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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zel Oct 04. 2023

이젠 집에서 차례를 지내지 않아요

형님 댁에서 모인 마지막 추석

오늘 아침 형님 에서 마지막 추석 차례를 지냈다.


70대인 아주버님과 형님의 건강이 안 좋아지면서 에서 하는 행사를 이제 그만자는 이야기가 전부터 나왔지만, 지금까지 해오던 일을 무 자르듯 단칼에 없애기가 쉽지 않았다. 형님은 어머님이 살아계시는 동안은 차례와 제사를 집에서 지내겠다고 했다. 그런데 추석  주 전쯤 형님이 코로나에 재감염되어 심하게 앓았다. 형제들은 이번 추석부터 에서 모이지 말자고 제안했다. 형님은 차례상을 아주 간단하게 차릴 테니 걱정하지 말고 오라고 했다. 게다가 송편, 전 등 차례 음식을 모두 사서 하니 힘들지 않다했다. 그만두더라도 돌아가신 아버님과 조상님들차례와 제사를 집에서 못 드리게 되었다고 말씀드린 후 그만두는 게 좋겠다고 했다.   


아주버님과 형님의 뜻대로 이번 추석 차례까지는 에서 지내내년부터는 명절이나 제사 때 조상님들을 모신 사찰에서 만나기로 다. 전격적인 변화다. 


고인이 되신 시아버님은 차남이지만 집안에서 맏아들 역할을 하셨다. 아버님의 형님인 큰 아버님이 대를 잇기 위해 아들이 없는 큰 할아버님 댁에 양자로 가셨기 때문이다. 지금은 상상하기조차 어려운 일다. 아버님 세대는 우리보다 단지 한 세대 위일 뿐인데 아득하게 먼 옛날에 사신 분들처럼 느껴진다.


형님네 강원도 원주 근교에 있는 전원주택에 이사를 고부터는 명절, 제사 때마다 펜션으로 여행 가는 기분이었다. 형님은 집 안팎을 분위기 좋은 카페처럼  정갈하고 예쁘가꾼다. 인테리어에 관심이 많은 형님은 가구 위치도 자주 바꾼다. 요번엔 어떻게 달라졌을지 설레면서 집 안에 들어서게 된다.


대식구가 하룻밤을 자기 때문에 집을 청소하고 이부자리를 준비하는 것도 큰 일이다. 건강이 안 좋은 형님은 이제 이런 일을 감당하기 어렵다. 이번 추석에는 단출하게 우리 부부와 셋째네 부부만 전날 가고 당일 아침에는 우리 아들, 며느리, 아기 손자가 합류했다.


우리가 오기 전에 형님은 갖가지 나물무침, 파김치, 물김치, 오이소박이 등 보기만 해도 군침이 도는 반찬을 준비해 놓는다. 맛있다고 하면 바리바리 싸주기까지 한다. 셋째 동서는 그때그때 형님이 준비한 재료로 탕국이며 특별 요리를 뚝딱 먹음직스럽게 만들어 다. 한 살씩 위아래로 터울이 지는 동서들은 나랑은 달리 베테랑 주부들이다. 둘째인 나는 제기에 음식을 담거나 음식 나르거나 설거지 같은 자질구레한 일들을 한다. 그러고 보니 전을 사서 올리기 전에는 넷째 어머님과 함께 나는 동그랑땡, 두부 전, 동태 전, 꼬치산적 등 전 부치는 담당이었다. 80대 넷째 아버님과 어머님은 몸이 안 좋으셔서 집안 행사에 참석하않으신지 벌써 몇 년째다. 전화드리니 목소리는 다행히 밝으시다. 예전에는 송편도 빚었다. 씩씩한 셋째 동서가 손을 휘저으며 익반죽을 하던 모습이 떠오른다. 조금씩 조금씩 차례상과 제사상이 간소화되다가 이번 추석을 기점으로 집에서 만나는 명절 모임과 제사가 아예 없어진 것이다. 음식 만들고, 차례∙제사 지내고, 동서들과 나란히 누워 밤늦도록 수다 떠는 일들은 아름다운 추억으로만 남을 것이다. 


형님은 텃밭에 갖가지 채소를 심어놓았다. 셋째 동서와 고추, 가지도 따고 호박도 땄다. 상치도 놓칠 수 없다. 형님이 병원에 입원해 있느라 제대로 돌보지 못해 고추가 망했다고 했다. 벌레 먹은 고추도 있었지만 싱싱한 고추도 아직 많이 달려 있었다. 형님이 애써 기른 채소를 우리는 신나게 땄다. 셋째 동서는 뒤로 연결된 산에 올라가 밤도 주웠다. 나는 뾰족뾰족한 밤송이를 헤집고 밤을 라내는 일이 엄두가 안 나 형님과 밑에 서서 구경만 했다. 구경만 하지 말고 밤을 좀 주워보라고 벌이 쏘았나? 오른손 엄지 손가락이 빨갛게 붓고 따끔거렸다.


이유식을 막 시작한 6개월 된 손자를 위해 내가 딴 것 중에 제일 예쁘게 생긴 애호박을 며느리에게 주었다. 마침 다음번에 호박 이유식을 만들 거라고 했다. 가지, 고추, 콩도 잘 생긴 것을 골라 며느리가 들고 갈 쇼핑에 담았다. 형님이 미리 주워놓았다고 준 밤도 같이 넣었다. 이번에 손자가 차례 지내는 데 한몫했다. 아들 옆에서 머리에 '충돌 보호 모자'까지 쓰고 처음으로 절을 드렸다.

아들 옆에서 처음으로 절을 드리는 손자


이제부터 우리는 조상님들을 모신 사찰 납골당에서 모일 것이다. 서울에 위치한 사찰은 경관이 아름답고 아늑하다. 카페처럼 예쁜 형님 집 대신 고즈넉한 사찰에서 모인다. 제사, 차례를 지내고 근처 식당에서 밥을 먹은 후 돌아가면서 서울 우리 집이나 경기도에 사는 셋째 집에서 차를 마시자고 했다. 흘러가는 세월과 함께 모든 게 변한다. 형님, 오랜 세월 동안 수고 많으셨습니다. 건강하시길 빌어요.


(2023. 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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