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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zel Sep 23. 2023

한국어 학습자는 K-드라마에 나온 시를 좋아해요!

「더 킹: 영원의 군주」에서 이민호가 읽은 김소월의 「초혼 」



한국어 수업을 듣는 싱가포르인 V가 김소월 초혼」의 첫 두 연을 필사했다며 카톡으로 보내왔다. 서예를 인터넷으로 배웠다고 들었지만 이렇게 잘 쓸 줄은 몰랐다. V는 싱가포르에서 셰프로 일하는 50대 싱글 여성이다.

한국어를 배우는 V가 필사한 김소월의「초혼」


V가 처음 수업에 들어왔을 때 한국어를 공부하 이유를 물었더니 한국 드라마에 푹 빠져서라 했다. 드라마를 볼 때 영어 자막에 기대기보다는 한국어 대사로 직접 듣고 싶다했다. V의 한국어 사랑은 대단하다. 일상에서 스트레스를 받으면 한국어를 공부하면서 푼다고 한다. 헷갈렸던 표현이 풀리면 스트레스까도 싹 풀린단다. 열심히도 하지만 여러 언어를 할 수 있어서인지 한국 배우는 속도가 빠르다. 가족끼리 영어로 말하고, 뉴욕에서 6년간 근무한 경험이 있어 영어 실력이 원어민 수준이다. 어려서 싱가포르에 있는 일본 학교를 다니고 대학 전공도 일본어라 일본어도 수준급이다. 중국계 싱가포르인이니 중국어는 물론 잘한다.


SBS 드라마 더 킹: 영원의 군주에서 잘 생긴 대한제국 황제 이민호가 김소월의 초혼을 읽는 모습이 너무 멋져 『진달래꽃』 책을 주문했다고 한다. 싱가포르 사람이 싱가포르에서 한국어 교재가 아닌 한국어 시집, 그것도 김소월 시집을 샀다고 해서 놀라웠다. V는 김소월의 초혼수업시간에 공부하고 싶어 했다. 덕분에 요즘 나도 김소월과 함께 산다. 김소월의 시들을 읽고 관련 책들을 보고 있다.


국립민속박물관에서 편찬한 『한국민속대백과사전』을 검색하니 '초혼' 그림이 눈에 띄었다. '초혼'은 떠나는 영혼을 붙잡기 위해 지붕에 올라가 죽은 사람이 입던 윗옷을 왼손에 들고 북쪽을 향해 흔들며 돌아오라고 이름을 세 번 부르는 상례 절차이다. 병원 장례식장밖에 보지 못한 내게는 '초혼' 의식이 생소하지만, 죽은 사람을 떠나보내고 싶지 않아 가지 말고 다시 오라고 이름을 소리부르는 간절한 심정이  가슴에도 와닿는다. 한자를 아는 V는 '초혼'(招魂)의 의미를 쉽게 이해했다. 

'초혼' 의식 (출처: 『한국민속대백과사전』)


V는 다음 수업시간에 「초혼」번째와 두 번째 연을 외워 왔다. 애절한 감정까지 넣었다. 마트에 가면서, 집에 오면서 자투리 시간도 허투루 쓰지 않고 시를 외운 V에게 나는 칭찬과 응원을 아끼지 않았다. 나머지 세 연도 모두 외울 거라고 했다. 「초혼」을 다 외우면 맛있는 음식을 차려놓고 친구들을 집으로 초대해서 시를 낭송하고 싶다고 했다. 한국어 공부 시작한 지 2년 만에 시 낭송까지 계획하는 V가 무척 멋지다.


V를 따라 나도 요즘 초혼」을 틈틈이 외우고 있다. "산산이 부서진 이름", "허공 중에 헤어진 이름", "불러도 주인 없는 이름"을 "설움에 겹도록" 부르는 절절한 심정이 느껴진다. "선 채로 이 자리에 돌이 되어도 부르다가 내가 죽을 이름이여!" 암시라도 하듯 김소월은 32세의 새파란 나이에 생을 끝맺었다. 너무 일찍 갔다. 안타깝다.


초혼


김소월

산산이 부서진 이름이여!
허공 중에 헤어진 이름이여!
불러도 주인 없는 이름이여!
부르다가 내가 죽을 이름이여!
심중에 남아 있는 말 한마디는
끝끝내 마저 하지 못하였구나.
사랑하던 그 사람이여!
사랑하던 그 사람이여!
붉은 해는 서산 마루에 걸리었다.
사슴의 무리도 슬피 운다.
떨어져 나가 앉은 산 위에서
나는 그대의 이름을 부르노라.
설움에 겹도록 부르노라.
설움에 겹도록 부르노라.
부르는 소리는 비껴가지만
하늘과 땅 사이가 너무 넓구나.
선 채로 이 자리에 돌이 되어도
부르다가 내가 죽을 이름이여!
사랑하던 그 사람이여!
사랑하던 그 사람이여!
(『진달래꽃 다시 읽기』(김만수, 2017, 도서출판 강)에 실린「초혼」. 한자는 한글로 바꾸었음.)



김소월의 시와는 분위기가 사뭇 다른, 짧고 이해하기 쉬운 나태주의 「풀꽃」을 V에게 소개했다. 마지막 연에서 읽는 사람을 심쿵하게 만드는 예쁜 시라 V가 좋아할 것 같았다.


풀꽃
나태주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



 V는 나태주의 「풀꽃」도 좋아했다. tvN에서 방영된 드라마 남자친구에서 박보검이 송혜교에게 선물로 준 시집이 바로 나태주가 쓴 『꽃을 보듯 너를 본다』라는 것을 알고 V는 그 시집도 주문했다. 새로 산 겉표지가 파란 예쁜 시집을 컴퓨터 화면 너머에 있는 내게 보여주었다. V는 남자친구를 아주 재미있게 봐서 나태주의 시들도 읽어보고 싶다고 했다. 박보검이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시라고 말하며 송혜교에게 사랑을 드러낸 「그리움수업시간에 다뤄야겠다.


그리움
나태주

가지 말라는데
가고 싶은 길이 있다
만나지 말자면서
만나고 싶은 사람이 있다
하지 말라면
더욱 해보고 싶은 일이 있다
그것이 인생이고 그리움
바로 너다.


K-드라마의 위력이 참으로 크다. 드라마 그 자체뿐 아니라 드라마 주인공이 먹는 음식, 걸치는 옷, 바르는 화장품...... 그리고 드라마에 나오는 시까지도 관심을 갖게 만드니.


한류는 K-드라마, K-영화, K-팝, K-음식, K-뷰티, K-패션, K-웹툰 등 다양한 영역에 걸쳐 있다. 이들에 이어 이제 K-문학의 차례가 까? 물론 영어로 번역된 신경숙의 『엄마를 부탁해, 한강의 『채식주의자』 그리고 영어로 쓰인 이민진의 『파친코』 등은 해외 독자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한국어를 배우는 외국인이 많아졌으므로 영어가 아닌 한국어로 우리나라 작품을 읽는 외국인조금씩 늘어나 않을까?


한국어를 배우는 내 학생들은 대부분 초급, 중급, 그리고 아주 가끔 고급 단계에 있어 긴 호흡이 필요한 한국 소설이나 길고 어려운 시를 읽는 것은 힘에 부친다. 나태주의 시처럼 짧고 간결하면 다가서기가 수월할 것 같다. 초급, 중급 학생들이 이해하기 쉬운 시들을 가끔씩 수업시간에 소개해야겠다. 학생별 수준에 맞는 한국 시 목록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드라마에 나오는 시들도 찾아봐야겠다. 세계 곳곳에서 한국어로 한국 시를 감상하는 외국인을 보게 된다외국에서 삼성, LG 제품이나 현대차를 봤을 때처럼 흐뭇한 미소가 절로 지어질 것 같다. 시와 더불 소설도 한국어로 읽는 독자가 많아져 K-문학이 전 세계로 뻗어나가 한류의 큰 흐름 속으로 합류되는 날이 왔으면 하고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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