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발하는 자세
우물 안을 나오면서 부모님의 두 눈을 똑바로 보고는 활짝 웃으며 손을 흔들었어. 후회할 것 같아서 뒤도 돌아보지 않고 비행기를 탔던 기억이 나.
첫 독립. 오롯이 나 혼자의 생활을 해야만 하는, 그리고 누군가의 힘을 빌리지 않고 스스로 책임을 지어야 하는 일. 혼자 살아야 한다는 의지와 다짐이 가득가득 찬 내 배낭과 캐리어 그리고 큼직한 이민가방. 그것들보다 더 무거워서 어깨에 힘을 주지 않으면 와르르 쓰러질 것만 같았던 내가 했던 말에 대한 책임감.
비행기를 탔을 때, 두려웠어. 솔직히 말해서 너무 무서웠고… 하지만 그럼에도 내리진 않았지. 캄캄한 어둠이 가득한 출발이었는 데도 나는 막막함보다 앞으로의 내 경험이 더 설레었던 거야. 그래서 그 순간을 아직도 나는 잊지 못해. 달랑 돈 몇 푼 모아서 무모하게 갔던 그 도전이 훗날에는 내 젊음이, 내 청춘이 되었으니까.
베이징을 경유해서 가야 했기 때문에 *스탑오버를 신청했어. 스탑오버를 신청했을 당시엔 그게 큰 문제 거리가 될 줄은 꿈에도 몰랐었는데, 사건이 터진 거야. 짐을 찾아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만 하다가 베이징 시내에 위치한 호텔까지 와버렸어. 확실한 정보가 없는 상태였기 때문에 느낌이 너무 이상해서 항공사에 연락을 해봤지. 짐을 찾아 와야 한다는 청천벽력 같은 답변을 듣고는 당장 뛰쳐나왔어. 몰랐을 때는 그 자리에서 확실하게 묻거나 알아봤어야 했는데 아무 일도 없을 거라는 내 안이함이 일을 더 크게 만들어 버린 거야. 아니, 그땐 알아봐야 한다는 사실을 부정하고 싶었던 게 맞을 거야. 귀찮기도 했고, 빨리 쉬고 싶기도 했으니까. 심지어 나의 출국 심사를 맡았던 중국인은 한국어를 한국인처럼 유창하게 하는 분이셨어.
베이징 시내에서 택시를 쉽게 잡을 수 있을 거라는 내 생각과는 달리, 택시잡기란 하늘에서 별 따기 와도 같았어. 나는 미친 듯이 급해 죽겠는데 택시는 단 한대도 보이지가 않았지. 내가 본 중국 여행 책에서는 널린 게 택시라고 했었는데. 세상에나. 난 여기서 무얼 하고 있는 건가 생각했지.
그때 마침 차 한 대가 내 앞에 섰어. 한 아저씨가 나에게 말을 걸더니, 공항까지 태워다 주겠다며 타라는 거야. 고민 따위도 안 했던 것 같아. (물론 지금 생각하면 진짜 위험한 짓이었지만…) 내 일 년 치 짐들을 찾지 못할 수도 있다라는 생각이 더 컸기 때문에 계속 고맙다는 말만 하면서 그 차를 탔어. 중국에도 이렇게 친절한 아저씨가 있구나 생각했지. 하지만 그것도 내 착각이었어. 처음에는 더듬더듬 말하는 내 중국어를 보고는 과장되게 칭찬해주더니, ‘한국이 좋다,’ ‘한국인은 친절하다.’며 한국에 대한 자랑을 주구장창 하시는 거야. 내심 기분은 좋았어. 하지만 공항에 도착해서는 택시보다 두 배나 비싼 돈을 내야 했지. 돈을 받은 아저씨는 웃지도 않으시고, 뒤돌아보면서 잘 가라는 인사도 하지 않으시더라고. 어쨌든 공항에는 도착했으니까 고맙기는 했는데, 진심으로 고맙지는 않았어. 뭔가 당한 느낌이 컸거든. 나중에 알고 봤더니 중국은 민간인 택시 운영이 가능하다고 하더라. 씁쓸한 마음도 있었지만 내 짐을 찾는 게 시급했어. 2시간 동안 국제공항을 떠돌며 캐묻고 다니다 내 짐들을 간신히 찾았어. 그때의 그 안도감이란. 첫날 세워둔 계획은 다 물거품으로 끝나 버렸지만 그래도 괜찮았어. 나는 내 짐을 찾았으니까.
스펙터클하였던 하루. 그 스타트 라인에서부터 나는 직감할 수밖에 없었어. 내가 꿈꾸는 여행이 되기 위해서는 정신 차리고 실수 없이 꼼꼼히 움직여야 한다는 것을. 의지할 사람이 없다는 게 참 컸어. 문제를 직면했을 때 함께 해결할 사람이 없다는 것. 나 스스로 답을 찾아야 한다는 것. 혼자 살아야 한다는 느낌이 진짜 현실적으로 다가오더라. 긴장된 내 어깨와 불끈 쥔 내 주먹이 베이징의 첫 날을 장식해 주었지.
*스탑오버(Stop over)
비행기를 경유하는 공항에서 최소 1일에서 최대 3일까지 체류를 할 수 있는 권한. 항공권을 예약하고 발권하기 전에 해당 경유지에서 스탑오버를 요청하면 해당 경유지 여행이 가능하다. (해당 경유지에 따라 비자 발급을 받아야 하는 경우도 있다. 상하이, 베이징은 무비자로 여행 가능.)
사진출처: 히죽히죽G