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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zel Dec 27. 2022

일본에서 한국어로 소통했어요

이민진 소설 『파친코』

남편 칠순 기념으로 2박 3일 오사카-교토-고베 패키지여행을 다녀왔다. 남편은 칠순도 나이 한 살 더 먹는 여느 생일과 똑같다며 조용히 지내싶어 했다. 그래도 칠순인데 그냥 지나치려니 미안하고 찜찜하던 차에 TV 홈쇼핑 여행 상품에 시선이 꽂혔다. 우리가 예전에 몇 번 묵었던 소박하지만 깔끔한 온천 호텔에서 이틀 밤을 연박하고 첫날 저녁은 자유식이라고 했다. 남편도 그런 조건이라면 좋다고 해서 얼른 신청을 했다.




이동버스에 앉아 차창 밖으로 오사카 시내를 내다보며 얼마 전에 읽었던 이민진 소설 파친코떠올렸다. 파친코 간판도 찾아보았다. 예전 일본에 와서 번화가를 걸을 때는 현란한 파친코 간판이 여기저기 즐비해서 놀라웠는데, 이번에는 꼭꼭 숨은 듯 눈에 띄지 않는다. 어쩌다 간판 하나를 발견했다. 반가웠다. 남편이 가리키는 손가락 끝을 따라 파친코 간판을 하나 더 보았다. 파친코 주인공인 선자의 두 아들 노아와 모자수 그리고 손자 솔로몬이 일했을 파친코를 상상해 보았다.


패키지여행이라 버스에 앉아 있는 시간이 많고 목적지 바로 앞에 내려주기 때문에 번화가에 밀집한 파친코를 보기는 어려웠지만, 대신 일본 사람들과 한국말로 소통하는 뿌듯한 경험을 맛보았다.


남편과 둘이 자유여행을 했었을 때는 일본에서 안식년을 지냈던 남편이 거리에서, 식당에서, 가게에서 어설픈 대로 일본어로 의사소통을 시도했지만, 알아서 다 해주는 이번 패키지여행에서는 일본 사람들과 직접 말할 필요가 사실 거의 없었다. 필요한 경우가 생겨도 한국말로 잘 응대하는 일본인 덕분에 일본말 하나 쓰지 않고도 편안한 마음으로 소통할 수 있었다.




오사카 공항에 도착하니 시장기를 느꼈다. 생각해 보니 두 시간 비행하는 동안 아무것도 먹지 않았다. 아직 입국 절차를 끝내지 않은 다른 여행객들을 기다리면서, 바로 옆에 위치한 카페에서 녹차를 주문하려고 카운터 앞에 섰다. 더듬더듬 주문을 하려고 하니, 젊은 여자 직원이 “한국 분이세요?” 하면서 유창한 한국말로 주문을 받았다. 거스름돈 액수도 또렷하게 말하며 건네주었다. 내 외국인 학생들은 한국어로 숫자 말하는 것을 무척 어려워해서, 카페 점원이 당연히 한국 사람인 줄 알았다. 일본인이라고 했다. 놀라서 한국어를 너무 잘한다고 하니, 고맙다며 수줍어한다.


이동버스에 오르니 마음씨 넉넉해 보이는 50대 후반 정도의 일본인 기사가 한국말로 “안녕하세요?” 하며 우리를 맞았.


다음 날 아침 조식을 먹으러 식당에 내려갔다. 식당 입구에 선 직원이 방 번호가 몇 번이냐고 한국말로 물었다. 한 투숙객이 호텔에 대해 묻는 질문에도 막힘 없이 한국말로 답했다. 직원은 일본 사람이었다. 저 정도로 능숙하게 한국어를 구사하려면 얼마나 많은 시간과 노력을 투자했을까. 마음속으로  박수를 보냈다.


하루 일정을 끝내고 피곤한 몸으로 호텔로 돌아와 여자 온천 비번이 그 전날 알려준 번호와 똑같은지를 알기 위해 프런트로 전화를 했다. 일어로 전화를 받길래 영어로 말하려고 하니, “무엇을 도와드릴까요?”라며 한국말로 답했다. 코로나 이전, 후쿠오카에 있는 같은 호텔에서 묵을 때는 이렇게 유창하게 한국말을 하는 직원들을 보지 못했던 것 같다.




이민진의 소설 파친코1권은 일제강점기가 시작된 1910년부터 해방 후 한국전쟁 발발 한 해 전인 1949년까지, 2권은 한국전쟁 휴전협정이 체결된 1953년부터 서울올림픽 다음 해인 1989년까지를 시대적 배경으로 한다.


우리가 이번에 도착한 오사카는 주인공 선자가 일제 강점기에 고향 영도를 떠나 배를 타고 건너온 곳이다. 선자는 녹록지 않은 일본에서의 생활을 끈질기게 버티어 나갔다. 선자의 둘째 아들 모자수는 공부에 흥미가 없어 일찌감치 파친코에서 일을 시작했고, 중도에 자퇴는 했지만 공부를 잘해 와세다대학에 간 첫째 아들 노아 그리고 미국 유학을 다녀온 손자 솔로몬(모자수의 아들)도 결국에는 음지의 사업으로 취급받는 파친코에서 일하게 되었다. 당시 일본에서 차별과 멸시를 받는 재일교포들이 제대로 된 일자리를 갖는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를 보여주고 있다.


지금은 어떤가? 세월이 훌쩍 지나 일본에 여행 와서 한국어를 잘하는 일본 사람들과 한국어로 의사소통을 하면서 파친코의 등장인물들을 생각해 보았다. 소설가 이민진이 요즘 시대를 배경으로 재일교포에 대해 소설을 쓴다면 어떤 내용을 담을까? 한국어를 배우고 싶어 하는 일본인에게 한국어를 가르쳐주는 재일교포를 적어도 한 명쯤은 소설에 등장시키지 않았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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