수가 '어머'라고 했으면 분명 눈에 띄었을 것이다. 이 부분이 기억나지 않는 것으로 봐서 '어머'가 아닌 남자들이 주로 쓰는 감탄사번역되가능성이 높다.


내가 예전에 읽었던 번역판(이미정 옮김, 2018, 문학사상)을 뒤져봤다. 요셉의 uh-muh는 '아니'로, 모자수의 uh-muh는 '맙소사'로 번역되어 있었다.

요셉: "아니, 노아구나. 그런데 지금 여기 왜 왔어?"
노아: "아버지가 돌아왔어요."
요셉: "뭐? 정말이니?"
노아: "지금 집에 갈 수 있어요?"
(p. 281)
고한수: "모자수, 괜찮니?"
고한수: "나야, 고한수. 많이 늙었지?"
모자수: "맙소사, 아저씨군요. 정말 오래간만이에요."
(p. 167)



요즘은 남녀 간 언어의 경계가 흐려지면서 중화 추세에 있지만, '어머'는 아직도 남녀 성별이 확실하게 드러나는 편이다. '어머'를 비롯해서 '어머나, 엄마야, 별꼴이야'는 대부분 여자들이 사용한다. 주인공 선자나 요셉의 아내 경희가 하는 '어머'는 자연스럽다. 그러나 '어머'를 요셉이나 모자수처럼 남자가 사용하면 이상하게 들린다.




4대에 걸친 지난한 이민자 가족의 삶을 담은 <파친코>를 안타깝고 슬픈 마음으로 읽었다. 1910년 일제강점기부터 1989년까지 거의 한 세기에 걸친 한 맺힌 이야기를 풀어내느라 저자는 얼마나 노고와 수고가 많았을까. 정말 존경스럽다. 먼저 읽은 번역판도 나중에 읽은 원서도 빨려들 듯이 읽었다.


요즘 한국어를 열과 성을 다해 배우고 있는 싱가포르인 셰프 V도 <파친코> 영어판을 무척 감명 깊게 읽었다며 엄지를 치켜세웠다. 덕분에 한국의 역사에 대해 눈을 뜨게 되었다고 했다. 스페인인 엄마와 한국인 아버지를 둔 바르셀로나에 사는 E는 아버지의 언어인 한국어를 진심을 다해 배우고 있는 학생이다. 영어로 <파친코>를 읽은 후 느낀 게 많아, 한국인 아버지에게 한국어판을 선물했다고 한다.


<파친코> 전 세계적으로 많이 읽히는 베스트셀러인 만큼 요셉과 모자수가 어색한 uh-muh 남자가 자연스럽게 쓸 수 있는 감탄사로 바꾸었으면 좋겠다. 한국어를 잘 모르는 독자는 이 책을 읽으면서 '어머'가 남자가 쓰는 감탄사로 생각할 수 있다. 원서 uh-muh의 대체어로 첫 번역판(이미정 옮김, 2018, 문학사상) '아니'나 '맙소사' 또는 재출간된 번역판(신승미 옮김, 2022, 인플루엔셜)의 '세상에' 등도 좋은 후보  수 있으리고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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